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기행-집~광주~해남
여행에서 돌아온 뒤 짐조차 풀지 않았던 저는 핸드폰을 고친 후 바로 여행 계획을 전면 수정했습니다. 원래 계획이 구례-해남-강진-장흥 순이었다면 해남-강진-장흥-구례 순으로 여행 계획을 바꾸었습니다. 서울에서 광주 심야버스를 타고 새벽 4시경에 도착한 뒤 새벽 6시경에 해남 가는 첫차를 타는 것이 일단 첫 번째 일정이었습니다. 남도는 잠시 비가 그친 상황이었지만, 예보에는 그 주 내로 또 비가 온다고 되어 있어서 방수에 대한 대비는 철저히 하고 갔습니다. 핸드폰 침수에 대한 대비 또한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서울 고속터미널에서 새벽 12시 30분 버스에 탄 저는 잠을 좀체 이루지 못했습니다. 우등버스였음에도 불구하고 버스에 앉아 있는 것이 꽤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진짜 피곤하면 불편함 따위는 잊히는 법. 새벽 2시경에 잠들어 광주에 들어설 때쯤 깼습니다. 광주의 하늘은 맑아 달이 보였습니다. 달이 어찌나 밝은지 눈이 부시더군요. 터미널 앞의 대로에는 차 한 대 보이지 않았고 버스는 이내 터미널 안에 도착했습니다. 새벽 네 시인데도 도착하는 승객들의 온도를 재기 위해 야근하는 직원들과 대합실에 앉아 있는 한두 사람이 보이더군요. 저도 의자 하나를 골라 가방을 내려두고 쉬었습니다.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고 있는데 한 할머니께서 제게 말을 거셨습니다. 예쁘게 차려입으신 분이었습니다. 저에게 어딜 가냐고 물으셨습니다. 여행을 위해 해남을 간다고 답했습니다. 저 또한 이 시간에 왜 광주에 오셨냐고 물었습니다. 여동생이 말기 암에 걸려 병원에 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심야버스를 타고 부랴부랴 달려와서 아침이 되기까지 기다리는 중이라고 하시더군요. 그 여동생이 오빠도 찾고 있는데 정작 오빠는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여동생을 찾길 꺼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슬펐습니다. 뭐라 말을 할 수 없겠더군요. 잠시 끊어졌던 말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제 군대 얘기와 할머니 조카 아들의 군대 얘기가 오가고 서로 방문했던 절과 여행지의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가장 인상 깊은 이야기는 할머니 자신의 인생 이야기였습니다. 50년생으로 새마을 운동의 변화를 몸소 체험하신 할머니의 요즘 관심사는 배움인 듯했습니다. 배움을 주제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하셨으니까요. 우리나라는 새마을 운동 때가 되어서야 모두가 국민학교에 갈 수 있는 체제가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국민학교에는 늦깎이 입학생도 많았다고 합니다. 한 할머니의 국민학교 동창생은 졸업하고 군대에 입대했다고 하더군요. 당시 배움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자신이 친한 언니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77세이신 그 할머니는 글을 배우고 싶어 한문과 한글을 배우는 것도 모자라 컴퓨터를 배우셨으며 배운 글로 도서관 청소일을 하다 쉬는 시간에 책을 읽는 것을 큰 낙으로 삼으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 되게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좋은 환경에서도 공부를 잘못하지 않았나하는 반성과 함께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적어도 제 마음속에서는 이 할머니께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새벽 5시 30분 해가 어슴푸레 고개를 내밀 즈음에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같이 셀카 한 장을 부탁드렸습니다. 되게 부끄러워하시면서도 좋아하시는 모습이 마치 어린 소녀 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5시 50분에 해남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나주, 영암을 거쳐 해남으로 진입하는 버스에서도 전부 새로운 풍경밖에 없었습니다. 나주의 중심시장이나 나주의 영산포 홍어 거리나 나주 반남 고분군과 같은 곳들은 저의 흥미를 자극했습니다. 길가의 논에서는 드론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 모습이 놀라웠습니다. 영암은 군 동기가 사는 곳이라 했는데 그 산만한 성격 유지하며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더군요. 영암과 강진에 걸친 월출산은 내일 갈 것이었기에 그 이름을 눈에 새기며 기억했습니다.
버스는 산길을 달리고 달려 해남의 중심에 도착했습니다. 읍내는 생각 이상으로 발달하여 인상적이었습니다. 관광지로 최근에 발달한 모습이었습니다. 해남 공용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거쳐 대흥사로 가는 버스의 표를 구매했습니다. 표지판이 없어 어떤 버스를 타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노란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 할머니분들이 보였습니다. 바로 물어보았더니 버스를 태워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내리는 곳을 모르면 꼭 버스 기사님께 말을 하라고 하시더군요. 목적지를 말하자 기사님께서 친절하게 전라도 사투리로 알려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침 7시 40분 시내버스는 드디어 첫 번째 답사지인 고산 윤선도 유적지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