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문학의 중심지

사찰기행-해남 땅끝 순례 문학관

by baekja

10시가 넘어가고 있는 아침, 해는 구름 밖을 나와 세상을 내리쬐기 시작했습니다. 해를 맞으며 100m 정도 걷자 문학관의 모습이 완연히 드러남과 함께 몇 개의 시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풀잎>-박성룡, <혼야>-이동주, <사랑은>-김남주와 같은 작품들이 시비로 만들어져 서 있었습니다. <어부사시사>나 <오우가>를 기대했던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이렇게 많은 현대시라니 문학관 내부가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문학관 내부에 들어가자 가장 먼저 내걸고 있는 시인 4명이 제 눈을 사로잡더군요. 이동주, 박성룡, 김남주, 고정희였습니다. 넷 다 모르는 시인. 저의 무식함에 좌절감까지 느껴지더군요. 문학관엔 저밖에 없었지만, 도슨트 분께 설명을 요청했습니다. 혼자 설명을 요청하는 것에 꺼림칙해 보이는 것이 눈에 보였지만, 뒤에 두 분이 바로 합류하시면서 편하게 설명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별 볼 일 없는 변방의 땅끝에 문학적 소양이 심어지게 된 때는 딸밖에 없어 대를 어떻게 이을지 고민하던 지역의 유지 해남 정씨가 지역 밖에서 데릴사위를 데려오는 조선 초기입니다. 금남 최부라는 뛰어난 유림이 들어와 제자들을 두며 해남의 인문이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이 제자 중에는 해남 윤씨의 중시조 어초은 윤효정 또한 있었습니다. 윤효정은 문학을 배우면서 자신의 재산 또한 불리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윤구와 윤선도, 윤두서로 이어지는 해남 윤씨 인문의 한 줄기를 잇게 됩니다. 그런 중심을 바탕으로 수많은 해남 시 문학의 부흥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현대에도 이어져 김남주, 이동주, 박성룡, 황지우, 고정희 등의 다양한 문인을 배출하였습니다.


조선 시대 해남의 문인은 윤구, 임억령, 유희춘, 박백응, 백광훈, 윤선도, 윤이후, 초의선사 등이 있지만, 저는 이들 중 초의선사의 시를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다 끊어져 가던 다도의 명맥을 이곳 해남 대흥사에서 살린 초의선사는 <동다송>이라는 사실상 유일한 한국 다도 책을 편찬한 한국 다도의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이후 대흥사 답사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고 동다송 중 제 16송을 밑에 적을 테니 차의 향과 초월 세계의 그윽한 조화를 생각하며 시를 한 번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一傾玉花風生腋 차 한 잔 기울이니 겨드랑이에서 바람 일고

身經已涉上淸境 몸은 이미 가벼워져 신선 세계에 도달했네

明月爲燭兼爲友 밝은 달은 촛불이 되고 나의 친구가 되며

白雲鋪石因作屛 흰 구름으로 자리 펴니 병풍 되었네


조선시대를 지나면 대한 제국 시대에 오게 되는데 이쯤 되면 해남의 삼문장이라 불리는 세 명이 나타납니다. 박모, 이휴, 최경휴가 그 셋입니다. 이미 이곳저곳에서 연꽃을 보았던지라 박모가 쓴 연꽃에 관한 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不園而必水 정원엔 없으나 물에는 있고

不春而必秋 봄에는 없으나 가을엔 있네

有如隱君子 숨은 군자와 같은 이 있어

獨自天然遊 홀로 자연스럽게 노닌다네


이제 수많은 현대 시인을 만날 차례인데요. 자연을 서정적으로 노래한 박성룡 작가, 독재 정치에 저항하며 옥에서도 우유곽에 칫솔을 갈아 시를 썼던 김남주 작가,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에서 여성주의까지 발전하여 우리나라 여성주의 시문단을 연 고정희 작가, 고향의 풍토를 담아 노래한 김준태 작가, 국어책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봤다면 모를 수 없는 황지우 작가, 더 나아가 <무소유>를 써서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릴 것을 말하며 수많은 현대인에게 깨달음을 주었던 법정 스님까지 모두 해남 출신이었습니다. 여기에 황석영 작가가 <장길산>이라는 소설을 쓰기 위해 해남에서 잠시 거주했다는 것까지 합치면 매우 유명하고 다양한 작가들이 해남을 바탕으로 글을 써왔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시인들의 이름만 봤을 때는 전혀 알 수 없었는데 시를 보니까 ‘아’하는 탄성이 나오더군요. 수능 공부할 때 한 번쯤 분석했던 시들이 다수였습니다. 당시에는 ‘도대체 이게 왜?’라는 생각을 하며 암기식으로 분석했다면 지금에 와서는 시가 담고 있는 주제와 느낌을 받으며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고정희 작가의 <우리 동네 구자명 씨>, <상한 영혼을 위하여>, 김준태 작가의 <참깨를 털면서>는 그 느낌이 좀 더 강렬히 다가오더군요. 요즘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다는 박성룡 작가의 <풀잎>이나 김남주 작가의 <사랑은>과 같은 작품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황지우 작가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더 말할 나위 없을 정도죠.


현대 작가들이라고는 하지만, 위의 말한 작가들도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작가들입니다. 남도 문학의 중심지라 자신감 있게 말하는 해남은 이런 과거에 그치지 않고 지금 당장에도 작가들이 활동을 계속하는 중입니다. 시인협회에 등록해 있는 사람들만 수백 명이며 아직 활동 중인 공식적인 시인 모임만도 네 개라고 하네요. 또한, 해남 시 자체에서도 고산문학축전, 공재문화제, 초의문화제, 김남주 문화제, 고정희 문화제 등 여러 문화제를 개최하며 이들을 기리고 있습니다. 땅끝의 문학은 조선 시대를 거쳐 대한 제국을 지나 근현대사를 관통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확 와 닿는 부분이었습니다.


설명이 끝나고 도슨트께서 위층의 북카페를 가보면 좋을 것이라 하여 그쪽으로 가보았습니다. 마침 소나기가 세차고 내리고 있기에 시간이나 때울 겸 북카페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카페라고 해서 뭘 팔지도 않고 점원도 없었습니다. 그냥 방 두 개에 책을 꽂아 놓은 작은 도서관 같더군요. 뭘 읽을지 고민하다가 내일 가볼 강진의 시인이자 ‘북에는 소월, 남에는 영랑.’의 주인공인 김영랑 시인의 시집을 꺼내어 차분히 읽었습니다. 읽다 보니 어느새 해가 떠 있더군요. 밖으로 나와 이곳저곳을 살피는데 들판에 보라색 맥문동과 코스모스가 다수 피어 있어 제 눈길을 빼앗았습니다. 그렇게 흐뭇한 마음으로 한참을 보다가 뒤를 돌아보니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 있더군요. 분홍빛으로 환하게 피어난 연꽃은 제 마음도 불을 밝혀 주었습니다. 문학관 뒤쪽에는 백련재 문학의 집이라 하여 문인들이 모여 사는 곳도 있었습니다.


주변을 살피고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벗어나면서 보는 해남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땅끝이 가진 말의 무게와 그 힘에 실린 문학의 가치들이 온전히 제게 다가오면서 완전히 다른 고장으로 느끼게 하더군요.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하지요. 저는 만약 이 문학관을 가보지 못했다면 해남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문학에 대해 전혀 모른 채로 해남 여행을 마무리했을 것입니다. 이것보다 안타까운 일은 없겠지요. 앎의 중요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며 나오는 길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에서 유홍준 교수가 해남의 땅끝으로 남도 답사를 정리하면서 김지하 시인의 <땅끝>을 소개했던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문학관에서 해남을 대표하는 시를 무엇을 고르면 좋을까 생각하다 박성룡 시인의 <고향은 땅끝>을 골랐습니다. 가끔 누군가에게나 다가오는 현실의 막막함, 답답함이 마음에 와서 닿았습니다. 이 시를 끝으로 이제 현실을 넘어 초월의 세계로 넘어갈 차례입니다. 땅끝의 대찰, 세계유네스코 문화유산 대흥사로 발걸음을 돌려보겠습니다.


고향은 땅끝


박성룡


고향은

땅끝이었다.

더는 나아갈 수가

없었다.

한반도의 최남단.

해남반도, 그 중에서도

맨 꼬리인 화원반도,

그 너머는 땅끝이었다.

더는 나아갈 수가

없었다.

어디론가

가고 싶은 마음

바다 같고, 하늘 같았지만

더는 나아갈 수가 없었다.

가고 싶은 마음은 깃발이었다.

다만 바닷바람에

찢어지는 깃발이었다.

찢어져서 나부끼는 깃발이었다.

더는 나아갈 수가 없었다.

keyword
이전 10화해남의 종가, 남도 문화의 중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