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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완주기-식물

by baekja

올레길을 걸으면 많은 식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한반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들부터 제주에서만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들까지 다양하게 만날 수 있죠. 하지만, 식물을 전공한 것이 아니라면 뭐가 다른지 알 수도 없을뿐더러 제가 올레길을 걸은 겨울에는 다 잎이 지고 줄기나 가지만 남아 식물을 분간하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제주도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따뜻한 지방이다 보니 적지 않은 상록식물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겨울에도 푸른 잎을 뽐내는 식물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올레길에 싱그러움을 더해주었죠. 그중 가장 기억나는 몇몇 식물들을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해송입니다. 대한민국 바닷가 어디에나 있는 해송은 제주도에서는 그 수가 매우 적어 해안가에 조금 있는 게 전부였다고 합니다.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제주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 해송은 나말여초 시기에 중산간 지역을 개간하면서 늘어나게 됩니다. 생명력이 강한 해송이 제주 곳곳에 양지바른 곳이 생겨나자 곳곳으로 퍼져나간 것이죠. 하지만, 고려시대 목장이 늘어나면서 해송이 다시 베어지고 사라졌지만, 17세기부터 집약적인 목축이 가능해지면서 목축 면적이 줄어들고 해송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해송이 매우 많아진 것은 일제강점기 때로 일제가 들어와서 해송과 삼나무를 제주 전역에 식재하며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원래는 제주의 환경에서 살기 쉽지 않은 소나무가 사람 때문에 제주의 자연 환경이 변화되면서 그 수가 늘어난 것입니다.


제주올레 코스 어디를 가도 해송을 볼 수 있습니다. 한겨울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소나무가 어디에나 보이는 것이 제주도 또한 한국 땅과 비슷하다고 처음에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으로 인한 자연환경 변화나 일제의 정책에 의해 해송이 늘어났다는 이야기를 알게 되고 나서는 찜찜한 기분이 들더군요. 사계절 내내 제주도의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서있는 소나무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그 모습에서 자연 환경을 자기 맘대로 변화시키는 사람들의 욕망이 느껴져 이제는 그 아름다움만을 마냥 즐길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사람이 옮겨와 심은 것이 아닌 제주에 자생하는 나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주에 자생하는 유명한 나무라면 크리스마스 트리로 가장 많이 쓰이는 구상나무나 봄철 흐드러지게 피는 왕벚나무가 있죠. 하지만, 둘 다 제주올레 코스가 주로 있는 해안가나 중산간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래서 이 둘보다 덜 유명하지만, 제주올레 코스마다 있는 먼나무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사실 먼나무를 처음에 보고 빨간 열매가 달려 있기에 그냥 산수유인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산림 쪽 공부를 하는 동생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물어보니 산수유가 절대 아니라고 하더군요. 산수유 열매는 길쭉한데 이 열매는 완전 동그랗다면서 먼나무라고 얘기해주었습니다. 거기에 눈 속에서도 푸른 잎을 자랑하는 상록수가 낙엽수인 산수유일리 없다고 부가 설명도 해주었습니다. 친구랑 다니면서 새빨간 열매의 색감에 감탄하면서 둘이서 산수유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조금 부끄럽더군요. 나중에라도 제대로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빨간 열매가 인상적인 상록수 먼나무는 제주 바닷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제주시내에는 가로수로도 다수 서 있죠. 사계절 내내 푸른 잎과 이국적일 정도로 빨간 열매가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경관을 자아냅니다. 먼나무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경관만큼이나 먼나무라는 이름도 독특한데요. 그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겨울 내내 붉은 열매가 달린 모습 모습이 멋스러워 ‘멋나무’에서 변화됐다는 설과 그 아름다운 매력을 멀리서 보아야만 드러난다고 해 ‘먼나무’라 칭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나무껍질의 검은 빛이 먹물 같다는 제주도의 방언 ‘멍’과 나무를 뜻하는 ‘낭’이 합쳐져 ‘멍나무’라 부르던 것이 ‘먼나무’가 됐다는 설입니다. 겨울에 제주도를 방문해 빨간 열매를 가진 상록수를 본다면 꼭 제주의 독특한 경관을 만들어주고 다양한 이름에 대한 유래를 가진 먼나무임을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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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제주의 겨울을 대표하는 상록수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의 겨울을 대표하는 이 나무에 자라나는 꽃은 무척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바로 동백나무입니다. 동백꽃은 세 번 피는 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가지 위에 한번, 땅에서 한번, 마지막으로 마음속에서 한번 피어난다고 하지요. 동백꽃의 아름다움과 동백꽃이 통으로 땅에 떨어지는 특징을 비유적으로 설명한 말입니다. 이처럼 동백꽃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말도 많지만, 동백꽃이 통으로 떨어지는 것이 마치 사람의 머리가 떨어지는 모습과 비슷하다며 불길한 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제주를 상징하는 아름다움과 비극의 의미를 모두 품은 이 꽃은 한국 현대사에 손에 꼽는 비극 제주 4.3 사건을 상징하는 꽃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움과 슬픔을 모두 간직한 이 꽃은 제주올레 곳곳에서 볼 수 있지만, 동백꽃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은 5코스 중간에 자리한 위미 동백나무 군락지입니다. 마을에 들어서면 바로 다른 곳들의 동백과는 크기가 비교가 안 되는 무척 큰 동백나무들이(가장 큰 것은 높이 10m에 달합니다.) 줄 지어 서서 위용을 뽐내고 있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내부의 밀감하우스를 없애고 빈자리에 동백나무 식재를 하는 공사를 하고 있어서 처음 봤을 때의 박력과는 다르게 휑한 느낌이 들어서 안타까웠지만, 동백꽃 핀 군락지를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좋았습니다.


위미 동백나무 군락지는 갑자기 동백꽃이 자라날만한 환경이 만들어져 자생한 것이 아닙니다. 17살 위미리로 시집온 현맹춘(1858~1933)이라는 할머니가 해초 팔이와 품팔이로 모은 돈 35냥으로 산 돌멩이 가득한 황무지인 ‘버득’을 사 농사를 지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모진 바닷바람에 개간이 잘 될 리 없었고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한라산에서 동백 씨앗을 가져와 뿌려 방풍림을 만든 것이 위미 동백나무 군락지의 시초였다고 합니다. 이 방풍림이 제 역할을 해내면서 이 지역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위미 동백나무 군락지를 ‘버득할망돔박숲(버득할머니동백숲)’이라고 부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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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조금 특이한 식물을 소개할까 합니다. 백년초라고 들어보셨나요? 제주 공항이나 관광지에 가면 감귤 초콜릿과 더불어 백년초 초콜릿을 쉽게 볼 수 있죠. 백년초의 정식 명칭은 부채선인장으로 줄기가 납작한 부채 모양을 여러 개 이어 붙인 것처럼 생겨서 이런 이름이 붙었으며 손바닥선인장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백년초 초콜릿을 먹었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백년초가 선인장인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백년초가 선인장이라는 것을 듣고 저 말고도 놀라실 분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아니면 어쩔 수 없고요…….) 평범하게 생각하면 외국에서 사다가 재배했을 것 같은 멕시코가 원산지인 이 선인장이 도대체 어떻게 제주의 특산물이 되었는지 이해가 안 되겠지만, 한립읍 월령리에 가면 이 의문은 풀리게 됩니다.


14코스 중간에 있는 월령마을에 들어가면 마을 입구부터 쥐와 뱀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심었다는 선인장들이 가득합니다. 현무암으로 된 돌담 위에 선인장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제주에서도 매우 이색적인 풍경을 확인할 수 있죠. 이 선인장들은 외국에서 가져다가 심은 것이 아니라 월령리 해안에서 자생하는 것들을 가져다 심은 것입니다. 대한민국 유일의 선인장 자생지인 월령리 선인장자생지는 선인장들이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열대지방에서 밀려와 자생하면서 생긴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월령리 선인장자생지는 보라색 열매가 달린 초록 선인장과 검은 현무암, 에메랄드빛 바다가 뒤엉킨 희귀한 풍경을 여행객들에게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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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겨울에 올레길을 걸으면서 볼 수 있는 네 가지 상록식물과 각각의 식물에 얽힌 이야기들을 소개해 보았습니다. 각 식물마다 제주 사람들과 얽힌 이야기들이 있어 흥미를 더합니다. 길가에 자라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풀에도 다 이름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다양한 풀들 중 우리가 모르는 사람과 연결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가진 것들이 있을지 모르지요. 저는 겨울이라 올레길에서 다양한 풀들은 보지 못했지만, 만약 봄, 여름, 가을에 올레길을 방문하게 된다면 지나가는 풀들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그 뒤에 숨겨진 재밌는 이야기들을 발견하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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