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기행-해남 고산 윤선도 유적지1
버스에 올라타자 외국인들이 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대흥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덕분일까? 해남에 외국인 관광객이라니 신기했습니다. 버스는 채 10분이 지나지 않아 연동리 입구에 저를 내려놓았습니다. 유적지까지는 이제 걸어서 1.5km를 가야 했습니다. 천천히 걷다 보면 썩 길지 않은 거리. 가는 길은 인도와 차도가 나누어져 있고 가로수가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름인지라 가로수에 붙은 거미줄이 자꾸 달라붙어서 어떤 차도 보이지 않는 2차선 차로를 혼자 만끽하며 걸어갔습니다. 앞으로는 야트막한 덕음산이 보이고 좌우로는 논이 계속 펼쳐져 있었으며 좌측의 끝으로는 해남읍의 아파트가 멀리서 보였습니다.
가로수에는 분홍색 꽃이 전부 피어있었는데 예전에 제주도의 식물 공부를 하면서 본 기억이 있었습니다. 별명인 백일홍 나무는 기억나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나 나중에 집에 도착하여 동생에게 물어보니 배롱나무라 하였습니다. 배롱나무 또한 그 생김새의 아름다움과 나무껍질의 매끈함으로 많은 선비가 사랑하였는데 그중 성삼문의 한시가 유명하여 잠시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난 저녁 꽃 한 송이 떨어지고(昨夕一花衰)
오늘 아침에 한 송이 피어서(今朝一花開)
서로 일백일을 바라보니(相看一百日)
너를 대하여 좋게 한잔하리라(對爾好衡盃)
이런 한시의 주인공인 배롱나무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으며 남도에서는 어딜 가나 볼 수 있었습니다. 남원 실상사의 마당을 지키고 있었으며 남도의 모든 길가마다 심어 있었습니다. 여름이면 흐드러지게 피는 작은 꽃들이 분홍빛으로 나무를 물들이는데 그 아름다움이 화려하지만 어딘지 모를 단아함을 가지고 있어 사람의 눈길을 자꾸만 뺏습니다.
배롱나무를 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다 보니 고산 윤선도 유적지임을 알리는 비석과 그 뒤의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저를 반깁니다. 살짝만 더 가보면 백련지라는 연못이 나옵니다. 연꽃의 봉오리는 맺혔으나 채 피지 않은 것들이 많아 아쉬웠습니다. 한두 개 핀 흰 연꽃들은 고결함이 새겨진 것처럼 빛났습니다. 이곳 마을의 이름도 연동(蓮洞)리로 연꽃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불교의 발자국 하나 찾기 힘든 이곳에서 연꽃이 왜 있는 것일까요?
연꽃은 유교에서도 군자를 뜻하는 상징적인 꽃이었습니다. 송나라 대의 성리학자 주돈이는 애련설이라는 글을 지어 연꽃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글은 더러운 곳에서 아름답게 피어나 그 향기가 멀리까지 미치니 그 모습이 마치 덕이 높은 군자의 모습과 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글에 따라 숙종은 창덕궁 후원의 한 연못 이름을 애련지라 하였으며 경복궁에는 연꽃의 향기가 멀리 퍼진다는 뜻의 향원정이 건청궁 앞의 아름다운 연못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연꽃을 지나자 본격적인 고산 윤선도 유적지 안에 들어섰습니다. 유적지 안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은 어부사시사의 시비였습니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라는 말이 잔뜩 들어간 고전 시가는 수능 공부 중에 한 번쯤 볼만한 시가였을 겁니다. 어부의 삶을 사계절에 나누어 표현한 아름다운 어부사시사에서는 당쟁에 밀려 많은 시간을 본가인 해남에서 유유자적한 윤선도의 삶 또한 살펴볼 수 있을 겁니다.
유적지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 후손들이 사는 곳으로 집 안이나 사당의 안은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저는 이것을 모르고 갔다가 십 분쯤 기다렸으니 후에 이 유적지를 가는 여러분은 기와집 돌담이 주는 고즈넉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산책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구조나 모양은 유적지 입구 옆 유적전시관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그리 안타까워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답사인지라 이곳저곳 둘러보는데 들어갈 수가 없으니 인상적인 것은 건축이 아닌 밖에 있는 나무였습니다. 오래도록 이 해남 윤씨의 본거지를 지켜왔을 나무는 대체로 매우 컸습니다. 커다란 나무가 함께 자라온 가문의 역사를 증언하는 듯했습니다. 특히 녹우당 대문 앞의 은행나무는 해남 윤씨 중시조 윤효정의 아들 진사시의 합격을 축하하며 심은 것이라 하니 문득 나무가 긴 시간 봐왔을 가문의 역사가 궁금했습니다.
사당 사이에 난 골목길을 이리저리 지나면 해남 윤씨 가문이 덕음산에 자리 잡을 때부터 조성해왔다는 비자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비자림의 초입에는 중시조인 어초은 윤효정과 그 부인의 묘가 자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묘소를 지나면 녹음이 짙은 숲속이 펼쳐지는데 나무의 높이와 크기가 이곳이 오래된 숲임을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이 집의 사랑채 이름이 녹우당이라 붙여진 데는 이 숲에 이유가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비자나무의 잎들이 스치면서 쏴아아하는 소리를 내는데 이것이 마치 녹색의 비가 내리는 것 같다 하여 녹우당(綠雨堂)이라 이름을 붙인 것이죠. 그렇게 사람 없는 비자림에서 조용히 그 분위기를 즐기며 쉬다가 진짜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져 비자림 밖으로 나왔습니다.
비자림에서 나오는 도중에 축구 유니폼을 입은 한 장년의 남자와 어린 남자아이가 보이더군요. 옷도 세트로 입은 것이 누가 봐도 영락없는 부자처럼 보였습니다. 지나쳐 내려와 녹우당 은행나무 앞에 앉아 쉬고 있는데 갑자기 장년의 남자가 말을 걸더군요. 녹우당에 들어갈 방법이 없냐고요. 저는 못 들어가지 않겠냐는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장년의 남자는 매우 들어가고 싶었던지 계속 그 주변을 살펴보더군요. 마침 9시가 되어 유적전시관으로 향하는데 아버지와 같이 온 것처럼 보였던 남자아이가 보여 말을 걸었습니다. 이것저것 물어보며 말을 걸었는데 장년의 남자는 아버지가 아닌 할아버지였으며 강남에서 사는 초등학생이고 2박 3일 일정으로 이곳을 둘러보고 있더군요. 어제는 진도에 있었다길래 오늘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물어보니까 진도라고 당연하게 답하는 아이를 보며 한바탕 웃었습니다. 그 아이의 당찬 태도가 맘에 들어 ‘그래 여기가 진도지.’라고 나직이 말한 후 저는 유적전시관으로 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