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를 사랑하니?

by 정자까야

봄이는 언제 해?


봄이? 겨울은 미희와 통화하다 이해를 못했다는 듯 되물었다.


기억안나? 연애 상대방들 돌아가며 봐 달라고 했잖아. 가을씨 봤으니 이제 여름씨랑 봄이 차례잖아. 여름씨는 하이라이트로 마지막에 만나야 하니 그 전에 봄이 먼저 보자는거지. (웃음)


아..그거..


겨울은 시간을 두고 진행하고 싶었지만 오히려 친구들이 재촉하는 상황이 됐다. 특히 결혼해서 바쁜 경희와 달리 연애를 쉬고 있는 미희는 시간도 있고 은근 대리만족을 느끼는 모양인지 종종 그 얘기를 꺼냈다.


아직 봄이한테 얘기도 못했는데..


망설이는 겨울이 답답했는지 미희는 자신에게 맡기라는 식이다.


봄이는 말하면 지금이라도 나올 애야. 넌 아직도 개를 그리 모르니?


이렇게 되어 겨울은 본의 아니게 미희에게 봄이의 일을 일임하게 됐다. 미희는 봄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경희와 겨울의 일정을 감안하여 주말 중 하루를 그날로 정했다.


시내 한 파스타 집에 모이기로 한 네 명의 선후배.


제일 먼저 미희가 도착했고 좀 있다 봄이가 왔다. 원래 말쑥하게 다니는 타입이지만 더 신경쓰고 온 티가 났다. 미희와 봄이 학창 시절 얘기로 웃고 있는 사이 겨울과 경희도 제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뭐가 그리 잼있어?


겨울은 도착했을 때 한창 웃고 있던 미희에게 물었다.


아니..별났던 우리 전공 교수 얘기하다 그 때 생각나서..너도 기억나지? 수업 시간에 쿵푸 시범 보이셨던?


아..그 교수님. 확실히 특이하시긴 했지. (웃음)


넷은 자리에 앉자마자 학창 시절 얘기를 한참이나 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세팅을 끝낼 무렵에야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아니..


봄이가 드디어 말할 시간을 찾았다는 듯 하소연조로 말했다.


선배님들. 이건 좀 아니지 않아요?


뭐가? 경희 대답.


가을씨 봤을 때는 되게 진지한 분위기로..상대를 겨울 선배 예비 배우자감으로 대하셨을 거잖아요.


그런데? 미희 대답.


그런데가 아니구요. 제가 너무 불리하다는 거에요. 절 다들 너무 친숙하게 대하니까 진지한 분위기가 안난다구요. 저도 엄연히 겨울 선배의 연인으로 대접받고 싶다는 말씀이죠.


봄이를 제외한 셋은 꿀억은 벙어리처럼 아무 얘기를 못하다 경희가 대변인격으로 나섰다.


봄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잖아. 네 말도 일리가 있고 네 입장도 이해는 가. 그렇다고 널 모르는 사람처럼 분위기 연출을 어떻게 하니? 그냥 네가 감수해야 하는거야. 이런 친분을 잘 활용하는 게 어떻게 보면 네 능력이지. 안그래?


경희의 말에 미희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고 겨울은 잠자코 있었으며 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경희 선배 말이 맞네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맞아요. 이런 친분은 다른 두 명은 만들래야 만들수도 없는 거죠. 이걸 이용하는 게 제 능력이라..반박 불가네요. 역시 선배는..


봄이 인정하자 미희는 그제서야 한마디 했다


그래. 얘. 사실 너한테 이런 시간 주는 것도 겨울이가 착해서 그런거야. 널 그래도 인정해주니까 가능한거지. 나 같았음 어림도 없어.


봄은 미희를 보더니 헛기침을 하며


다행이네요. 어림도 없어서..


둘이 티격태격하는 게 어이가 없는지 경희는 팔짱을 끼고 쳐다봤고 겨울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겨울은 내심 한 숨 돌렸다. 봄이 딴에는 마이너스라고 여길만도 했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과 만나보는 것도 방법이었겠지만.. 이런 걸 부탁할만한 친구들이 없었다. 미희, 경희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겨울은 상상조차 안됐다.


어떻게 겨울이 좋아하게 됐는지나 좀 말해봐. 경희가 파스타를 먹으며 운을 띄웠다.


지금와서 하는 얘기지만..처음엔 경희 선배가 눈에 들어왔어요.


뭐? 셋은 서로 쳐다보며 웃음보를 터뜨렸다.


진짜야? 미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아니..너무 진지하게 듣지 마시구요. 그냥 그랬다구요. 예쁜 선배네..뭐 그 정도 느낌. 아니 다들 학교 다니며 그런 생각 해 본 적 있잖아요.


봄이는 반응이 당황스러웠는지 바로 다음 말을 이어갔다.


한달 여 지났나. 멀리서 경희 선배가 보이길래 따라갔어요. 자주 말해야 친해지니까..


선수야 아주. 미희가 한마디 했다.


학생회관 동아리실에 들어가길래..전..그간 동아리 가입은 안했으니까..밖에서 서성이다 안나오셔서..에라 모르겠다..미친 척하고 들어가자라는 마음으로 문을 열려는 순간..


미희와 경희, 겨울은 그런 일이 있었냐는 표정으로 봄이를 쳐다봤다.


갑자기 문이 열려서 제가 이마를 찧었거든요. 저는 너무 놀라고 아파서 휘청거렸는데 두 여자분이 복도를 달려나가는 거에요. 그리고 마지막에 한 분이 나오셨는데 이마를 짚고 있는 절 보더니 상황 파악을 하셨는지 괜찮냐고 물어보시더군요.


아..겨울은 그제서야 그 날을 기억해냈다.


그 때 겨울 선배를 처음 봤던 거에요. 왜 신입생 환영회나 그런 때는 안보였는지 모르겠지만..거짓말 좀 보태서 제 눈에 별이 반짝인 것이 이마를 부딪혀서 그런건지 진짜 별을 봐서 그런 건지 헷갈리더라구요.


겨울은 활짝 웃었고 두 친구들은 냅킨 등을 집어던지며 야유했다. 봄이는 자신의 회상 표현이 만족스러웠는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황망한 첫 만남 이후 제 관심은 오로지 겨울선배 뿐이었어요. 재수해서 학교 옮기려한 것도 없던 일이 됐고..동아리 가입해서 팔자에도 없는 연극 무대 연출을 맡았죠. 부모님이 이상하게 생각하셨어요. 그럴 애가 아닌데..그런 느낌 알죠? 그래도 제 선택이니 인정해주셨죠. 더 공부하라거나 그러진 않으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선배에게 빠졌던 것 같아요. 남자친구 있다는 얘길 들었는데도 학교 눌러앉은 거 보면.


혹시 후회해? 경희가 물었다.


가끔 생각해 본 적 있어요. 난 지난 선택을 후회하나? 제 대답은..아니오. 였어요. 다르게 살 수 있었죠. 충분히..제 자랑 같지만..선배들..저 나름 고등학교 때 공부 잘 했어요. 물론 선배들도 잘 했겠지만..시험 당일 컨디션이 엉망이었고..아..물론 핑계라는 거 압니다. 재수했으면..절대라는 건 없지만..아마도..높은 확률로..원하는 대학 가지 않았을까..그건 중요한 건 아니구요. 다르게 살 수 있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


그래. 이해했어. 미희의 정리.


다르게 살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고..그 선택에 대해 후회없다. 왜냐면..겨울 선배 옆에서 지낼 수 있었으니까..그렇게 정리해야겠네요.


봄은 후련하다는 듯 활짝 웃었다. 봄이의 환한 웃음은 오랜만이라고 겨울은 느꼈다. 확실히 경희, 미희와 함께 있으니 봄이도 긴장감 없이 하고픈 말을 다 하는 느낌이었다.


근데 너 유명한 CC였잖아.

미희는 한마디 툭 던졌다.


제가요? 봄은 금시초문이라는 듯 되물었다.


그래..누구더라. 외국에서 온 교환학생 여자애랑..아닌가?


아..제니퍼요..저도 마냥 선배 해바라기일 순 없잖아요. 선배 연애가 안되길 기다렸는데 계속 가더라구요. 저도 외로웠고..뭐 죄지은 거 아니니까..근데 그게 유명했나요? (웃음)


금발 미녀랑 사귀는데 안유명하면 더 이상한거 아닌가..하여튼 알겠고..앞으로 어쩔 셈이야? 경희는 웃으며 물었다.


나머지 두 사람도 마찬가지겠지만 저도 다 걸었습니다. 참가가 목적인 대회가 아니라구요. 이기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겁니다.


국화꽃 향기 생각나네..미희는 턱을 괴고 말했다.


아..셋의 탄성.


남자가 여자 기다리다 결국 인연이 됐지..박해일이었나..남자 주인공. 그러고보니 두 사람도 동아리 선후배아니었나..맞네..설정이 딱 그러네..경희가 영화를 떠올리며 말했다.


장진영이라는 배우. 사실 제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몇 안되는 여배우 중 한 명이었는데..젊은 나이에..너무 안타까웠어요. 봄이가 고 장진영 배우를 떠올리며 말했다.


영화처럼..그렇게..미희는 슬픈 마음에 목이 잠시 메였다.


봄은 다소 무거워진 분위기를 수습하려했는지 애써 밝은 음성으로


근데 겨울 선배가 연예계 데뷔했다면 장진영 배우 빰치는 인기였을걸요. 저 같은 남자가 아직도 메달리는 거 보면 말 다했죠. (웃음)


뭐..그래. 우리야 맨날 보니 그런가보다 하는건데..겨울이가 예쁘긴 하지. (웃음) 경희가 말했고 미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겨울은 웃기만 했다.


근데 한번으로 끝나는건 아니죠? 이 만남..


봄의 질문에 셋은 얼굴만 서로 쳐다보았다.


결혼 상대 오늘 내일 정하는거 아닐테니 앞으로 두세번은 더 봐야죠. 안그래요?


봄의 말을 딱히 부정하지 않는 겨울. 미희와 경희는 겨울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뭐..일리는 있네..미희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고 겨울은 미희를 보며 싱긋 웃었다.


밥 값 아까 냈어요. 선배들. 차나 한 잔 하러 가시죠.


당황하는 표정의 선배들을 보며 봄이 말했다.


왜요? 이런거 후배가 내면 안되나요? 가을씨가 냈을거 아닙니까. 일전에는. 말했죠? 오늘 전 후배로 온거 아니라고. 그리고..저 돈 많아요. 선배들보다 훨씬 부자일걸요. (웃음) 겨울 선배. 저한테 오세요. 순애보에..잘생기고..돈 많고..인성은 뭐 이정도면 괜찮은 편 아닌가요? (웃음)


겨울은 생각했다.


너 같은 애가 왜 날 좋아하니..난 진짜 아무것도 아닌데..네게 해 준 것도 없는데..내가..내가 그런 존재니?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봄아..제발 상처받지마. 네가 힘들어하면 나도 너무 슬플거야..


Ps.

여주인공이 물었다.

나를 사랑하니?


남자는 말했다. 당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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