매주 토요일은 딸애의 수영강습이 있어 주말임에도 아침을 서두르는 편이다(물론 우리 집 기준이다). 오전 11시에 시작하니까 집에서 10시 30분에는 출발해야 하고, 그러려면 늦어도 9시 30분에는 침대에서 일어나야 한다. 나야 별 어려움이 없지만 주말 늦잠을 즐기는 아내와 딸애 입장에서는 여간 곤욕이 아니다.
딸애는 오늘 처음으로 배영 ‘팔 돌리기’를 배웠다. 강습 코치님이 물속에서 직접 몸을 잡아주면서 지도하셨다. 딸애는 물에 가라앉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그래서어색하기 그지없는 팔 돌리기를 계속 하지만 구멍 난 물레방아 돌아가듯 물만 흐를 뿐 앞으로 쭉쭉 나아가지 않는다.
몇 년 전에 나도 수영을 한동안 배운 적이 있다. 자유형, 배영, 평영을 마치고 접영 ‘한 팔 돌리기’까지 진도를 나가다가 사정이 있어 그만두었다. 가끔 물놀이장에 가서 이것저것 조금씩 해보는데 접영은 전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때 무리를 하더라도 좀 더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늘 남아 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아쉬운 게 있다. 수영을 하면서 힘 빼는 법을 미처 체득하지 못했다. 오히려 힘주는 법만 머리에 있었다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발차기를 쉬지 않고 세게 해야 한다.’, ‘손바닥으로 최대한 물을 모아 배에서 허리 뒤쪽으로 물을 밀어내야 한다.’라는 생각에 온 몸, 특히 어깨에 뻣뻣이 힘이 들어갔다.
기억을 돌이켜 보면, 그 당시 같이 강습을 받던 여성회원 3명이 있었다. 또래 친구들 같았는데 나이가 최소 60대 중반은 되어 보였고 체격도 왜소했다.
그러나 뒤에서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 수영을 한다기보다는 마치 물속에서 너울너울 느린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발차기도 거의 하지 않고 힘들이지 않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팔 돌리기 위주로 영법을 구사하는데 희한하게도 물에 가라앉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폭 25미터 수영장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한 번 가는데도 거의 익사 직전까지 내 몸을 사지로 몰아야 겨우 가는데 반해 그 여성회원들은 몇 바퀴를 돌아도 끄떡없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힘과 기술로 물과 겨루는 듯이 수영하는 ‘나’와 물의 흐름에 의지해 그 도움으로 수면 위를 미끄러져 나가는 ‘그분들’과의 차이였나 보다.
어떤 운동이든지 진지하게 배워본 사람이라면 ‘힘을 빼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운동은 분명히 힘을 쓰는 것인데, 힘을 빼라는 것이 모순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든 운동에서 ‘힘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힘을 빼야 한다.’라는 것은 거의 불변의 진리이다.
물리학에서 힘은 질량과 가속도의 곱이다.
F(힘)=m(질량) ×a(가속도)
즉, 최대의 힘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힘을 가하는 순간 자신의 모든 체중을 실어 최대의 질량을 만들고, 인체의 협응 동작에 의해 최대의 속도에 이르게 하여야 한다.
먼저, 최대의 질량으로 반응하기 위해서는 몸통과 어깨, 팔, 손, 다리 등이 하나의 물체로서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질량을 증가시킬 수 있다. 한 예로 동계올림픽에서 인기가 높은 ‘봅슬레이’ 종목은 선수와 썰매를 합친 무게 규정이 있을 정도이다.
다음으로, 최대속도에 이르기 위해서는 움직이는 과정에서 근육을 이완시켜야 한다. 이상하게도, 근육의 특성은 근력의 수준을 줄일수록 속도가 증가한다. 최고 속도를 낼 수 있는 근력의 수준은 최대 근력의 약 1/3 정도라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힘을 쓰려면 힘을 빼야 한다.’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다.
따라서 최대의 힘을 가하는 것은 임팩트 순간에만 필요하고 나머지 움직임의 과정에서는 근육의 긴장을 빼고 움직임의 속도를 증가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 근육을 조절하는 신경의 '집중성'과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
거의 모든 운동 기술의 습득은 바로 이러한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처음 운동을 배우는 초보자가 힘을 빼는 법을 익히기는 결코 쉽지 않다. 탁구, 테니스, 골프, 수영 등을 처음 배우는 초보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불필요한 근육들로 잔뜩 경직되어 있다.
최근 골프채를 다시 들었다. 한 오륙 년 전쯤에 배우기 시작했는데 때마침 바쁜 부서로 옮기면서 얼마 못하고 클럽 가방째로 창고에 들어가 녹슬고 있었다. 어색한 ‘아이언’을 다시 잡으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비싼 돈을 주고 레슨 전문 연습장에서 한 달간 지도를 받았다.
난 한 달간 속성으로 갖가지 비책을 배워 열심히 연습하면 남들만큼 골프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골프장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필드에서 펑펑 골프공을 날리는 환상을 품었었다.
그러나 한 달 동안 내가 코치님에게 들었던 말은 ‘힘을 빼라’ 뿐이었다. 물론 멋진 자세를 잡으며 한가운데로 멀리 공을 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참으로 힘들고 허망한 한 달이었다.
다행히 한 달의 레슨, 틈틈이 봐온 유튜브 영상, 그리고 개인적 연습을 통해 값진 깨달음을 얻었다. 힘을 빼면, 특히 어깨에 힘을 빼면 많은 것이 한꺼번에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길을 알았으니 부지런히 그 길을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코치님을 포함한 많은 프로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것이다.다만 그 길이 참으로 길게 느껴져서 걱정일 뿐이다.
몸에 힘을 빼고 있으면 순발력이 좋아진다. 대응 능력이 빨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힘을 주고 있으면 느리고 둔해진다.
탱고를 출 때 스타카토가 잘 되려면 힘을 빼야 한다. 힘을 뺐다가 힘을 순간적으로 주면 효과가 크다. 타월 한 쪽을 잡고 다른 쪽을 내 보냈다가 낚아채는 식이다. 모든 스텝의 이음새도 힘을 빼야 부드럽게 연결된다.
운동을 할 때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우리는 늘 힘을 주는 것(긴장)에 익숙하다. 일을 할 때, 몸을 움직일 때, 뭔가에 집중해야 할 때, 심지어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때도 힘을 주고 있다.
불필요한 힘을 주면서 내 몸과 마음을 괴롭힌다. 매일매일의 바쁘고, 해야 할 일들로 가득한 삶에서 인생에 더 많은 짐을 지우는 지금의 행동들을 줄여 주지않는 이상 평안함을 느낄 수 없다.
그래서힘을 빼라는 말은 운동할 때만 필요한 건 아닌 듯싶다.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더 잘하려고 신경을 쓰면 몸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면 대부분 기대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 무리하게 힘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삶에서힘을 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잘하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으나 결과적으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알게 되었을 때 좌절하기보다는 스스로에게 '괜찮아'라고 말해줄 수 있는 마음의 공감그 어디쯤이아닐지.
부족한 부분은 이를 보충하는 수많은 연습을 통해 몸에 익숙하게 할 수 있다. 몰라서가 아니라 충분히 익숙하지 않아서 힘을 빼는 게 어려울 뿐이다.
가끔 회사에서 쓸데없이 바쁜데 성과가 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힘 빼는 것에 익숙지 못한 사람들 말이다. 뭔가 항상 야근하고 계속해서 불필요한 일을 만들고 아등바등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안 되어 있는 사람들.
아니면 멀쩡히 잘 돌아가는 프로젝트에 굳이 의미 없는 일을 추가해서 훼방을 놓아 주위 사람 힘들게 하는데 돌고 돌아 다시 보면 결국 초안이다. 미숙함과 조급함이라는 잘못된 조합이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직장인이라면잘 알고 있으리라.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날 그 자리에 가지 않았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그때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달라졌을까?’그러고 보면 현재 마주한 삶은 대부분 내가 의도하지 않았거나, 나 아닌 다른 이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 것 같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세상 일은 내가 하나하나 계획한 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많은 생각과 걱정이 오히려 내 발목을 잡은 때가 얼마나 많았나.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은일자중하는 것도 좋은 방책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낀 경험상, "시간" 또는 "진리"라는 초월자는 인고의 시간을 기다려 온 자에게 그리 박하지 않았다.
지금 고민하고 있는 그 문제, 그렇게 비장하지 않아도 된다. 조금 힘을 빼는 것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