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짝 깊은 정원은 마치 보물과 같으니

사찰기행-백운동원림

by baekja

우리나라 남쪽을 대표하는 꽃은 무엇일까요? 각자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저는 동백이라고 생각합니다. 붉은 빛의 꽃 안에 노란 속살이 형형색색으로 이루어져 화려하나 단아함을 갖추고 있는 그 아름다운 꽃을 저는 정말 좋아합니다. 그 꽃을 뒷받침하는 것은 일 년 내내 푸름을 자랑하는 잎사귀들이지요. 전라, 제주, 경상에 걸쳐 우리나라 남쪽을 겨울이면 흰 눈과 어우러져 절경에 절경을 거듭하는 동백을 저는 무척 사랑합니다.


월출산 자락의 옥판봉을 낀 백운동원림 또한 시작은 동백과 함께합니다. 오른쪽 돌담 옆으로 가득 심어진 동백나무는 길게 뻗어 길을 그늘져 드리워 마치 터널인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여름이라 푸른 잎들만 가득했지만, 추운 겨울이 오면 보는 이의 마음까지 다 따스하게 만드는 동백이 한 아름 피겠지요. 이러한 돌담과 동백으로 이루어진 이러한 터널은 이제부터 백운동원림에 들어가니 한바탕 즐길 준비를 하고 들어가라고 하는 듯합니다. 다만 이 날은 구름이 잔뜩 끼어 공기조차 어두운지라 약간 스산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다산 또한 입구의 동백나무가 인상 깊었는지 초의선사와 방문하면서 지은 <백운동12승사> 중 두 번째 시의 주제를 동백으로 하였습니다. 뒤의 시를 읽으며 겨울의 동백을 상상해보시길 바랍니다.


산다경(山茶徑, 山茶: 동백의 별칭)


언덕을 끼고 심은 동백나무가

이제는 길 가득 그늘 만드네

가지마다 꽃 보숭이 맺혀있으니

세한의 마음을 남겨둔 걸세


이제 본격적으로 백운동원림에 들어가기 이전에 몇 가지만 알아두고 들어가도록 하지요. 조선 중기의 이담로가 지은 별서인 백운동원림은 현재 호남의 3대 정원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하나는 담양의 소쇄원이요 다른 하나는 완도 보길도의 부용동이니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백운동원림이 대단한 정원임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산과 초의선사 외에도 남구만, 김창흡, 김창집 등이 방문한 기록이 있어 꽤 깊은 내력이 있는 정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오랜 시간 잊힌 채로 원형이 훼손되었었으나 2004년 정원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강진에서 다시 복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즉, 우리가 백운동원림에 가서 보게 되는 대부분은 복원된 건물이라는 말이란 뜻입니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정원에서 중요한 것은 자연에 맞게 배치된 건물의 자리앉음새와 거기에서 바라보는 자연이지요. 동백의 그늘을 지나 마주하게 되는 폭포와 다리가 얼마나 이 정원이 아름다운 곳에 자리를 잡아두었는지 말해줍니다. 폭포는 매우 드라마틱하게 드러납니다. 당장 몇 미터 안 되는 동백나무 길을 걸을 때만 해도 전혀 폭포가 있을 것이란 예상을 하기 쉽지 않지만, 동백나무가 시야를 터주는 때가 되면 바로 폭포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다산은 홍옥폭(紅玉瀑)이라 하여 단풍나무 아래에서 붉은 빛과 어우러지는 폭포의 물방울을 예찬하였으나 해가 구름 깊숙이 가린 상황에 있었던 저는 거기에 단풍나무가 있는지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폭포가 떨어지는 소리나 구도는 충분히 아름다웠고 폭포를 건너가야 백운동원림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은 마치 속세의 것을 폭포에 씻어내고 자연의 품속으로 들어간다는 듯하여 매우 좋았습니다.


폭포를 넘어가니 어두운 그늘 아래에서 암각한 한자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白雲洞’, 정원의 이름이었습니다. 이 정원을 조영한 이담로가 직접 쓴 것으로 보이는 이 글자는 이제부터 정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왼쪽으로 시선을 틀자 어두운 나무 그늘 사이로 돌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돌담은 안을 살짝 보이면서도 다는 보여주지 않아 어떤 아름다움이 있을지 기대감을 한껏 높였습니다.


여느 사대부의 대문과는 다른 낮은 대문의 문지방을 넘어서자 정원의 마당이 제 마음에 훌쩍 다가와 들어왔습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의 소리, 작고 큰 돌을 섞어 만든 수로로 이어지는 자그마한 연못, 그 뒤에서 연못을 바라보는 마루가 있는 자그마한 초가집, 색감이 부족한 이 풍경에 색감을 더하는 분홍빛 배롱나무 꽃, 여름임을 알리는 조그마한 초록 풀들까지 제가 그리던 아담한 한국 정원의 이상 그 자체였습니다. 늘 고민하고 고민하던 그 이미지가 제 눈앞에 펼쳐지자 어찌 해야 할 줄을 모르겠더군요. 한참은 문틀에 기대어 감상하던 저는 이제 그 풍경을 그린 산수화 안의 한 사람이 되어 정원을 더욱 즐기고자 했습니다. 초가집의 마루에 걸터앉아 풍경을 제 눈과 마음 안에 받아들이고 새기고 있는 와중에 다산의 시가 사무치더군요.


유상곡수(流觴曲水)


담장 뚫고 여섯 굽이 흐르는 물이

고개 돌려 담장 밖을 다시 나간다

어쩌다 온 두세 분 손님이 있어

편히 앉아 술잔을 함께 띄우네


다산의 시 말마따나 흐르는 물을 보며 막걸리 한 잔에 파전을 곁들어 먹고 싶을 때쯤 초가집 마루에서 오른쪽 언덕 위에 보이는 집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관리하는 분이 사시고 있는 듯했습니다. 건축물이란 것은 사람이 살고 관리함으로써 그 생명이 더해진다는 유홍준 교수님의 글귀가 떠오르더군요. 아마 저기에 살며 관리하는 사람이 있기에 이 정원이 이리도 아름다운 모습을 말끔하게 보존할 수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부터 정원에서 사람이 사는 목적으로 설계된 곳으로 보이는 초가집의 이름은 취미선방으로 ‘산허리에 위치한 조용한 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정원을 조영한 이담로의 취향을 알 수 있는 정갈하고 알맞은 초가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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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초가집의 옆으로는 잘 꾸며진 화단이 있었고 그 사이의 돌계단을 오르자 너른 흙마당과 그를 바라보는 ‘백운유거白雲幽居’라고 쓰인 기와집이 보였습니다. 아마 별서에 놀러온 손님을 묵게 하거나 책을 읽던 곳인 듯했습니다. 흰 구름이 가득한 아래 숨어 사는 곳이라는 현판의 의미가 이곳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모두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기와집 마루에서 정원 전체를 조명하다 초가집 옆의 연못을 자세히 살피러 향했습니다. 굽이치는 물길이 두 개의 연못을 잇고 있었는데 초가집 옆의 연못이 더 컸으며 아름다운 연꽃이 있어 화사함을 더하더군요. 연못의 옆으로는 언덕으로 이어지는 문이 보였습니다.


‘용 비늘처럼 생긴 붉은 소나무가 있는 언덕’, 이라는 뜻을 가진 ‘정유강貞蕤岡’으로 향하는 문이었습니다. 언덕을 오르자 아니나 다를까 초가 정자 하나가 자리하고 있더군요. 넓지 않은 언덕과 잘 어울리는 소박함이 참 좋았습니다. 정자에서는 원래 옥판봉의 아름다움 모습이 넓게 펼쳐져야 했으나 구름이 모두 가려 볼 수 없었다는 점이 유일한 아쉬운 점이었겠습니다. 나중에 강진을 다시 찾게 된다면 맑은 날에 와서 그 장쾌한 모습을 눈에 담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언덕을 내려왔습니다.


원래는 조용했던 정원이 전문적으로 촬영을 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떠나야할 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초가집 뒤에 자그마하게 나있는 후문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후문을 빠져나오자 오설록 강진 다원으로 향하는 야트막한 언덕길의 양쪽으로 커다란 대나무 숲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큰 대나무가 가득한 동산이라는 뜻인 ‘운당원篔簹園’이라 칭하고 있었습니다. 길게 쭉쭉 뻗은 대나무의 곧음에서 느껴지는 강한 기운이 저에게도 여행을 잘 마무리하라는 용기를 불어넣는 듯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긴 대나무 사이를 지나자 한 무덤이 나타났습니다. 이 정원의 조영자인 이담로 부부의 합장묘였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준 데에 대한 감사 인사를 하며 백운동원림의 여운을 마무리하고 대나무가 가득한 언덕의 끝으로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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