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대해 8백만 신의 섬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과거의 인물, 동물과 식물, 자연물, 신화에 등장하는 신까지 매우 다양한 신을 일본의 신도(神道)에서 포용합니다. 이러한 점을 반영하여 신의 숫자로 무한을 표현하는 8백만이 붙은 것입니다. 일본의 이야기는 차치하고 제주가 1만8천신의 섬이라는 것은 들어보셨나요? 들어보셨다고 해도 제주가 1만8천신을 모시게 된 내력에 대해서는 전혀 모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내력을 이제부터 알아보죠.
1702년 이형상이 제주 목사로 부임합니다. 이 사람은 제주에 가득한 신당, 굿당 혹은 절을 보고 무척 미개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육지의 발달한 유교적 원칙주의를 제주라는 섬에도 적용시키려 했죠. 그래서 제주·정의·대정의 음사(淫祠: 굿당, 신당)와 불사(佛寺) 130여 개소를 파괴하고 무격(巫覡) 400여 명을 귀농시켰습니다. 이 일이 이형상 목사는 무척 자랑스러웠는지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에 신당이 불타는 <건포배은巾浦拜恩>이라는 그림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지금 와서는 자신들이 발달된 문화라고 생각하며 다른 지역의 문화를 탄압한 문화 독재라고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당연히 자신들의 문화를 일시에 탄압당한 제주민들은 그를 좋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구전되는 이형상에 관한 이야기는 험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영천이(그의 고향이 경북 영천이라는 뜻)는 깡패라. 최고 깡패라. 왕족이니까 깡패질을 해대도 아무도 건드리질 못했지. 허니 이놈은 유부녀를 통간하질 않나 쓸데없는 것만 해댔지. 물 끊어진 섬이니, 선참후제 사람을 먼저 베어두고 나중에 보고하는 거였지. 그러니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여불어. 도둑질한 놈도 돈 아니 주며는 대뜸 죽여불어. 이런 놈의 세상이라, 더러운 세상이요.”
이형상 목사의 여러 기록을 볼 때 진짜 저런 일들을 했을 것이라 생각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강력한 권력을 써서 자기 마음대로 실행할 때 민중에게 어떤 평가를 받게 되는지에 대한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의 강력한 유교적 원칙주의에 고통 받던 제주의 무교(巫敎)는 1901년 ‘이재수의 난’이라 불리는 신축민란(辛丑民亂)의 계기가 됩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주도에도 가톨릭 신부들이 들어오면서 포교를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몇몇 가톨릭 신자들이 제주 관리들과 손을 잡고 제주민들을 수탈하기 시작했고, 신부들은 관리들과 연결고리가 생긴 것을 틈타 제주의 많은 신당을 불태우고 신목을 베어냈습니다. 이런 탄압을 막기 위해 일어난 것이 ‘이재수의 난’입니다. 이후에 일제강점기가 되어서는 민족의 정신을 고취시킨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았고, 현대에 와서는 근대화에 방해되는 미개한 신앙이라고 탄압 당했습니다. 여전히 무교에 대한 외부의 인식은 좋지 않지만, 제주민의 정신 속에 뿌리 깊게 남아 있으며 외부에서도 하나의 문화나 전통 종교로 이해받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은 분들도 여전히 좋지 않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을 소개하며 무교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조금 완화시켜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주올레 18코스 건입동 벽화길을 가다 보면 칠머리당 터비석이 보일 겁니다. 원래 칠머리당이 산지항 남쪽 주정공장 높은 동산 ‘칠머리’에 있는 당이란 뜻이니 칠머리당 터라는 비석이 있는 곳이 칠머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칠머리에서 벗어나 사라봉에 새로이 당을 조성해 신석(新石)을 모셔 놓기는 했지만, 굿은 문화재전수관에서 한다고 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굿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영등굿은 풀어 말하면 영등신에게 올리는 당굿이라는 뜻입니다. 영등신은 바람의 신을 뜻하고 당굿은 당에서 지내는 굿을 말합니다. 영등신은 남성으로 불리기도 여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여성신인 영등할망으로 지칭됩니다. 이 굿의 목적은 바다가 평화롭기를 바라고 물고기가 많이 잡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거친 바다와 함께하는 삶 속에서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필요했던 작업이었죠. 영등신은 겨울이 끝나고 봄이 되기 직전인 음력 2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제주 바다에 머물다 가는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주에 머물면서 해녀가 채집하는 바다든 어부들이 물고기를 잡는 바다든 가서 물고기나 어패류, 해조류의 씨앗을 뿌려줍니다. 영등신이 왔을 때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면 해녀, 선주, 어부들은 한 해 어업을 망친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대로 영등신이 왔을 때 제대로 대접하면 한 해 어업은 성공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영등신을 대접하는 영등굿은 총 두 번으로 나누어 벌어집니다. 2월 초하루에 영등신을 맞이하는 영등 환영제와 2월 보름에 영등신을 보내는 영등 송별제로 말이죠. 영등 환영제보다는 영등 송별제가 더 큰 행사라고 합니다.
제주에서 널리 알려진 영등굿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해보았습니다. 이렇게 들으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덜해지고 한국의 한 문화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주민들의 심리적 불안을 해소하는 종교의 순기능 중 하나도 해주고 있다는 생각도 들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약간 조금 단순하게 생각하는 입장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바다의 해산물이 어떻게 풍족해지는지에 대해 영등신이라는 구체적인 존재를 개입시키면서 세계관을 형성하고 이에 굿이라는 의례로 인간이 개입하는 매우 복잡한 밑바탕이 제주의 무교 아래 깔려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제주의 자연에 인간이 개입하는 의례가 갖추어져 있다는 것은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 인과성을 가진 이야기가 제주의 무교의 신들에게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신화지요. 대표적으로는 설문대할망 신화가 있습니다. 태초에 아무것도 없던 탐라에 있던 설문대할망이 방귀를 뀌자 천지창조가 시작되었고, 불기둥과 불꽃 섬이 있던 자리를 바닷물과 흙으로 덮어 한라산을 만들었습니다. 치맛자락에서 흘러내린 흙들은 오름들이 되었죠. 세상이 만들어진 이야기를 담은 신화로 세계창조의 인과를 담은 이야기이죠. 이 이야기를 통해 제주민들이 제주의 자연을 어떻게 인식해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오래된 역사를 구전으로 기록하고 있다고 보는 신화도 있습니다. 바로 삼을나(三乙那)와 관련된 삼성신화지요. 지금이야 삼성혈에 유교적 제례를 지내지만, 예전에는 굿을 했다고 합니다. 제주의 중심종교가 무엇이었고 삼성신화의 뿌리가 되는 종교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위의 이야기들 말고도 제주의 무가에는 세계의 근본을 풀어내기 위한 이야기들이 다수 있습니다. 이를 본풀이라고 하죠. 천지왕본풀이의 대별왕, 소별왕, 차사본풀이의 강림, 이공본풀이의 할락궁이, 문전본풀이의 조왕 등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나요? <신과 함께>의 등장인물들이죠. 저도 무척 <신과 함께>를 좋아합니다. 무척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신과 함께>의 한국 신화가 제주 무가의 본풀이라니 놀랍지 않으신가요? 자연이 운행하는 이치와 신들이 만들어진 이유들이 담긴 제주 무가의 신화는 제주인의 정신 속에 있을 뿐만 아니라 충분히 현대에도 확장성을 가질 수 있는 이야기라는 말이겠죠.
이제 제주 무교가 조금 친숙해지셨나요? 그렇다면 이제 제주의 굿과 무당에 대한 내용을 조금 상세히 알아볼 차례입니다. 제주 무당은 심방이라 합니다. 그리고 심방은 강신무(降神巫)가 아닌 세습무(世襲巫)죠. 흔히 각종 매체에서 신병을 앓다가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보셨을 겁니다. 이런 경우가 강신무고, 대대로 가문이 무당을 이어받아 하는 것을 세습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나 심방할게요!”라고 외친다고 바로 심방이 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무업(巫業)을 하고 있던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는 명두를 물려받는 의식을 거쳐야 심방으로 인정받을 수 있죠. 또한, 이 명두는 겉으로 보기에는 무구이지만, 명두 자체가 ‘조상’이라는 상징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하여서 명두가 영험 있고 족보 있는 조상이어야 훌륭한 심방으로 추앙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 명두가 훌륭하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올바른 굿하는 법을 알아야하고 신질 발루기(신길 닦기)를 잘해야 합니다. 그래서 명두물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질 발루기입니다. 신질을 터서 올바른 굿법을 익히는 것이죠. 그리고 굿법을 익힌 단계에 따라 심방은 하신충, 중신충, 상신충으로 나뉩니다. 상신충이 가장 높은 단계이고 큰 굿을 도맡아 할 수 있으며,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는 심방이죠.
명두물림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쳐 인정받는 심방이 되면 여러 가지 굿을 하게 됩니다. 신년의례, 예축의례, 치병의례, 생산의례 등 다양한 의례를 맡아서 하게 되죠. 이러한 다양한 의례를 전부 알아볼 수는 없고, 흔히 알고 있는 개인을 위한 굿이 아닌 제주를 대표하는 마을의 당에서 일어나는 굿만 알아보면 정월에 신년의 복을 비는 신과세제, 앞에서 말한 2월의 영등제, 7월에 곡식의 풍성한 추수를 비는 마불림제, 9월에 추수를 감사하는 시만국대제가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굿마다 형식이 각기 다르지만, 기본 형식은 초감제(청신-신을 부르다)·추물공연(향연-연회를 열다)·비념(기원)·석살림(오신-신을 즐겁게 하다)·분부사룀(예언)·도진(송신-신을 보내다)의 6단계입니다.
그럼 이런 굿이 열리는 당은 어디 있을까요? 어디 있다 명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보통은 마을 사람들이 성스럽다 여기는 곳에 만들어둡니다. 다만, 마을마다 당이 분명히 하나씩은 있죠. 제주를 걸으며 보는 무수한 당들은 다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마을명+지명+제일(祭日)+성별+당’의 구성을 갖추고 있죠.[ex : ‘한경 판포리 본향 널개(마을명+지명) 오일하르방당(제일+성별+당)’] 물론 무조건 이 형식을 다 갖춘 것은 아니고 생략되거나 변형된 것도 있습니다.
위에서 한경 판포리 널개는 마을과 지명 이름이지만, 본향은 지명 이름이 아닙니다. 이 당이 한 마을의 중심이 되는 당임을 말하는 것이죠. 그럼 각 마을을 통합한 제주의 중심이 되는 당은 어디 있을까요? 마치 일본의 전역에 무수히 많은 신사들이 있지만, 최고신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를 모신 이세 신궁과 같은 중심이 되는 굿당이 있지 않을까요? 제주에도 있습니다. 1만8천신의 고향이라 불리는 곳이 있죠. 송당 본향당입니다. 송당본풀이에 따르면 제주의 모든 본향당의 신들은 송당의 본향신인 금백주할망의 아들과 딸이라고 나와 있어 송당의 본향이 곧 제주의 본향이 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제주의 본향인 송당을 일컬어 문무병 교수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송당본풀이의 금백주할망 신화가 시작된 송당의 고대의 신시(神市). 한라산을 내려온 신들이 마을 당신으로 좌정하던 시기, 떠돌아다니던 사농바치(사냥꾼)신들이 결혼을 하여 마을의 신으로 좌정한 곳, 신화의 메카, 당의 불휘공이라 일컫는 곳.”
이제 송당에서 빠져나와 올레길을 따라가며 제주 곳곳에 사람냄새가 짙게 밴 채로 마을 곳곳에 자리한 굿당들과 그곳에서 정좌하고 있는 신들을 만나볼 시간입니다.
3코스 배고픈 다리를 지나면 바로 하천리 본향 고첫당이 있습니다. 간판에 천궁해신당이라고 달려 있어 웬 사이비가 아닌가 싶지만, 그냥 당신을 모신 곳을 깔끔하게 정비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보통 마을에 조용히 자리 잡은 다른 당들과는 달리 분위기가 달라 저는 들어가 보지는 않았습니다. 해신당이라고 적혀는 있지만, 마을 주민들은 이곳의 정확한 명칭은 고첫당이 맞다고 합니다. 대부분 하천리 어부, 해녀들이 다닌다고 합니다.
해신사라는 절에서 당집을 정비해서 그런지 당 옆에 부처 석상이 서 있는 것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육지에서 보면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제주에서는 딱히 특이한 일은 아닙니다. 한국 무교에서는 가끔 공자, 하느님, 부처님을 신으로 모시기도 하는데 이러한 포용성이 극대화되어 무교와 불교의 경계가 나눠지지 않고 뒤섞였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습니다. 부처님과 고첫당 용녀부인이 함께 있는 모습이 처음엔 어색하고 이단이나 사이비같이 느껴질지 모르지만, 제주의 특수한 문화에 불교가 녹아들면서도 각자의 종교를 존중하는 태도를 버리지 않은 아름다운 문화 경관이라고 생각해주기를 바랍니다.
4코스 세화2리 해녀의 집 맞은편에는 시멘트 건물로 된 당을 하나 볼 수 있습니다. 세화2리 생걸포구 남당(생거리 남당)입니다. 당의 유래는 표지판에 적혀 있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50여 년 전 안씨, 홍씨, 김씨 하르방이 낚시를 하던 중 낚시 바늘에 같은 먹돌이 세 번이나 걸려 올라와 이를 이상하게 여겨 먹돌을 가져와 며칠을 고민하다가 신성하게 모셔야겠다고 결심하여 남당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남당은 그때부터 어부들의 무사안녕을 비는 당으로 계속 쓰이고 있습니다. 문이 열려 있기에 들어가 보았는데 다른 특이한 것은 모르겠고 돌을 모셔둔 공간에 굿하는 제청에 종이를 오려 장식용으로 사용하는 기메를 보았습니다. 화려하진 않고 작은 마름모무늬가 있는 흰 종이일 뿐이었지만, 기메를 실제로 보는 것은 무척 신기했습니다.
5코스 위미 1리 본향당은 건물이 따로 지어져 있는 것은 아니고 신목이 있고 돌담 안에 제단이 있는 형태의 당이었습니다. 신목으로 모시고 있는 350년 된 해송도 인상적이었지만, 제단에 놓인 제물은 아직도 제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습니다. 제단 위에는 아몬드사탕 봉지, 박하사탕 봉지, 초코칩 쿠키가 있더군요. 제물을 그렇게 논 연유는 알 수 없었지만, 무교가 현재까지 숨 쉬는 제주의 전통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매우 민중 친화적인 종교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6코스 이중섭 거리를 걷다보면 서귀 본향당이라 적힌 표지판을 볼 수 있습니다. 표지판을 따라 골목으로 들어가면 민가 사이에 돌담벽 위에 콘크리트 지붕을 얹은 서귀 본향당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당과 제단 모두 새로 만든 것으로 보이고 옆에는 공중화장실까지 만들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굿이 열리는 장소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이 본향당은 서귀동과 동흥동 주민들의 생산(生産), (物故, 죽음, 혹은 죄지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일), 호적(戶籍) 장적(葬籍, 죽은 사람의 호적)을 담당하고 있으며 당신은 보름웃도와 지산국을 모시고 있습니다. 서홍동에 자리잡은 지산국의 언니 고산국과의 갈등이 담긴 본풀이가 유명하며 다른 당굿처럼 네 번의 의례를 하나 일 년의 마지막 의례가 시만국대제가 아닌 음력 12월 13일에 이루어지는 동지제라는 점이 다릅니다.
7코스 법환동 관청 송씨할망당은 법환포구를 약간 지난 곳에 있습니다. 당은 건물이 아닌 돌담으로 성역을 표시했고 돌담은 그리 높지 않아 당 안에서도 범섬이 보입니다. 송씨할망의 신위 앞에 있는 제단에 ‘옴마니반메훔’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불교에서 참된 말인 만트라라고 부르며 반복해 외운다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불교의 내용과 무교의 내용이 잘 융화된 제주의 특징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볼 수 있었습니다.
위에서 제주의 마을마다 본향당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는 가파도라고 다르지 않죠. 10-1코스가 시작하는 상동포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모슬봉과 가파도 앞바다가 보이는 곳에 상동 본향 매부리당이 있습니다. 현무암이 아닌 각기 다른 크기의 색깔과 돌을 모아 만든 담이 인상적인 이 당은 가파도 상동어부들과 해녀들을 수호해주는 해신을 모신 당입니다. 또한, 이곳에 본을 가진 신이 아닌 모슬포 하모리에 있던 신을 갈라 모셔 만든 당이죠. 여전히 1년에 한 번씩은 꼭 풍어와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이호테우 해수욕장과 도두항 사이 올레길 17코스를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걷는다면 어렵지 않게 붉은왕돌 할망당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완주할 당시 붉은왕돌 할망당을 방문했을 때는 별 느낌을 받지 못했지만, 이전 제주여행에서 붉은왕돌 할망당을 찾았을 때는 막걸리 냄새가 강하게 풍기고 있었습니다. 막걸리 냄새를 따라 들어가니 팽나무와 제단이 영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마치 소원을 빌면 들어줄 것 같은 영험함이 있어 제주여행을 즐겁게 무사히 잘 끝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던 것 같습니다.
제주의 신당을 찾아다니다 보면 붉은왕돌 할망당처럼 나무에 천이 걸려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적힌 것 없는 이 천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신에게 기원하는 날 천을 들고 와 가슴에 묻고 속으로 바라는 바를 간절히 생각한 뒤 천을 거는 것이지요. 보이기에는 별 거 없어 보이는 천은 인간이 간절히 바라는 소망을 가득 담은 신에게 전하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그리고 글을 모르는 사람까지도 신에게 직접 자신의 소망을 직접 전할 수 있다는 점이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는 느낌이 들어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무교에 대해 무척 감동을 받았습니다.
4·3사건에 의해 참혹한 피해를 입었던 19코스 북촌리에도 신당은 있습니다. 북촌리 뒷개 본향 가릿당이죠. 당신은 구짓머루 노바ᆞ름한짐과 구짓머루 용녀부인을 모시고 있으며 부부합좌형입니다. 이곳에서 벌어진 비극에 대해 신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 없으니 그저 안타까워했다고 추측할 뿐입니다. 특히 남신은 물고에 대해서 관리했다고 하니 적어도 한 많은 영혼들을 잘 달래어 좋은 곳으로 데려갔기를 바랄 뿐입니다.
20코스 해녀박물관 뒤 세화 앞바다 해안가에는 갯것할망당이 있습니다. 물때가 안 맞으면 들어갈 수 없는 이곳을 가다가 신발이 조금 물에 젖었던 안 좋은 추억이 있는 곳입니다. 바닷가에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해신당이며 일뤳당 계열입니다. 일뤳당은 7, 17, 27일마다 신이 찾아오기에 그때 가서 소원을 빌어야한다고 합니다. 다른 계열로는 8, 18, 28일마다 신이 찾아오는 여드레당 등이 있습니다.
제주올레의 마지막 코스인 21코스에도 신당이 있습니다. 하도리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는 각시당이 그것입니다. 돌담이 높고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문틈을 통해서 보기에는 돌담 안에 제단밖에 없었습니다. 이후에 산지천갤러리의 사진전에 갔을 때 각시당에서 굿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무척 많은 음식들을 두고 빌고 있는 많은 해녀들과 굿을 하는 심방의 모습이 어색하고 신기하기보다는 익숙한 제주의 삶의 한 형태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무수히 많은 신당을 소개했지만, 6코스의 하효 본향당이나 15코스의 애월리 해신당처럼 올레길을 지나가는 동안 볼 수 있는 신당들을 전부 소개한 것도 아니고, 올레길이 없는 중산간 쪽에는 더 많은 신당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신당들이 많은 것은 당연히 마을마다 한 개 이상의 신당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마을사람들은 이런 신당에 모여 때가 되면 굿을 할 겁니다. 그 굿을 하는 날은 마을의 안녕과 미래를 위해서 중요한 날이기도 하지만, 당장의 축제를 즐길 수 있는 날이기도 할 겁니다. 굿판 안에서 심방, 단골(손님), 신격들이 하나 되어 경계가 허물어지고 모두가 다를 것 없이 같이 뛰노는 순간만큼 즐거운 것은 없을 겁니다. 그 과정에서 평소에 갈등을 겪거나 갈라져있던 마을 구성원들이 하나가 될 것이고 마을은 통합되어 더욱 연대가 강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을 겁니다.
제주를 가장 크게 갈라놓았던 4·3사건 또한 제주의 전통과 현재를 담당하는 종교이자 문화인 무교로 풀어내려는 시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4·3해원상생굿이죠. 4·3사건이 널리 알려지기 전까지 4·3사건의 기억을 계속 되살리며 잊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해왔던 굿은 4·3사건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시작되고 나서는 죽은 영혼들의 원한을 풀어주고, 그를 바탕으로 죽은 이들과 기억을 가진 이들을 한 데 모아 굿판이라는 경계가 사라진 장소에서 서로의 상처를 드러내고, 같이 보듬는 사회를 치유하고 재통합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만8천신의 섬 제주, 제주민들의 정신적 기반을 말할 때 무교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이상한 무당이 하는 기묘한 굿, 샤머니즘으로만 표면적으로 알고 있던 제주의 무교에 대해 상세히 들어보니 어떠하나요? 옛사람들의 상상으로 그려진 신화와 문화적으로 높은 가치를 가진 의례,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역할을 했던 신들이 정좌한 신당, 더 나아가 제주의 공동체 정신이 유지될 수 있게 하는 굿의 통합적 역할까지. 전부를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분명 얼굴 찌푸리며 지나갔을 제주의 몇몇 신당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이제는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바뀌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약, 아니라면 제 글 솜씨가 부족한 탓이겠죠. 1만8천신의 편린을 설명한 이 글이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제주 무교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고 인식을 바꾸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