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by 정자까야

겨울아. 빨리 나와. 늦겠다.

화장을 하는 겨울을 보고 엄마는 성화다. 보성에 있던 이모가 항암 치료차 금요일에 상경했는데 엄마는 이모를 그냥 보내기 싫었는지 토요일 점심 약속을 잡았다. 그리곤 선약 있다는 겨울을 억지로 눌러앉혔다. 언제 또 보성 가겠냐며.

겨울은 미희와의 약속을 저녁으로 미뤘다. 꼭 엄마의 강요 때문은 아니었다. 지난번 만남 때 살 날이 얼마 없을지 모른다는 이모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언니. 어제 우리집에서 자라니까 꼭 그렇게 고집을 부려요? 엄마는 이모를 보자 아쉬움에 불평부터 했다. 겨울은 엄마를 흘깃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에겐 그런 말을 하지도 않지만 설령 했다 해도 인사치레였을 것이다. 엄마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도 좋을 유일한 사람. 그게 이모였다.

그리고 이 식당은 또 뭐에요? 순 젊은 애들밖에 없네..식당 안에라도 들어가지..진짜 여기서 먹자구요?

이모는 점심 식당을 손수 예약해서 미리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간단한 샐러드류와 화덕피자를 파는 곳이었는데 야외 테라스 자리를 맡아 놓았다.

진아 너 이런 입맛 아니었니? 시키면 제일 잘 먹을 얘가 불만은 왜 이리 많아..날도 좋고 미세먼지도 없으니 야외 자리만큼 명당이 없는거고..안그러니 겨울아?

이모는 겨울에게 찡긋 윙크를 보냈다. 겨울은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엄마도 투덜거림을 멈추고 어느새 맑은 하늘을 넋놓고 보고 있었다.

봄은 봄인가 봐요. 순천에선 벌써 홍매화 축제를 한다던데..

진아 너도 그런데도 다니고 그래. 동네에서 백화점만 다니지 말고. 백화점에 봄이 어디 있니? 봄 옷 판다고 그게 봄이니..이모의 말에 엄마는 피식 웃기만 했다.

언니가 그런 말할 처지에요? 누구보다 도시녀였던 사람이..

겨울은 엄마와 이모의 투닥거림이 좋았다. 서로에 대한 원망은 애정의 방증이었다. 핀잔은 가벼운 마사지같은 것이었다. 아프지 않고 오히려 시원한.

겨울이는 항상 봄이지? 이모가 봄 얘기를 계속 하고픈지 화제를 겨울로 돌렸다.

저요? 겨울은 이모를 보며 무슨 뜻이냐는 식으로 되물었다.

그래. 여기서 봄이 너밖에 더 있니? 나나 니 엄마가 봄일 리는 없고..넌 청춘이잖아. 항상 푸른 봄 같은..그런 나이잖아.

아..겨울은 그제서야 이해하고 웃음을 머금었다.

이모. 춘래불사춘 알죠? 누구 때문에 봄 같지가 않네요. 겨울은 엄마를 힐긋 쳐다보곤 이모에게 말했다.

이모는 이해했다는 듯이 엄마를 보며 잔소리했다.

애들 좀 그만잡아. 과년한 딸을 이제껏 잡아놔서 뭐 어쩔려구. 사랑하는 사람 만나 거지처럼 살면 어때? 맘에도 없는 결혼 생활 유지하며 왕비처럼 사는 것보다 백배 낫지..

언니. 모르는 얘기 그만해요. 사랑 믿고 다 내려놨는데 그 사랑마저 배신하면..엄마는 누군가 생각났는지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이 인 듯했다. 그러다 다시 말을 잇기를..

세상에 젤 못믿을게 사랑이에요. 남는건 그냥 돈이고 재산이고 직업이고 그런거에요. 남자 성실하고 바람 안피고..그럼 된거에요. 그런 남자들 중에 조건 제일 괜찮은 사람 잡으면 되는거라구요.

이모는 맨날 듣는 얘기 또 듣는다며 핀잔을 줬고 엄마는 내 딸 내가 알아서 키우겠다고 우겼다. 겨울은 잠자코 식사를 하다가 두 사람의 대화가 잦아들 때 쯤 불쑥 말했다.

엄마..그래서 말인데..저 조만간 친구랑 하루 여행 다녀올거에요.

여행? 누구랑? 어디로? 엄마는 식사를 멈추고 겨울을 보며 대뜸 물었다.

화난 것처럼 말할 건 아니잖아요? 다 큰 성년이 친구랑 1박 하고 오겠다는데..

엄마는 이모가 있어 언성을 높이진 않았지만 음성에 노기가 서려 있었다.

그러니까 누구랑 어딜 간다는 거냐구?

미희랑요. 미희가 캠핑 가자고 해서 알겠다고 했어요. 됐어요?

모녀간의 전쟁 같은 대화에 이모는 난감해하다가 조용히 중재를 했다.

진아야. 겨울이 올해 서른 다섯이야. 어디 가서 연락 안해도 이상할게 없는 나이라구. 기껏해야 하루 다녀온다는 건데 기분 좋게 다녀오라고 해.

겨울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던 엄마는 이모의 말에 그제서야 시선을 거두고 말했다.

언니 말 모르는 거 아니야. 근데..저렇게 다니다 이상한 남자 애들이랑 엮여서 팔자 망치는 일이 얼마나 많다고..기집애가 모질지 못해서 분위기에 넘어간다니까..난 그게 너무 걱정이라 쟤를 못보내겠더라구.

뭐가 그리 걱정인데..미희 만난다고 했잖아. 경희랑도 같이 가고 싶었는데 시간 안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둘만 가게 된게 나도 성에 안차는데 엄만 그마저도 못믿겠다는 거야?

겨울의 분노에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잠시 후 이모를 보며 말했다.

거짓말은 아닌가보네. 쟤는 포커페이스가 안돼서 연기하면 다 보이더라구.

그러더니 겨울을 흘깃 보고는 말했다.

알겠으니 다녀와. 하루만이야.

겨울은 억울함과 분노로 눈물마저 핑 돌았다. 언제까지 엄마와 이런 대화를 해야 하는지 서글프고 답답했다. 언니가 엄마의 조건에 맞춰 서둘러 결혼을 하고 바로 분가를 하고 명절 외에는 일체 집을 오지 않는 이유. 어쩌면 언니는 그게 살 방법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함께 있었다면 언니는 숨 쉴 공간이 없다고, 죽을 것처럼 답답하다고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마치 지금 겨울이 느끼는 것처럼.

야외에 다른 손님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모녀의 앙칼진 외침은 맑은 하늘과..암을 다스려야 하는 이모외에는 아무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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