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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완주기-제주의 식수, 용천수

by baekja

제주도를 대표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람? 해녀? 오름? 돌하르방? 다양한 답변이 나올 겁니다. 하지만, 굳이 제주에 가서 찾을 것 없이 근처 편의점에서 제주를 느낄 수 있습니다. 요즘은 가격이 부쩍 올라 사먹기 힘든 삼다수죠. 여전히 맛은 좋지만, 가격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흔히 편의점 PB상품으로 나오는 500ml 생수가 600원인 것도 싸다고는 생각하기 힘든데 삼다수의 가격은 600원을 훌쩍 넘으니 사먹기 쉽지 않습니다.


근데 제주 편의점에서는 삼다수 500ml가 500원이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편의점에서 삼다수를 자주 팔지는 않지만, 파는 곳을 찾으면 삼다수 가격이 무척 싼 것을 알고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로마트나 근처 할인마트에서는 500ml 삼다수가 300원 언저리에 파는 것을 볼 수 있죠. 물맛 좋은 삼다수가 무척 싼 가격에 있으니 안 사먹을 수 없겠죠? 저는 하나로마트만 가면 무조건 삼다수를 사다 마셨습니다. 하지만, 삼다수를 마시면서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조금 이상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과학 시간이든 역사 시간이든 제주는 물이 모이기 힘든 지형을 가지고 있어 물 부족에 자주 시달렸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왔으니까요. 물이 부족했던 제주가 이제는 어떻게 물을 파는 수준에 이르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늘 배우던 대로 구멍이 뚫린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제주도는 물이 고일 수 없는 지형입니다. 하지만, 현무암의 밑으로 흘러간 물은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밑의 대수층에 모여 지하수를 형성하죠. 이 지하수가 종종 지표층을 뚫고 올라오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용천수입니다. 예전에는 이 용천수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고, 용천수로 대부분의 식수를 구할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제주 지하수 개발이 시작되었고 1980년대쯤에는 고질적인 물 부족이 많이 해결되었습니다. 하지만, 무분별한 지하수 개발이 지적되면서 1990년대부터는 지하수 관리를 시작하고 1998년에는 지하수를 ‘삼다수’라는 이름으로 브랜드화하는 데까지 성공합니다.


제주 올레길에서도 식수를 얻기 위한 치열한 삶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하수를 파내는 곳이나 삼다수의 수원지와 같은 현대 제주의 식수원을 볼 일은 없지만, 지하수의 이용이 자유로워지기 전까지 제주민들의 식수, 목욕물, 빨랫물이 되어주었던 용천수는 올레길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5코스 위미 1리에 위치한 고망물은 근처에서 무척 유명한 용천수입니다. 상수도가 개설되기 전까지 주변 주민들의 음용수로 사랑을 받아왔죠. ‘고망’은 구멍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입니다. 구멍에서 물이 솟아올라온다고 하여 고망물이란 이름이 붙었지요. 화산회토층을 거치며 불순물들이 여과된 덕에 맛 좋고 수질 좋은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이 물의 장점은 널리 알려져 일제강점기에는 이 물을 통해 소주를 생산하던 황하소주공장이 북쪽에 있었다고 합니다.


20210111_123436.jpg 고망물


고망물 옆에는 한 석상이 서있습니다. 한 여성이 항아리를 바구니에 담은 상태로 등에 지고 있죠. 항아리는 ‘물허벅’, 항아리를 담는 바구니는 ‘물구덕’이라고 합니다. 과거 제주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용천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자연히 사람들은 용천수 근처에 모여 살았죠.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용천수 근처에서 살 수는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용천수까지 물을 뜨러 십리 길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이렇게 장거리로 물을 운반하는 사람들을 위해 물허벅과 물구덕이라는 방안을 강구해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물을 잔뜩 이고 걷는 것은 몹시 힘든 일이었을 겁니다. 무겁기도 무겁거니와 깨지기도 쉬웠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허벅과 물구덕이라는 전에 보지 못했던 물건들은 분명 신기했지만, 그 이면에서 느껴지는 과거 제주민들의 고단함은 무척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10111_123456.jpg 물허벅과 물구덕을 지고 있는 여인 석상


5코스 넙빌레 또한 수질이 좋아 황하소주공장의 소주를 만드는 물로 썼습니다. 고망물보다 많은 양의 용천수가 솟아올라 여탕과 남탕을 나누어 목욕탕의 역할도 했었습니다. 지금은 찬 용천수를 맞으며 여름에 즐기는 담수욕을 하는데 쓰고 있답니다. 저는 겨울에 가서 지금도 쓰이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표지판에는 여전히 동네 주민들의 피서지로 쓰고 있다고 적혀 있으니 여름에 올레길을 걸으며 넙빌레를 지나간다면 손이나 발 정도는 담가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20210111_131208.jpg 넙빌레


7코스에서 용천수가 솟아올라 계곡을 만든 속골을 지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법환포구 근처에서 두머니물을 만날 겁니다. 두머니물의 뜻은 역사적 고증이 없어 잘 알 수는 없으나 두면이물이라 해서 ‘머리 두頭’, ‘낯 면面’, ‘화할 이怡’로 풀이하고 있답니다. 법환마을과 강정마을의 바다 경계를 가르는 곳이라 종종 각 마을의 해녀 간에 갈등이 생길 때면 머리와 낯을 맞대고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했던 곳이라 이렇게 해석했다고 합니다. 제주에서 식수를 구하는 곳 자체가 많지 않다보니 마을의 경계까지 식수원으로 정해졌던 육지에서는 보기 힘든 무척 특이한 예입니다. 이곳의 물을 먹고 이곳의 물로 목욕하면 젖이 잘 나왔다고 이야기가 있습니다. 좋은 식수를 구하기 힘든 제주에서 좋은 식수를 마시고 깨끗한 물로 목욕하면 자연히 건강이 좋아져 젖이 잘 나오게 된 것에서 연유하여 이런 이야기가 전해내려 오지 않나 추측해봅니다.


20210114_101720.jpg 속골


16코스의 중엄새물은 특이한 쓰임새를 가지고 있는 용천수는 아닙니다. 앞에서 본 용천수들처럼 마을의 식수원 역할을 하고 있죠. 하지만, 중엄새물을 설명하는 비석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중엄리 마을이 만들어질 때부터 식수원 역할을 했다는 이곳은 원래는 큰 파도로 인해 물을 길어오기 무척 힘든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막기 위해 방파제를 세워 해수를 들어오지 않게 했답니다. 이 설명 후에 붙는 비석의 마지막 말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풍부한 수량으로 인하여 방파제 안쪽으로는 해수가 들어오지 않는 최고 용천 물량을 자랑하는 제주제일의 해안 용수다.”


사실적인 근거는 없지만, 자신들이 애정을 쏟으며 지켜내 온 용천수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지 않나요? 그저 물을 마시는 곳을 넘어 마을 사람들의 자부심을 나타내는 장소로까지 변화한 중엄새물을 보면서 마을 사람들의 뿌듯해하는 표정이 상상되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20210125_094050.jpg 중엄새물


식수원이자 목욕탕, 빨래장이었던 용천수는 이제 관광지가 되어 여전히 제주민들의 삶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조천마을에 있는 용천수 탐방길이죠. 18코스를 지날 때 그 일부를 지나게 됩니다. 용천수 탐방길에는 총 22개의 용천수가 있습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각기 다른 쓰임, 모습을 가지고 있죠. 탐방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용천수마다 친절하게 만들어놓은 설명판을 읽는다면 용천수에 관한 많은 궁금증이 쉽게 풀리리라 생각합니다.


20210128_130117.jpg 용천수 탐방길 수룩물


우물에서 두레박을 통해 물을 긷는 것, 그것이 보통 생각하는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식수 얻는 방법일 겁니다. 하지만, 제주는 조금 다릅니다. 해안가에서 솟아오르는 용천수를 길어와 물허벅과 물구덕으로 나르는 방식이죠. 육지와는 다른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긴 문화입니다. 이 용천수는 물이 없는 제주에서 물을 얻을 수 있는 고마운 장소이면서 마을 사람들의 자부심이기도 했고, 마을을 가르는 경계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문화들은 제주의 어려운 환경을 현대 과학 기술로 거의 극복해내면서 조금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제주를 여행하며 보는 무수히 많은 용천수들은 제주만의 특수한 식수 문화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이런 용천수들이 이제는 잘 쓰이지도 않아 휑해져 찾는 이의 발길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죠. 적극적으로 용천수를 찾아다니며 보존하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적어도 제주를 여행하며 보는 용천수들을 만난다면 과거 제주민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는지 한 번 쯤 떠올려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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