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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완주기-자연이 가득한 제주의 숲, 곶자왈

by baekja

오름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제주도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오름만큼 사랑하는 지형이 있습니다. 바로 곶자왈이죠. 제가 곶자왈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2018년 겨울이었습니다. 친구가 제주의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겠다며 소개시켜 준 첫 번째 장소가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이었죠. 대부분의 우리나라 숲이 산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데 평지에 가까운 지형에 넓게 숲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 무척 신기했습니다.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국의 숲과 열대 정글이 섞인 듯한 모습이 곶자왈에 대한 제 첫인상이었습니다.


곶자왈은 가시덤불과 나무들이 혼재한 ‘곶’과 토심이 얕은 황무지인 ‘자왈’이 결합하여 ‘덩굴과 암석이 뒤섞인 어수선한 숲’을 가리키는 제주방언입니다. 이런 곶자왈을 개발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제주 4대 곶자왈을 선정하고 그 구역을 정해놓았습니다. 제주도 서부의 한경-안덕 곶자왈, 애월 곶자왈, 그리고 동부의 조천-함덕 곶자왈, 구좌-성산 곶자왈이 4대 곶자왈로 지정되어 있지요. 올레길에서는 4대 곶자왈 중 한경-안덕 곶자왈, 애월 곶자왈, 조천-함덕 곶자왈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곶자왈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기에 올레길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곶자왈에 대해 매우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올레길에서는 11코스에서 곶자왈을 처음 접하게 됩니다. 한경-안덕 곶자왈에 속한 신평-무릉 사이 곶자왈이죠. 이 곶자왈의 입구에는 간세가 놓여 있는데 간세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습니다.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독특한 숲이다.’ 말이 좀 어렵죠? 쉽게 말하자면 가장 위도가 높은 지역에 있는 열대 기후 식물들과 가장 위도가 낮은 지역에 있는 한대 기후 식물들이 섞여 있는 숲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곶자왈의 복잡한 지형 덕이라고 합니다. 곶자왈은 한정된 지역에서도 지형변화가 다양하여 기후를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죠.


곶자왈에 여러 식물들이 섞여 있다는 이야기는 곶자왈에 있는 식물들의 다양성이 높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종가시나무를 중심으로 녹나무, 아왜나무, 동백나무 등이 섞여 자라는 상록활엽수림과 때죽나무를 중심으로 단풍나무, 팽나무, 산유자나무 등이 자라는 낙엽활엽수림이 섞여 곶자왈의 숲을 형성하고 있지요. 이런 다양한 나무들 말고도 다양한 희귀식물도 곶자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곶자왈에 자라는 희귀식물 중 멸종위기보호야생식물은 제주고사리삼, 개가시나무, 으름난초, 순채, 제주 물부추 등이 대표적이며 특히 제주고사리삼과 개가시나무는 곶자왈이 주요 자생지로 확인되는 식물입니다. 또한, 가시딸기 등 세계적으로 제주도나 제주도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일부지역에만 자라는 특산식물들도 곶자왈에 살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다양한 식물들을 평범한 사람들의 눈으로 알아보기는 무척 힘든 일입니다. 굳이 다양한 식물들을 하나하나 구분해가며 찾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무수히 많은 식물들이 뿜어내는 자연의 향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으며 도시에 살면서 지쳐버린 삶을 회복하면 될 뿐이죠. 흙과 현무암이 뒤섞인 포장되지 않은 길을 천천히 걸으며 겨울에도 푸른 잎을 뽐내는 나무들을 끼고 걸으면 바쁜 일상을 사느라 찾지 못했던 여유를 다시 얻을 수 있을 겁니다.


20210118_114039.jpg 무릉곶자왈


아래에서 올라오는 풀내음을 맡고 햇빛을 가려주는 머리 위의 무성한 나뭇잎들을 바라보면서 걷다보면 가끔 뜬금없이 사람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11코스에서 볼 수 있는 정개밭이 대표적이죠.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이 곶자왈에 밭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었던 곳입니다. 지금은 다 무너져가는 돌담과 함께 정씨의 묘만 남아 있습니다. 문명이 끝난 후 자연이 사람의 삶터를 뒤덮어버린 느낌마저 들게 하는 이곳은 예전에 곶자왈을 사람이 많이 이용했다는 증거입니다. 벌채와 같은 방식으로 자원을 얻어가기도 했죠. 그래서 곶자왈은 원시림의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사람의 손이 지속적으로 닿은 2차림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곶자왈에 수명이 오래된 나무가 별로 있지 않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20210118_112709.jpg 정개밭


14-1코스는 한경-안덕 곶자왈에 속한 저지곶자왈을 지나는 것이 주된 코스입니다. 연구시험림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그런지 처음에는 잘 포장된 시멘트 길을 걷지만, 이내 흙길로 바뀌고 목장과 함께 문도지오름이 나타납니다. 곶자왈 가운데에 문도지오름이 위치한 것이죠. 곶자왈의 의미가 숲이다보니 종종 이렇게 곶자왈이 오름을 품고 있는 경우도 있죠. 곶자왈에서는 보통 나무들이 가득하여 시야가 좁지만, 저지 곶자왈 내 문도지오름에 올라서면 곶자왈 전체를 살필 수 있고 곶자왈 너머의 제주의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습니다. 제주올레길을 완주할 때는 안개가 가득해 신비한 분위기는 있었어도 문도지오름 정상에서 제주의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없었지만, 이전에 제주에 방문했을 때 맑은 날 본 장대한 제주의 풍경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20210122_100056.jpg 목장 너머 보이는 문도지오름


15-A코스를 걷는다면 애월 곶자왈을 지나지만, 저는 무릎이 안 좋았던 관계로 15-B코스를 걸어 애월 곶자왈과는 연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19코스에서 조천-함덕 곶자왈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북촌리를 빠져나와 동복리 마을을 지나면 곶자왈로 가는 호젓한 숲길을 지나게 되고 동복리 마을 운동장을 지나면 본격적인 곶자왈이 시작됩니다. 동복리 곶자왈에는 벌러진동산이라는 있습니다. 두 마을로 갈라지는 곳, 혹은 넓은 바위가 번개에 맞아 벌어진 곳이라고 하여 벌러진동산이라 불립니다. 벌러진 동산부터는 키 큰 나무들이 우거진 고요한 숲길이 계속되는 데 종종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공터를 볼 수 있습니다. 바위가 뒤섞인 숲이라는 곶자왈의 특수성이 드러나는 장소지요.


어느 곶자왈을 가도 푹신한 흙길을 걸을 일은 별로 없습니다. 11코스에서도 14-1코스에서도 대부분 돌이 길에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죠. 그래서 마냥 정신 놓고 걸으면 발목을 삐거나 넘어지기 쉽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숲길과는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그 이유는 곶자왈이라는 숲 자체가 용암분출로 형성된 지역에 잘 발달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화산활동 이후에 생성된 암석 위에 생긴 숲이다 보니 돌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돌이 많은 곶자왈의 지형은 무척 다양한 방식으로 형성됩니다. 점성이 높은 아아용암류가 흐르다 굳거나 화산분출물이 쌓이거나 바람이나 비 등에 의해 이미 형성되어 있던 지형이 풍화되어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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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에서 곶자왈을 걷는 일은 무척 즐겁습니다. 사람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호젓한 숲길에서 자연을 만끽하며 걸을 때의 행복은 일상에서 맛볼 수 없는 무엇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고요하고 좋은 것만 같은 곶자왈을 걷는 일은 생각보다 위험합니다. 나무들이 우거져있어 평범한 길보다 배는 어둡고, 올레길을 알려주는 리본이 자주 걸려 있다지만, 나뭇잎에 가려져 리본이 잘 보이지 않을 때도 많아 길을 잃기도 쉽습니다. 요즘은 핸드폰 지도로 제주올레 코스를 다 알 수 있다지만, 곶자왈은 많은 구역이 통화권 이탈지역이라 핸드폰을 사용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곶자왈을 지날 때는 동행인이 있는 것이 좋으며, 만약 혼자 지나갈 때에는 곶자왈에서 좀 헤매더라도 저녁이 되지 않을 이른 시각에 들어가고 길을 지날 때마다 올레길을 표시하는 리본을 꼭 확인하며 지나다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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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올레길에서 곶자왈은 조심히 지나가야할 곳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몇 가지 주의점만 지킨다면 지나가기 무척 어려운 곳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너무 겁먹는다면 자연 가득한 곶자왈의 매력을 전부 느끼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긴장한 마음은 내려둔 채로 여유를 가지고 곶자왈의 숲길을 따라 걷는다면 건물들의 숲과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가득한 도시와 달리 녹음 짙은 나무들과 새소리 가득한 곶자왈은 분명 너무 많은 소음과 정보, 촉박한 시간 속에 자기 자신을 힘들게 내몰아야 하는 우리 현대인들의 지친 마음을 치유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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