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아. 언니 언제쯤 오는지 전화 함 해봐라.
주말을 맞아 가족 식사를 하기로 했다. 겨울의 언니네는 부부가 의사라 날을 맞추기 쉽지 않다.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정리해서 더 치울게 없어보이는데도 엄마는 여전히 청소중이다.
엄마 1시 전에는 도착할 것 같대요.
그래? 좀 일찍 오지. 그러다 두어시간 후엔 또 바쁘다고 갈 거 아니냐. 니네 형부 이제 개원한지 얼마 안돼 바쁜건 알겠는데 이러다 얼굴 잊어버리겠어. 겨울이 넌 결혼해도 자주 좀 와라.
엄마. 잘 난 사위를 원해요 아님 자주 볼 수 있는 사위를 원해요?
뭐 그렇게 꼭 나눠야겠니? 잘나고 자주 볼 수도 있는 사람이 왜 없겠어?
엄마..그런 사람 없어요. 엄마 기준에 잘 난 사람 중엔 그런 사람 못봤어요.
겨울의 엄마는 못들은 척 청소를 하다가 갑자기 생각난듯이 묻는다.
너 지금 만나는 가을인가 그 사람은 변호사라고 했지?
네..
어떻게 만났다고 했지?
빨리도 물어보시네요. 거의 일년은 됐는데..일전에 한번 엄마한테 얘기했던 것 같은데..소개로 만났어요. 대학 친구가 소개해줘서.
일년 됐다고..벌써 그리 됐니? 니 인생 니가 사는거니 뭐라 못하겠지만..난 그 전에 너 맘에 들어했던 그 의사가 좋았는데..변호사인가 그 사람은 부모님도 한 분 없다며?
엄마..지금 누가 누굴 얘기하는거에요? 다른 집에서도 우리 집 그리 얘기할거란 거 몰라요?
겨울의 엄마는 잠시 말이 없다가 다시 그 의사 얘길 꺼냈다.
엄마의 성화로 언니와 형부는 겨울에게 동료 의사 몇 명을 소개해준 적이 있었다.
넌 도대체 왜 그 사람 안만난거냐. 형부 말 들어보니 정말 사람 괜찮던데..
좋은 사람이었어요...
근데?
엄마. 엄마는 왜 아빠가 의사 아닌데도 결혼했어요? 아빠를 사랑했으니 그런 거 아니에요? 제가 제 한 몸 건사 못할까봐 누구한테 그리 맡기고 싶은거에요? 엄마 딸 행복한 거 그게 젤 중요한거 잖아요.
겨울아. 그 얘기 또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있다 언니네도 오는데 좋게 있다 식사하자. 너도 알겠지만 너희 아빠는 엄마한테 그러면 안되는거였어. 엄마는 아빠 하나만 보고..할머니 할아버지 등지고 그렇게 아빠 하나만 보고 왔는데..어린 너희랑 경제적 능력도 없던 엄마를 두고 도망가서 연락도 없다가..어느 날 사망 신고서로 안부를 전하는 사람이라니..낭만? 겨울아. 세상에 그런 거 없다. 잘나고 얼굴 자주 보여주는 남자도 없겠지만 결혼 후에도 너만을 위해 목숨거는 그런 남자는 더더욱 없어. 속물처럼 보여도 어쩔 수 없지만 둘 중 하나라면 그냥 안정적인 삶이 최고야.
엄마..나 혼자서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어..외롭지 않으려고 결혼했는데 더 외로운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
에휴. 그만하고 네 방이나 한번 더 쓸고 닦아. 여자애가 서른 중반이나 돼서 방이 그게 뭐니..
겨울은 문득 언니에게 묻고 싶어졌다. 언니는 왜 형부랑 결혼한거야? 행복해? 결혼해서 집에 잘 안오는게 진짜 바빠서 그런거야? 아니면 혹시 다른 이유 있어?
겨울은 고개를 젓는다. 언니는 답해주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 전에 겨울 본인이 그렇게 묻지 않을 것이다. 자매끼리 속 터넣고 얘기한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아마도 교복 입던 학창시절이 마지막이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