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기행-강진 무위사
부푼 기대감을 안고 무위사에 들어가기 전 무위사의 이름에 대해 설명하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무위(無爲)란 말은 도교에서 만큼이나 불교에서도 자주 쓰이는 말로 어떠한 인위적인 생각이나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즉, 인위적인 것을 멈추고 세상의 흐름과 법칙에 몸과 정신을 모두 맡겨 그 흐름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면 세상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겨 살아가는 소탈한 농부의 모습이 떠오르고는 합니다. 절 오른쪽에는 조그만 주차장이 있지만 그 옆으로는 풀만 무성한 월출산의 자락이 있고 그 자락 밑으로는 조그마한 시골 마을이 보이는 곳에서 조용히 농사를 짓는 그런 모습이죠. 그런 고요함과 차분한 인상을 가진 무위사는 낮게 깔린 아침의 흐린 구름과 더불어 더욱 짙게 그런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무위사사적>에 따르면 원효스님에 의해 창건되고 도선국사에 의해 중창되었다고는 하나 믿을만한 기록에 의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10세기 초에 형미스님에 의해 중창되었을 때부터입니다. 고려 시대에는 선종 사찰로 유명하였으나 조선 시대에는 죽은 영혼을 달래주는 수륙재를 행하였던 사찰 이라고 합니다. 이에 따라 중심 건물은 극락보전이요. 이 건물 안의 부처는 극락세계를 담당하였던 아미타여래불이지요.
짧지만 잘 닦인 진입로를 지나 일주문을 넘어 가자 바로 천왕문이 눈앞에 들어왔습니다. 부석사나 불국사의 기단만큼 극적이거나 의미를 크게 가지지는 않는듯했지만 기단이 점점 올라가는 것이 그래도 극락으로 간다는 느낌을 주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천왕문을 넘어서자 웬 비닐하우스가 양 옆으로 하나씩 있었습니다. 양 옆으로 규칙성 있게 둔 것이 신기했으나 그 모습이 돌담을 가려 시각적으로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급자족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생각하니 차분한 농부의 모습과 겹쳐져 그들이 지켜가고 있을 ‘무위’의 삶을 가늠해볼 수 있었습니다.
천왕문 옆의 중건비를 슥 보고 지나자 이제 절의 주 권역이 드러남을 말하는 한 누각이 보였습니다. 그 누각의 밑을 지나자 아름답고 소박한 한 건물이 제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단청이 다 빛이 바래 바로 한 눈에 그 역사를 증언하는 무게감을 던지는 그 건물은 가람의 중앙에 살며시 하지만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자신이 중심임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그 소박함과 거기서 나오는 아름다움에 반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나무 아래서 지긋이 바라볼 때쯤 톡톡하는 소리와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우산을 펼치고 들어 자박자박 발소리마저 죽이며 천천히 극락보전을 살펴보러 앞으로 향했습니다.
극락보전의 앞에는 원래 있었어야 할 석등의 기단이 남아 있더군요. 가운데 새겨진 연꽃이 생생하고 입체감 있어 인상적이었습니다. 고개를 들어 극락보전의 안쪽을 보니 극락을 관장하는 아미타여래불과 죽은 영혼을 인도하는 지장보살과 중생을 구원하는 관음보살이 함께 한 아미타삼존불이 보이더군요. 분명 불교에서는 죽은 이후에 선업을 쌓아 극락에 가더라도 그것이 업을 쌓은 것이기에 근본적인 고통의 해결은 아니라 말합니다만, 평범한 일반 백성들이 믿기에는 깔끔하게 중생을 구원하고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 저 삼존불만큼 믿음직한 것이 없었겠지요. 불상들 뒤의 국보인 벽화의 아름다움에서도 아마 백성들은 불교의 진리보다는 현세의 고통을 보상받을 만한 내세의 복을 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또 다른 보물인 내벽의 벽화도 아름다웠지만, 복제품이고 진품은 성보 박물관에 있다고 하더군요. 거기에 성보 박물관은 코로나로 문을 닫아 진품을 볼 수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안을 들여다보고 천천히 나와 극락보전을 돌며 하나씩 천천히 뜯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소박함을 더하면서도 세련됨을 잃지 않은 맞배지붕과 건물의 안정감을 더하는 배흘림기둥, 안정감을 더하는 주심포 양식까지. 고려시대의 양식을 이어받은 조선 초기의 건물임이 확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 건물의 특징은 이런 양식을 운운하는 말에서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단청이 빛이 바래 나무의 색이 들어나는 오래된 시간의 묵음, 단순한 건물의 구조에서 느껴지는 검소함,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도 묵직함을 던지는 가람의 중심이라는 건물의 위치까지. 이 건물이 왜 찬사 받을만한 건물이며 국보 제13호인지를 제 손으로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건물의 황홀함에서 잠시 빠져나와 가람을 천천히 살펴보는데 대부분이 새 건물들이라 정은 안 가고 옆의 탑비와 3층 석탑만 제 눈을 사로잡더군요. 강렬한 위용을 풍기지만 해학을 잊지 않은 웃고 있는 탑비의 용머리 거북 받침은 이미 그것이 상당한 유물임을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대칭인 그 받침의 묘수는 뒤의 꼬리에 있었습니다. 왼쪽으로 살짝 휘어 모두가 대칭인 탑비에 생명력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재치를 보여주고 있었죠. 이 아름다운 탑비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무위사를 중창한 나말여초의 명승인 형미스님의 탑비이기도 합니다. 잠시 탑비에 서서 무위사의 옛 모습을 그려보려 하였으나 극락보전 말고는 잘 상상이 안 가더군요. 아마 극락보전의 아름다움이 주는 여운에서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잠시 고개를 들어 탑비에서 월출산 자락이 뻗어나가는 기세와 흐린 구름이 잔뜩 깔려 낮아진 하늘의 높이를 감상하다 탑비 아래에 있는 3층 석탑을 보러 향했습니다. 전남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그 석탑은 매우 아름다운 느낌을 주지는 아니하였으나 통일신라 3층 석탑의 양식을 잘 받아들인 석탑으로 돌을 통해 다가오는 오랜 세월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마, 무위사의 오랜 역사를 증언하는 몇 안 되는 유물이겠지요. 분명 역사는 글로써 기록된 것이 주일 텐데 이런 기록도 없는 돌에서 오랜 역사와 세월을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역설적이라고 느껴지더군요. 그런 생각을 하자 문득 가만히 비바람을 견디며 오랜 시간을 서있었을 석탑이 참으로 대단하다다고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보고 천천히 주변을 살펴보는데 무언가를 빠트린 기분이 들더군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백의관음보살도를 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그리도 극찬했던 그 보살도를 보지 않고는 떠날 수 없었기에 극락보전 주변을 유심히 살피는데 아미타삼존불 뒤에 뒷공간이 있는 것이 맘에 걸렸습니다. 신발을 벗고 극락보전 안의 뒷공간으로 들어가니 아니나 다를까 아름다운 백의관음도가 있더군요. 조용하지만 어두운 극락보전의 뒤에서 환한 후광을 비추는 백의를 입은 아름다운 관음보살이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유려하고 우아한 자태와 흐드러진 옷자락의 표현에 압도되어 절로 관음이 정말 중생을 구제하러 내려올 것만 같은 느낌을 받게 되더군요. 이토록 생생하고 아름다운 관음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중생을 구제할 수 있을지 의문까지 들기도 했습니다. 극락보전의 내의 차분한 분위기와 더불어 그림에서 마치 종교 신앙의 근간인 초월성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극락보전과 백의관음도를 눈과 마음에 다시 새기고 걷힐 생각을 안하는 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보며 나오다가 천왕문 뒤의 화단에 핀 봉선화를 보았습니다. 그토록 아름다운 건축과 그림에 중독되어버려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음에도 봉선화의 보랏빛을 보자 매우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 깨닫고는 인간의 손으로 인간이 알 수 없는 초월성을 표현하기에 이토록 노력하였으나 우리 주변에 가득한 자연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손으로 표현하려 했던 그 모든 아름다움과 초월성의 위에 있다고 나지막이 속삭이며 천천히 발을 내어 무위사를 빠져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