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다로 가자.

by 정자까야

여름씨 기분 좋아 보이네요?


아..그래요? 제가 포커페이스가 안됩니다. 금요일 밤에 겨울씨랑 데이트..안좋은게 이상한 거 아닙니까? (웃음)


그런 멘트 좋아요. (웃음)


참 어쩌다가 남자 셋이 한 여자를 좋아하는 상황에 휩쓸린건지..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죠. 물러설 생각은 1도 없지만..상당한 인내와 마상 입을 각오는 해야겠더군요.


죄송합니다. (머리 꾸벅)


아뇨. 어차피 참가는 제가 한거니. 다만 중간중간 지치지 않게 오늘같은 연료만 넣어주심 감사하겠습니다. (웃음)


아..문득문득 결혼이란 걸 꼭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가을씨, 여름씨, 봄이 다 좋은 사람들인데 누군가는 상처를 받아야 하고..이기적이라고 욕 하시겠지만 저는 다들 저한테 잘해주셔서..이렇게 세 분 다 봬도 좋은데..(웃음)


어디가서 그런 얘기 마세요. 돌 맞아요. (웃음) 겨울씨가 너무 멋진 사람이라 시간을 끌어도 다들 붙어 있겠지만..그건 음..우리 정서에는 안맞는다랄까..서구에서는 그런 관계도 가능할 것 같긴 한데..거기야 결혼이나 이런 제도에서 좀 더 자유로울테니. 하지만 저야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죠. 봄씨나 가을씨는 상당히 버티겠지만 결국 두 손 들겁니다. 워낙 귀하신 몸들인데 집안 어르신들이 가만 있겠습니까..


시간은 여름씨 편이군요. 제가 버텨드릴까요? (웃음) 하지만.. 봄이한테 들었다면서요? 저희 어머니 얘기. 만만치 않은 분이세요. 시간이 여름씨 편이라 해도 어머니는 결코 여름씨 편이 아닐거에요.


알고 있어요. 근데 봄이라는 사람은 겨울씨한테 뭡니까? 그런 일까지 말했나요? 미주알고주알..얘기 안하는게 없군요.


네..거긴 워낙 오래된 인연이라..남동생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하고..기분 나빴으면 미안해요.


아뇨. 그 인간 미남이긴 한데 진중한 맛은 없었어요. 남자끼리 커피가 뭐냐느니..어쩌구 하더니 남자대 남자로 얘기한 걸..참 내.


겨울은 멋쩍은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가 이내 밝은 표정으로 여름의 얼굴을 쳐다본다.


여름씨 이 샐러드 어때요? 맛있죠?


네..맛있어요. 겨울씨도 맛있으셨는지 아까부터 계속 드시더라구요. (웃음)


네..여름씨가 사주는거 맞죠? (웃음) 이 샐러드의 맛은 요거..사과같지 않아요? 새콤달콤한 맛이 샐러드의 싱싱함을 한껏 돋우는 느낌이에요..


그리고는 잠시 이어지는 침묵. 겨울은 무언가 말하려다 말고 다시 말하려다 말고. 여름은 기다렸다.


저는..저는..사과..사과를 줄 수 있는 사람을 원해요. 좀 많이 쌩뚱맞죠? (웃음)


네? 사과요? 사과가 필요하다구요? 몇 박스라도 보내드릴게요. (웃음) 무슨 말이에요? 사과를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니..


탈무드였나..이솝우화였나..공주를 구하는 형제들 이야기가 기억나요..제가 감히 공주일 수 있다면..저는 사과를 준 이를 택할 것 같아요.


사과 이솝우화라니..백설공주도 아니고..수수께끼인가요?


여름씨가 잘 생각해보세요. 엄마는 둘째치고 제가 시간 끌어드려야 여름씨에게 승산이 있다면.. 우선 당사자인 제 마음부터 잡으셔야하잖아요..(웃음)


그렇긴 하죠..

여름도 알고 있다. 자신이 언덕독인 걸.


아..다음달에 정말 휴가 못내는 거죠? 아..모처럼 겨울 바다를 보러갈 기회인데..겨울씨..겨울바다..이건 환상의 콜라본데..


친구들과의 1박도 어림없어요. 친구들 부모님은 1박이 아니라 365박 하고 오라던데..(웃음) 미안해요. 아빠 돌아가신 이후 엄마가..많이 힘드셨어요. 저도 어릴 때라...세상에 의지할 건 엄마 뿐이었고... 엄마가 과하다는 걸 알지만..엄마도 의지할 데가 우리들 밖에 없었고..엄마한테 상처주고 싶지 않아요. 제가 감내할 수 있는 부분은 그냥 수용하고 살아요..여름씨 부모님은 방임형이라 하셨죠? (웃음) 바보같죠? 저랑 엄마 관계..


아뇨..어머님 사연이라면..충분히..


겨울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속초라고 했죠? 아..너무 아쉬워요.


네..저도 너무..


여름씨 혹시 시월애라는 영화 알아요?


알죠. 완전 옛날 영화죠. (웃음) OST가 상당히 좋았죠. 시월(10월)에 있던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했었죠. (웃음)


거기서 남녀 배우가 만날 수 없다보니 메일을 주고 받잖아요. 그러면서 자기의 여행코스를 알려주면 상대가 따라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기억나요?


날듯말듯? 만날 수 없으니 데이트를 그리 했겠네요. 상대가 갔던 코스를 따라가며..같은 경험을 공유하면서..서로를 느꼈던..그랬던 거 같아요. 근데요?


이번에 동해 가셔서..그 날 하루의 여정을 저한테 메일 보내주시는 건 어때요? 제가 집에서 랜선여행이라도 해볼게요..아..안피곤하시다면요..(웃음)


오..멋진 아이디어네요. 전 사실 벌써부터 기가 빠졌거든요. 기회가 되니 가긴 하는데 혼자 무슨 짓 하는걸까란 생각이 출발을 보름이나 앞 둔 지금부터 들 지경이었거든요. 류시화님이 엮은 시집에 무명시가 있거든요...제목이 봄의 정원이었나..


여름은 겨울의 눈을 바라봤다.


겨울 바다로 오라.

만약 그대가 오지 않는다면 이 바다가

무슨 소용인가

그리고 만약 그대가 온다면

이 바다가 또 무슨 소용인가..


겨울은 여름을 말없이 바라봤다.


멋진 시네요..


네..제가 정원과 꽃을 바다로 바꿨어요. 저한테는 그 고대의 시만큼 적절하게 제 마음을 표현할 능력이 없어서 인용했어요. 12월이든 3월이든 겨울 바다든 봄의 정원이든..어떠한 시간, 공간이라해도 아무 의미 없어요. 겨울씨와 같이 있는 풍경. 그게 아니라면..


감사합니다. (겨울 일어나 고개를 숙인다)


소리내 웃는 여름.


겨울씨. 너무 좋은 제안. 제가 감사합니다. 겨울씨가 제 여정을 비록 랜선으로나마 같이 한다고 생가하니..발걸음이 갑자기 의미가 생겼어요. 시월애 남주마냥 행동해볼게요. 겨울씨에게 좋은 여행코스를 먼저 답습한다는 기분으로..아..상상만으로도 벌써 기분 좋네요.


여름씨. 저도요. 저도 기대할게요. 12월의 겨울 바다..12월의 속초라니..게다가 화자가 감수성 넘치는 여름씨라니..(웃음) 여름씨. 이거 마저 드세요. 제가 기분 좋아서 양보합니다..


아..이 사과 말이죠. 넵. 잘 먹고 그 수수께끼 풀어야 하니까요.


여름은 웃으며 사과를 집어들었다..







작가의 이전글보통의 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