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대사의 얼이 서린 땅끝의 명찰

사찰 기행-해남 대흥사

by baekja

너른 양지와 맑은 하늘 아래 일주문이 있었습니다. 아스팔트로 만든 커다란 앞의 문과는 달리 늘 보아오던 다른 절들의 일주문과 비슷한 그런 문이었습니다. 이것 또한 최근에 만든 것으로 보였지만, 그 크기가 자연과 어우러져 보는 데 방해가 되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전에 본 적 없는 수많은 부도밭이 보였습니다. 다른 말로는 승탑밭이라 할 수 있겠죠. 승탑과 승탑비가 전에 본 적 없이 모여 있는 대흥사의 승탑밭은 이 절이 가진 역사와 위세를 보이는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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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가 세워진 것은 나말여초로 역사는 오래된 절이 맞으나 명찰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숭유억불 정책을 펼쳤던 조선에서조차 존경을 받았던 두 스님이 있었습니다. 서산대사와 사명당인데요. 사명당의 스승이며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킨 서산대사는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하며 제자인 사명당과 처영 스님에게 자신의 금란가사(옷)과 발우(그릇)을 대흥사에 봉안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시작인 대흥사가 지리산의 맥과 이어져 있으며 공적을 세우고 세속에 남으려는 자들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세속의 문제를 해결했으면서도 그 세속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비우고 초월의 세계를 추구한 과연 큰 스님의 유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명하지 않은 지방의 한 절에 불과했던 대흥사는 이로 인해 조선 시대 손에 꼽는 명찰이 되었고 덕과 뜻이 높은 스님들이 몰려와 13대 종사와 13대 강사가 머무른 곳이 되었습니다.


13대 종사 중에는 한국의 ‘다성(茶聖)’이라 불리며 정약용, 김정희와 교류했던 초의선사도 있었습니다. 초의선사는 현재 남은 가장 오래된 한국의 차 관련 서적인 <동다송>을 집필한 사람입니다. 이분이 대흥사의 일지암에 머물렀기에 대흥사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차의 역사를 가졌으며 이에 따라 차의 성지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절 건물들의 권역으로 들어가기 전에 자리 잡은 ‘동다실’이라는 찻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솔잎차를 시켜 먹었는데 솔잎의 은은한 향을 기대한 저는 크게 실망했습니다. 단맛이 강렬하게 나는 게 프랜차이즈 카페의 에이드를 먹는 기분이더군요. 더운 여름이라 시원한 것을 시킨 것에 대한 후회가 몰려왔습니다. 따뜻한 차를 시켰으면 조금 나았을지 생각하며 밖으로 나와 대흥사 답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답사 전에 대흥사의 가람 배치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승방과 법당이 있는 남원, 천불전이 자리한 북원, 표충사 일원과 대광명전 일원까지. 기본적인 4개의 구획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 때 민족 성역화 작업으로 이런 구획을 해치는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섰으며 이는 현재 성보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또한, 근래에 지은 문수전, 보현전 등은 발길조차 닿는 것이 싫을 정도로 콘크리트 건물을 거대하게 지어놓아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더 건물을 짓는 것에 대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자문기구에서 잠시 막고 유산 영향 평가를 진행 중이라 하니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의 건물이 지어지는 것은 정말 보고 싶지 않으니 더 이상의 건축에 대해 유네스코에서 확실히 막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남원 구획이 복원 공사 중이어서 들어갈 수 없었기에 저는 천불전이 자리한 북원부터 감상했습니다. 북원은 천불전을 제외하고는 스님들의 수행공간이라 들어갈 수 없었는데 천불전만 보았는데도 충분히 만족할 만했습니다. 팔작지붕으로 지어진 조선 시대 다포 양식의 건물인 천불전은 보물로 지정이 되어있습니다. 사실 안쪽의 천불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천불전의 꽃살무늬 창살입니다.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으며 제각각의 모습이 아름답게 조각되어있는 이것은 흔히 보던 창살과는 확실히 다른 아름다움을 보였습니다. 또한, 편액의 글씨는 동국진체의 진수를 보여준 원교 이광사의 것으로 한눈에 명필임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는 용화당이라는 건물이 있었습니다. 건물은 ‘ㄱ’자 모양으로 긴 부분은 팔작지붕으로 짧은 부분은 맞배지붕으로 되어있어 특이함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용화당의 편액 또한 예사롭지 않아 설명을 읽어보니 대한제국 시기의 명필인 성당 김돈희가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천불전과 용화당 모두 1811년에 불탄 것을 초의선사의 스승인 완호대사가 1813에 중건했다고 합니다.


천불전과 용화당을 기분 좋게 보고 나오니 앞의 무염지가 참으로 아름다워 멈춰서 잠시 바라보고 표충사로 향하는데 역시나 옆에 있는 성보박물관의 콘크리트가 그 분위기를 다 망쳐놓더군요. 혀를 한 번 차고 표충사로 들어갔습니다. 서산대사와 사명당, 처영이 임진왜란 때 승병으로 활약한 것을 기리기 위해 지은 이 표충사는 절 안에 유교 관련 건물이 있는 매우 특이한 경우입니다. 서산대사에 의해 명찰로 바뀌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표충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정조대왕의 표충사 친필 현판이었습니다. 그 당차고 위엄 있는 글씨가 정조가 했던 개혁정책들을 떠올리게 만들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표충사를 나와 문수전, 보현전 권역에서 뒤로 눈을 돌려 산간 분지에 자리 잡은 대흥사의 호방한 자리앉음새를 보며 그저 감탄하였습니다. 작게 건물들이 모여 있던 아늑함과 대비되는 느낌이라 이 두 대비되는 느낌을 모두 가지게 절을 조성한 것에 대해 그저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옆쪽에 작게 자리한 대광명전으로 들어가고자 했으나 이곳 또한 스님들의 수행 공간이라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박물관이 닫히고 남원 가람이 복원 중이라 들어갈 수 없는 상황에서 추사 김정희의 글씨에 목말랐던 저는 대광명전 권역 안에 있는 추사의 ‘동국선원’ 글씨가 매우 보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이 발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대광명전 뒤로 이어지는 길이 초의선사의 일지암과 북미륵암의 마애여래좌상으로 가는 거친 산길로 이어지기에 뒤로 돌아가는데 옆에 난 문으로 동국선원의 글씨가 보이더군요. 가까이 가서 볼 수는 없었지만, 과연 추사라는 이름값이 아깝지 않은 명필이었기에 감탄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산길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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