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속삭임은 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PART2. 무너진 기록

by 이타

한 달이 넘는 노숙 생활은 몸과 정신을 동시에 무너뜨렸다.
음식은 거의 먹지 않았고, 깨어 있는 시간은 술로만 채웠다. 잠은 오지 않았고, 하루하루를 견딘다는 말 외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시간이 흘렀다. 그 끝에서 병원에 입원했다.

이틀간의 신체 회복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이삼 일을 술로 보냈다. 어머니의 걱정과 감시로 술을 마시지 못한 지 고작 하루 만에,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익숙한 듯 낯선 멜로디와 종소리.
뒤이어 들려온 것은 처음 듣는 여성의 목소리였다.

처음엔 수군거리는 잡담처럼 작았다. 하지만 귀를 기울이자 점점 또렷해졌다. 옆방에 누가 있나 싶어 방문을 열고, TV 화면을 확인하고, 전화기 수화기를 내려다봤다. 집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거울 속에는 초췌해진 내 얼굴만이 남아 있었다. 인기척도, 소음도 없었다.

침대에 다시 누워 눈을 감자, 이번엔 분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야. 이리 와.”
“나야. 여기야.”

부엌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멀리 붉은색 십자가가 보였다.
“여기야!”
창밖을 내려다보니, 2~3미터 높이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차도에는 사람도, 차도 없었다.

“이리 와, 이리 와.”

창틀을 잡고 뛰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창가에 다가간 순간, 낯선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안 돼.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넌 왜 애한테 이런 걸 시켜?”

남자와 여자는 말싸움을 시작했고, 그 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으로 누군가 전음을 보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 이건 환청이구나.

불안과 공포에 거실에 있던 인삼주 한 병을 단숨에 마셨다. 그 이후로 목소리는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내가 이름도 모르는 동네의 13층 아파트 거실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모 댁이라는 것도 그제야 인식했다.

그날 이후 나는 신을 믿지 않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여러 차례 진전섬망으로 환시와 환청을 겪은 나에게는 천국과 지옥이 외부에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 아니라, 무너진 정신이 만들어내는 내부의 풍경이었다.

이 일은 내가 스무 살 초반이던
2005년 여름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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