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기행-해남~강진 무위사
전날 일찍 잤던 덕분인지 새벽 6시에 일어나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일어나서 가장 먼저 날씨를 확인했는데 전국에 비가 내리고 해남에는 강풍주의보가 떨어져 있더군요. 어제 좋았던 날씨는 거짓말같이 하늘 또한 먹구름이 가득했습니다. 다시 짐을 전부 싸고 방수팩까지 가방에 덮고 숙소를 나왔습니다. 친절하신 주인장께 인사를 하고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세차게 부는 바람 때문에 놀랐습니다. 전역한 후 처음으로 백령도의 강렬한 바람이 떠오르더군요. 어쨌든 7시 10분에 버스에 탑승했는데 2차선 도로에서 시원하게 밟는 해남 버스 기사님의 엑셀도 바람만큼이나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7시 33분에 터미널에 도착했고 7시 40분에 강진행 버스에 탑승했습니다. 20분만인 8시에 강진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더군요. 버스 시간표를 살펴보니 8시 20분에 무위사 가는 버스가 있었습니다. 저는 잠시 버스터미널을 나와 터미널 주변을 살펴보았습니다. 조그마한 로터리가 인상적인 강진의 중심가는 5층 정도가 제일 높은 건물로 보였습니다. 해남과 크게 다른 것이 없었지만, 건물들이 대체로 낡아 오래된 시가지라는 느낌이 물씬 풍겼습니다.
시가지의 모습을 뒤로하고 버스터미널로 다시 들어가는데 5.18 민중항쟁이라고 쓰여있는 표지판이 눈에 띄더군요. 그 표지판에는 광주민주화운동 기간 중 강진에서 벌어진 시위의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광주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몇 대의 버스에 탑승한 시위대가 강진시외버스터미널에 들어와 시가지를 행진하자 강진군민들이 함께 시위를 진행했고 강진읍교회에 본부를 정하고 남도장여관에 머물렀습니다. 이후 강진농업고등학교 학생들이 시위에 합세했고 해남 우슬재에서 계엄군에게 총격을 당한 사람들을 강진병원(현 강진의료원)에서 치료해주었습니다. 시위행렬은 장흥방면으로 진출하다 5월 24일을 끝으로 자진 해산했습니다. 어제 해남에서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광주민주화운동의 이야기가 강진까지 이어지자 저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전남 전체에 영향을 미쳤음을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교과서로 봤을 때는 광주에 국한된 운동처럼 보였던 광주민주화운동이 전남 전체에서 산발적으로라도 벌어졌음을 직접 답사를 통해 보면서 답사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깨닫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터미널로 들어와 8시 20분의 무위사행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모란의 모자이크 벽화가 길 곳곳에 그려진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과연 <모란의 피기까지는>의 시인 김영랑의 고장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가지 외곽의 강진의료원을 지나자 건물들은 사라졌고 버스는 2차선 도로를 계속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8시 30분경에 비가 내리기 시작해 저는 오늘 여행이 절대 쉽지 않을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성전면 터미널이라는 꽤 큰 경유 터미널을 지나쳐 월하마을을 지나 8시 43분에 무위사 앞에 도착했습니다. 해남 시내버스에서는 정류장 방송이 나오지 않았지만, 무위사행 버스에서는 방송이 나와 어렵지 않게 정류장에 내릴 수 있었습니다.
내리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비는 잠시 그쳤으나 이곳이 버스 정류장이라는 표시가 하나도 없는 데다가 돌아오는 버스의 시간표 자체가 존재하지를 않아 이후에 어떻게 돌아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커졌지만, 일단은 눈앞에 있는 월출산 무위사를 구경하기로 하고 걱정은 잠시 넣어두었습니다. 월출산은 달이 처음 나타난다는 의미의 산으로 달밑의 마을이라는 월하마을이 이에 이름을 맞춘 것으로 보입니다. 달빛을 끌어들인다는 의미의 지리산 남원 인월도 달이라는 뜻을 그 이름에 넣어놓은 것으로 보아 명산과 그 근처의 마을에 달의 뜻이 자주 들어감을 알 수 있습니다. 그저 높은 산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달을 끌어와 이곳이 아름다운 명산임을 강조한 선조들의 재치와 낭만에 감탄하며 정류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보이는 일주문을 향해 조금씩 걸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