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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완주기-먹거리

by baekja

제주 여행을 하고 와서 가장 자주 들은 이야기는 “너 맛있는 것 많이 먹었냐?”였습니다. 하하. 뭐, 배낭여행치고는 꽤 다양하게 먹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돈이 그리 많지 않은 대학생이 매일 제주의 각기 다른 특산물을 먹어볼 정도로 돈이 많지는 않았으니 대부분의 여행에서 밥은 편의점 컵라면과 삼각김밥이 되었지요.


여행 중에 아침은 거의 먹지 않았습니다. 제가 위와 장이 약한 편이라 아침에 배탈이 나면 그대로 꼼짝 못하고 그날 일정을 소화할 수 없었으니까요. 저녁 또한 먹지 않았습니다. 저녁에 먹은 것이 탈이 나면 다음날 아침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대부분의 여행에서 제 식사는 여행을 끝마치고 온 3시와 4시 사이에 이루어졌습니다.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서도 걸으면서 소모되는 칼로리는 채워야 했기에 한 번에 폭식을 했습니다. 한 끼에 컵라면 두세 개와 삼각 김밥 두 개 정도로요. 가끔 단백질이 모자랄 수 있다는 친구의 조언에 작은 우유 같은 것을 사서 먹기도 했습니다. 그럼 하루에 식비를 5천원 이내로 아낄 수 있었습니다. 당시 GS25에서 1+1 행사를 하던 틈새 라면은 정말 질리도록 먹었습니다. 넣는 양의 물을 바꾸어가며 똑같은 라면으로 새로운 맛을 내기 위해 무척 노력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짠내나는 이야기는 이쯤하고 이제는 제주도에서 먹어보았던 특별한 음식들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죠. 첫 번째는 모닥치기입니다. 모닥치기는 제주도 말로 여러 개를 한 접시에 모아준다는 뜻으로 큰 접시에 떡볶이, 튀김, 김밥 등을 모두 모은 분식 모둠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제가 모닥치기를 먹은 곳은 서귀포 매일올레시장 안의 분식집이었습니다. 떡볶이, 오뎅, 김밥, 만두, 김치전을 넣어주는 곳이었습니다. 적절한 가격에 상당한 양으로 괜찮은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륙의 분식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적절한 가성비로 제주도에서 조금 색다른 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모닥치기 한 번 먹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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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모든 곳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해산물들을 싱싱하게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해물칼국수, 갈치구이, 오분자기 뚝배기 등을 먹어보았지만, 가장 맛있었던 것은 제주동문시장에서 먹었던 고등어회였습니다. 다들 집에서 노르웨이산 고등어구이를 잔뜩 먹어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또는 군대에 가서 고등어 순살 조림을 잔뜩 맛보신 분들도 있겠지요. 그래서 보통 고등어를 회로 먹을 생각은 잘 못하고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비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싱싱한 고등어회를 먹는다면 그런 고정관념은 산산이 부서집니다. 비린내는 하나도 안 나고 그냥 맛있습니다. 제 짧은 표현력으로는 뭐라 말은 못하겠네요. 살도 많아서 양도 많아 적은 가격으로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바다에 물고기가 있다면 육지에는 닭, 돼지가 있습니다. 제주에서 유명한 것은 흑돼지입니다. 물이 부족해 수세식 화장실을 만들기 힘든 제주에서 똥을 처리하기 위해 돼지를 키웠던 것으로 유명하지요. 그건 다 옛날 얘기고 요즘은 다 축사에서 기른다고 합니다. 어쨌든 한 식당에서 흑돼지를 먹었는데 맛있기는 했지만, 내륙의 돼지고기와 큰 차이점을 저는 잘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고기를 찍어먹는 멜젓이라는 짜면서도 고소한 맛을 내는 젓갈이 제주도에서 먹는 흑돼지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멜젓은 멸치젓의 제주도 방언입니다. 봄철이 되면 성산포와 모슬포 앞바다에 멸치가 떼를 지어 나타난다고 합니다. 멸치를 잡기 위해서 따로 어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갯담이나 원담이라는 돌담형 어장을 바다에 쌓아두고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서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담 안에 있는 멸치들을 잡아오는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멸치 금방 상하고 가치도 낮으므로 내륙의 높은 사람들이 수탈해가지 않았기 때문에 제주도민들의 먹거리로 굳었고, 봄에 먹고 남은 멸치를 오래 먹기 위해 소금을 뿌려 젓으로 담근 것이 멜젓의 시초라고 합니다.


고기와 물고기 등으로 배부르게 식사를 했으니 디저트를 먹어야죠. 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디저트는 역시 귤입니다. 제주는 생각보다 매우 이전부터 귤을 먹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의 <비후국사>에 삼한으로부터 귤을 전래받았다는 기록을 보면 아마 4세기 이전에도 제주에 귤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제주의 귤이 정사에 등장하는 것은 <고려사>로 문종 6년(1053년)에 귤의 납부량을 늘리라는 기록이 등장합니다. 이 기록을 통해 이미 그 이전부터 제주의 귤을 납부 받아왔음을 알 수 있지요. 이후에는 귤을 중앙 관리들에게 뇌물로 받치는 기록도 나옵니다. 조선시대부터는 국가에서 과원을 만들어 귤나무를 관리했으며 이후에 수탈이 심해질 때는 집에 한 그루씩 심어놓은 귤나무까지 과세대상으로 지정한 슬픈 역사도 있습니다. 귤 농사는 대한민국 때에 와서야 수탈의 상징이 아닌 제주의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60년대부터 제주의 농업에서 비중이 급격하게 늘어났고 1970년대에 와서는 제주 농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제주의 농업은 대부분 귤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귤이 얼마나 많은지 시골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 한 봉지에 가득 귤을 싸주시고 한 귤 농사를 하는 펜션에는 귤을 방마다 귤을 몇 십 개씩 비치해두고는 했습니다. 당시는 귤도 엄청 제철이어서 어디서 귤을 받아먹어도 제 인생에서 여태까지 먹었던 귤보다 달았습니다. 이정도 맛을 내는 귤을 무료로 먹는다는 것이 미안할 정도였지요. 시장에서 사먹을 때에는 가격도 육지보다 무척 싸서 제주가 왜 ‘귤의 고장’이라 불리는지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제주올레를 걸을 때 돈의 부족으로 맛있는 것을 마음껏 먹고 다니지는 못했지만, 제주의 풍미를 적절히 느낄 정도로는 다양하게 먹었다고 생각합니다. 제주의 음식들을 대체로 맛있고 육지에서 맛보기 쉽지는 않은 특별한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 특별함이 제주 여행을 풍성하게 해주고 제주라는 섬이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예전에 제주가 수탈의 대상이 되는 원인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미각의 즐거움 뒤로 마음의 착잡함이 올라옵니다. 가끔은 누군가의 즐거움을 위해 제주 사람들이 희생되었던 제주 음식의 아픈 역사를 조금이라도 떠올려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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