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을 듯 닿지 않는

by 정자까야


왜 그렇게 봐요?


가을은 겨울의 눈빛을 보곤 웃으며 물었다.

아니요. 별 건 아니에요. 단지..

겨울도 뭔가 딱 잘라 말하기는 애매했는지 잠시 생각을 하다 말했다.

달라요. 지금까지의 가을씨와는.

그래요? 좋은 의미죠? 가을은 여전히 웃음을 머금었다.

네..확실히. 우린 거의 시내 식당에서 식사하고 인근 카페에서 차 마시고 그랬잖아요? 근데 오늘은 아쿠아리움에, 전망 좋은 레스토랑이라니..이거 가을씨 아이디어 맞아요?

아..그거요? 그럼요. 겨울씨 생각하며 제가..

가을은 말하다가 잠시 멈추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오로지 제 생각은 아니었고..연휴 말미에 대학 친구들 모임이 있었어요. 누군가 아쿠아리움에 다녀온 얘길 했는데 듣다보니 겨울씨랑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누구 아이디어면 어때요. 가을씨가 누군가를 떠올리고 실행에 옮긴게 중요하죠. 겨울은 웃으며 와인을 들었다. 가을은 음료가 든 컵을 들어 가볍게 부딪혔다.

근데 가을씨 저한테 대학 친구들 얘기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친구들 모임에도 나가긴 하나봐요? (웃음)

아..네. 오랫만에 한 번 다녀왔어요. 평소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는 없는데..연휴 기간 좀 적적했는지..연락 받고 가봐야겠다는 충동이 일어서..

막상 가보니 어땠어요? 반가운 친구도 있고 그랬나요?

네..다들 잘 지내더라구요. (웃음)

가을이 모임에 대해 길게 얘기하지 않아 겨울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기대보다는 별로였나보다 생각하면서.

겨울씨는 이번에 보성 다녀왔다면서요? 가을은 화제를 겨울의 전라도 여행으로 바꿨다.

네 지난번 전화로 잠깐 얘기한 것처럼..어머니 절친인 이모분이 보성 사셔서..녹차밭도 보고 바다도 보고..여수 가서 새조개 샤브도 먹고 왔어요. (웃음)

맞아요. 그랬다고 했죠. 저도 이번에 통영 다녀왔어요. 사실 겨울씨랑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죠. (웃음)

아..정말이요? 통영에는 무슨 일로?

어머니 고향이 통영이세요. 명절 때 웬만하면 한번씩 다녀와요. 어머니를 통영 앞바다에 모셨기도 하고 할머니가 아직 거기 계셔서..

아..겨울은 가을과 어머니의 아픈 과거를 떠올리곤 가을을 말없이 바라봤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할머니 혼자 계신지도 꽤 됐는데..자주 가 뵈야 하는 거 알면서도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간만에 가서 좋았어요. 할머니도 아직 건강하시고..엄마도..잘 지내시는 것 같았어요.

가을은 엷은 웃음을 머금었다.

해양장을 지낸 건가요? 겨울이 물었다.

네..배를 타고 조금 나가서..어머니 유골을 바다에 뿌렸었죠. 엄마의 유언은 없었지만 왠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어요. 평소 할머니를 자주 찾았던 엄마라..가까이서 실컷 할머니 보시라고..

가을은 고개를 숙였다. 겨울은 침묵으로 가을을 위로했다.

겨울씨도, 저도 모두 바다를 보고 왔잖아요. 바다를 보고 있자니 바다의 안도 보고 싶더라구요. 어쩌면 겨울씨도 같은 마음일 수 있겠다 싶어 아쿠아리움 표 끊은건데 마음에 드셨나 모르겠네요.

가을은 무거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애써 밝은 티를 내며 말했다. 겨울도 그런 마음을 읽었는지 더 반색하며 말을 받았다.

그럼요. 얘기한 것처럼 너무 좋았어요. 평소 가을씨 같지 않았지만..평소만큼이나 좋았어요. (웃음) 그리고..그런 배려까지 녹인 선택이었다니..설명 듣고 나니 더 감사하네요.

겨울은 진심으로 감사했다. 가을의 노력이 보였고 그만큼 존중받는 느낌이었다. 확실히 이전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겨울을 향한 가을의 표현은.

어머님은 잘 지내시죠? 가을이 물었을 때 겨울은 조금 놀랐다. 카페에서의 우연하고도 갑작스런 만남..가을은 엄마와의 첫만남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힘들었을 대화였기에 엄마에 대한 얘기를 꺼릴 거라 짐작했는데 가을은 외려 엄마 얘기를 듣고 싶어했다.

일전에 떠나시며 언제 한번 인사하러 오라는 말씀이 내내 마음에 남아서요. 혹시 어머님께서 왜 인사가 늦냐고..그런 말씀 안하셨는지..괜히 밉보이고 싶지 않더라구요. (웃음)

네..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네요. 가을씨 입장에선..

그리곤 조금 더 부연했다. 이번 여행할 땐 별 말씀은 없으셨어요..

그렇군요. 가을은 대답하며 겨울을 바라보았다.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네요. 가을은 웃었지만 어딘지 기운이 없는 느낌이었다.

차 가지고 가신 거였죠? 이번엔 겨울이 화제를 돌렸다.

네. 통영에서 바로 상경하려 했는데 동생이 중간에 사찰이라도 다녀오자고 해서..

아..동생이 불교 신잔가요?

아뇨. 저희는 특별히 종교는 없어요. 아버지도 그렇고..엄마가 불교셨죠. 집에서 유일하게..오는 길에 살펴보니 공주에 유명한 사찰이 있더라구요. 듣기론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고 하던데..

아..굉장히 오래된 사찰이었나 보네요. 유네스코에 등재될 정도면.

네..저는 잘 모르지만..언뜻 보기에도 역사가 느껴지더랴구요. 고속도로에서 얼추 10Km는 들어갔던 것 같은데..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동생과 저, 아버지 셋이 오랫만에 산책을 같이 했어요. 속세의 번뇌를 잠시 잊고 고즈넉함 속에서..어머니가 왜 사찰을 그리 좋아하셨는지 새삼 느꼈답니다. 개울이 흐르고 개울가에 사람들이 쌓아올린 무수한 소원탑도 보였어요. 아..김구 선생님이 그곳에서 삭발을 하고 잠시나마 출가하셨다고 하네요.

아..정말이요? 백범 김구 선생님이 출가하신 적이 있었나요?

네. 겨울씨도 몰랐죠? 저도 처음 듣는 내용이라 신기했어요. 6개월인가..길지는 않았는데..피신할 거처였나 본데 많은 깨달음을 얻었던 곳이라고..

그렇군요. 가을씨 덕에 역사 공부했네요. (웃음) 그럼 저도 하나 알려드릴까요?

아..네. 기꺼이 듣겠습니다. (웃음)

가을씨. 사실 가을씨가 공주 얘기했을 때 저 진짜 소름 돋은거 있죠?

네? 왜요? 설마..겨울씨도요?

네 맞아요. 이번 설 연휴 경로가 가을씨랑 거의 판박이에요. 가을씨는 통영 바다 보고 공주 들렀다 왔죠. 저도 보성 바다 보고 공주 들렀다 왔거든요. 겨울은 활짝 웃으며 말했고 가을도 신기하다는 듯 따라 웃었다.

엄마랑 저..내려갈 땐 바로 광주로 갔는데 올라갈 땐 부여에 들르자고 제가 처음부터 주장했어요.

부여요?

네 충남 부여.

왜요? 부여에 뭐가 있나요?

네. 가을씨 들어보셨나 모르겠네요. 백제 금동대향로라고..백제 시대 향로인데 그게 원형이 거의 그대로 보존된 상태로 발굴되어 부여박물관에 전시돼 있거든요.

아..그렇군요. 전 몰랐어요.

네..저도 뉴스로 알고 있었는데 꼭 한 번 보고 싶었거든요. 실물을요. 엄마를 졸라서 처음부터 일정을 그렇게 잡았어요. 이모님이 광주까지 데려다주시고 광주에서 공주까지 KTX로, 역에서 박물관까지 택시로..차 있었으면 더 수월했겠지만 어렵게 찾아갈만한 가치가 있었답니다.

겨울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뒤적이더니 사진 한 개를 가을에게 보여주었다.

아..

가을은 그저 외마디 탄성을 밷었다. 그게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인것 마냥.

달리 할 말이 없네요. 그저 탄성만 연발하게 될 뿐. 가을은 겨울과 사진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맞아요. 달리 할 말이 없죠. 그 감정을 느끼고 싶어 간 거에요. 압도적 아름다움. 박물관 3층에 올라갔을 때..마침 방문객이 저희밖에 없었어요. 저희가 거의 오픈런 했거든요. (웃음) 엄마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는데 전 심장이 시키는대로 계단을 뛰어 올라갔어요. 그리고 아무도 없는 관람실 한가운데 놓여진 대향로를 보는 순간..

겨울은 아직도 그 때의 여운에 사로잡힌듯이 잠시 숨을 머금었다.

정말 뭐랄까. 눈물이 나올 정도로 장엄했어요. 천년 이상의 세월이 빚어낸 아름다움에 압도돼 버렸다고 할까요.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바라봤어요. 향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에 꼼짝을 못하겠더라구요.

겨울의 찬사에 가을은 그저 웃었다. 향로를 보진 못했지만 알 것 같았다. 겨울의 표정만 봐도. 향로를 떠올린 겨울의 얼굴은 오늘 그 어떤 순간보다 빛나고 아름다웠다. 웃기는 말이지만 가을은 천년의 국보에게 질투심마저 일었다.

저도 언제 한 번 가봐야겠어요..가을의 말에

꼭이요. 정말 후회 안할 거에요.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본 적이 있었는데..사람들로 인산인해라 멀리서만 바라봤거든요. 근데 대향로는 맘만 먹으면 저처럼 오픈런해서 지척에서 감상이 가능하고..물론 좀 있으니 사람들이 몰려들긴 했지만요 (웃음)

장면이 연상되어 가을은 웃었다.

감동은 모나리자 못지 않아요. 가을씨도 한 번 꼭 다녀오시면 좋겠네요. 겨울이 마저 얘기했고 가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중에 같이 다녀요. 박물관도 사찰도..

겨울은 가볍게 웃으며 후식으로 나온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오늘을 마감하고 있었다.

낙조도 아름답네요. 대향로만큼이나..

겨울은 한강을 물들인 노을을 보며 말했다. 가을은 겨울의 옆모습을 보았다. 노을은 한강뿐만 아니라 겨울의 얼굴도 물들였다. 아름다웠다. 이 사람..놓치고 싶지 않다. 놓칠 수 없다는 조바심이 일었다. 목이 타는 느낌에 가을은 물을 한 잔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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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에서 올라오는 길에 걸려온 혜선의 전화. 차 안에 뜬 혜선의 이름에 가을은 당황하여 전화를 끊었다. 다행히 아버지와 동생은 자고 있었다. 휴게소에서 짧은 대화를 한 후 연휴의 끝에 만난 두 사람.

명절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며 커피 한 잔을 하는 동안 혜선이 말했다.

토요일에 겨울씨 만나기로 했다며? 또 그냥 밥 먹고 커피 마시고 하려고? 그러지 말고 다른 데 좀 가봐. 추천해달라고? 얘. 데이트는 네가 하지 내가 하니? 가령..아쿠아리움 같은 데 어때? 너도 통영에 다녀왔고 겨울씨도 보성 바다 본 것 같다며? 그럼 둘 다 바다를 봤으니 그 연장선에서..바다 안을 한 번 보는 것도 괜찮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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