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달리고 있는 나
서브4는 러너들 사이에서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통한다.
풀코스를 네 시간 안에 완주했다는 숫자는, 그 사람의 성실함과 자기관리 능력까지 함께 증명해 주는 것처럼 여겨진다. 나도 그 숫자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2025년 서브4가 목표예요.”
말은 그럴듯했다. 말만 보면 이미 반쯤은 해낸 사람 같았다.
기록은 4시간 3분이었다.
누군가는 아깝다고 했고, 누군가는 거의 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3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애써 웃어 넘겼지만, 마음 한쪽에 계속 걸렸다. 완주보다 미완성에 가까운 숫자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애매함 덕분에 나는 계속 서브4를 이야기할 수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목표를 세우자 가장 먼저 바뀐 건 훈련이 아니라 생활이었다.
술을 끊겠다고 말하진 못했다. 그 말은 너무 거창했고, 나는 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대신 “내일 아침 러닝이 있어서요”라는 핑계를 꺼냈다. 한 잔도 안 마시는 날이 늘어났고, 마시더라도 예전처럼 무너지진 않았다. 일찍 자겠다고 다짐했지만 실패한 날도 많았다. 그래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서브4라는 말이, 기울어지던 나를 간신히 붙잡아 주고 있었다.
사실 술은 내게 오래된 도피처였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을 때, 감정이 바닥을 긁을 때, 술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다음 날의 후회까지 포함해서 하나의 세트처럼. 나는 술을 원망했고, 동시에 그 안으로 계속 들어갔다. 빠져나올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빠져나올 이유가 없어서였다.
그 시절의 나는 살고 싶다기보다, 그냥 오늘을 넘기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왜 굳이 서브4를 말하고 다녔을까.
누군가에게 대단해 보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스스로에게 명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는 술과 무기력 사이를 오갔다. 이유 없이 지치고, 이유 없이 나를 미워했다. “목표가 있다”는 말 한마디면, 그 상태로 완전히 주저앉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서브4는 나를 앞으로 끌어당기는 목표라기보다, 뒤로 완전히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 주는 말이었다.
그래서 서브4는 점점 기록의 문제가 아니라 상태의 문제가 됐다.
페이스보다 수면 시간을 먼저 보게 됐고, 심박보다 장 상태를 신경 쓰게 됐다. 시계에 찍히는 숫자보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통과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예전엔 러닝이 성과였다면, 지금은 관리에 가까웠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달렸다.
어쩌면 나는 앞으로도 서브4를 못 할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리기를 그만둘 것 같지도 않다. 목표가 사라지는 순간,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것 같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술과 후회 사이를 오가던 그 시절로.
그래서 나는 이 핑계를 계속 쓸 생각이다.
더 잘 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덜 망가지기 위해.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기 위해.
서브4는 내게 목표이자 핑계다. 그리고 그 핑계의 가장 깊은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아직,
조금 더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