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기행-백운동원림~성전터미널
환상적인 백운동원림을 떠나 진흙으로 가득한 오르막을 조금 오르면 바로 오설록 강진다원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녹차로 가득한 그 모습이 생경한 풍경이고 썩 보기는 좋았으나 백운동원림 전에 보았던 녹차 밭만큼의 감동은 아니었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옥판봉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준다 하니 다음에는 맑은 날을 잡아 가보아야겠습니다. 그 후 오설록 강진다원을 보고 다시 내려오는 길은 여전히 진흙이었고 미끄러웠습니다. 진흙으로 된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오던 도중 계속된 비와 걸음의 누적으로 인한 피로 때문인지 여행 내내 넘어질 줄을 몰랐던 저는 균형을 잃고 진흙에 몸을 뉘이고 말았습니다. 바로 일어났지만 이미 하반신은 진흙이 가득 묻어 있더군요. 시간은 아직 11시가 채 되기 전. 오늘 남은 하루가 심히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현세를 떠나려는 정신을 되돌렸습니다. 사실 진흙 같은 거 몇 번 묻는다고 여행을 온 저의 마음을 가라앉힐 수는 없습니다만 이 상태로 버스를 타고 강진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신을 부여잡고 생각해보니 백운동원림 바깥에 공중화장실이 있던 것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터덜터덜 걸어와 아무 생각 없이 화장실 수돗가에 가방의 방수커버와 제 하체를 씻기 시작했습니다. 다 털어내지는 못했어도 엉덩이만큼은 털어내 버스는 탈 수 있겠다고 생각할 즈음 화장실 바닥을 보는데 이상한 점이 느껴지더군요. 화장실 바닥의 경사가 이상하여 흙과 물이 배수구로 빠져나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화장실 바닥의 상황을 보니 그냥 나갈 수는 없겠더군요. 빗자루를 들고 한 10분쯤 고인 흙탕물을 다 쓸어내고 나서야 길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다시 걸음도 가볍게 길을 떠나는데 생각을 해보니 이 근처에 시내버스가 언제 오는지를 알 수가 없겠더군요. 두세 시간에 한 대 오는 버스를 마냥 기다리자니 제 참을성이 이를 허락하지 못했습니다. 무위사로 오는 길에 보았던 중간 기착지인 성전터미널이 떠올랐습니다. 지도로 찾아보니 6km정도가 걸렸습니다. 길어야 1시간 30분. 걸어 갈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바로 버스정거장으로 가려던 발길을 돌려 성전면으로 가는 마을길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가장 먼저 만난 마을은 안운마을 이었습니다. 산자락을 낀 조용한 시골마을이라는 인상이 강했지만, 길 곳곳에 진흙이 자리하고 있어 몇 번이나 더 미끄러질 뻔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와중에 몇몇 집에서 사나운 개가 짖는 소리는 제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더군요. 풀려나와서 저를 무는 것은 아닌지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그 이후로 마을과 마을 간의 경계를 언제 넘었는지도 모르게 월하마을에 들어왔습니다. 달이 나오는 산 아래에 달 아래 마을이라니 이름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산과 그 아래 있는 마을에는 달이 명칭으로 많이 붙는다는 것도 월하마을의 이름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예로 지리산 터미널이 있는 곳은 ‘인월’로 달을 끌어당긴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요. 높은 곳에 달이 걸리는 것이 아닌 해가 걸린다고 말할 법도 한데 굳이 달을 가지고 마을 이름을 지은 것을 보면 옛사람들도 해보다는 달을 보며 훨씬 감상에 젖었을 거라 추측해봅니다.
월하마을의 인상은 새마을 운동의 잔재로 슬레이트 지붕이 가득한 흔히 생각하는 시골마을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돌과 기와가 조화를 잘 이루는 새로 지은 집들이 다수 있었고 아담하게 잘 꾸며진 정원들이 눈에 띄었으며 카페도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카페라고 해봤자 조그마한 쉼터 같은 느낌이 강하긴 했습니다. 물론 월출산의 자락과 어우러진 옥수수 밭의 정경은 이곳에 이러한 집을 짓고 살고 싶게 만드는 수준이었습니다. 옥수수 밭을 지나자 이제는 신식 집은 잘 없고 슬레이트로 된 지붕들이 보이고 그 뒤로 마을회관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을회관 앞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이 굳건히 서있더군요. 우리나라 시골의 오래된 곳을 가면 장승과 같은 느낌으로 액운을 물리쳐주고 마을의 경계를 표시하는 정자나무로 대부분 느티나무를 사용합니다. 즉 마을을 대표하는 이러한 정자나무가 크고 오래되었다는 것은 마을의 역사도 오래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저는 인간이 기록하지 못한 세월의 깊음을 이 느티나무들을 통해 한참을 음미하였습니다.
마을을 여전히 굳건하게 지키는 느티나무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한 후 발걸음을 돌려 월하마을을 떠나려는데 갑자기 차 한 대가 제 앞에 멈추어 섰습니다. 회색의 SUV로 보이는 그 차는 제 옆을 지나갈 줄만 알았는데 갑자기 멈춘 상태 그대로 창문을 열었습니다. 타서 어두운 구릿빛 색깔을 띠는 피부와 깊게 패인 주름을 가지고 까랑까랑한 목소리를 내시는 중년의 남자 분이 운전석에 보였습니다. 그러더니 저에게 어딜 가냐고 물으시더군요. 성전면 터미널까지 간다니까 거기까지는 안 가고 그 중간인 군부대까지는 가니까 태워주시겠다고 제가 묻지도 않았는데 흔쾌히 말하셨습니다. 여전히 흙이 가득한 제 신발과 발목이 보였지만, 괜찮다고 빨리 차에 타라고 하셨습니다.
예, 저는 히치하이킹을 당해버린 것입니다. 막 차에 타서 얼떨떨한데 어른들이 묻는 보편적인 질문이 바로 하나 날아왔습니다. “어디서 왔니?”, 경기도 오산이라고 말했더니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는 학교나 전공과 같은 소개팅에서 물어볼 법한 질문들을 던지시더군요. 뭐 이런 건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으레 하는 것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답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여행에 관해서 물으셨습니다. 저는 무위사와 백운동원림을 갔다 왔다고 말했습니다. 이 다음의 말이 저를 매우 당황시켰는데 무위사의 고즈넉함이 많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미 무위사의 고즈넉함에 크게 감탄하고 왔는데 그것이 어느 정도의 중창 불사로 인해 망가졌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전의 무위사는 어땠을지 가늠조차 안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본 적이 있냐고 하시면서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여행에 있어 중요한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가 여행을 가기 전에 지식을 쌓는 것이라 말하셨습니다. 저는 지극히 공감하는 말이었습니다. 대학생 이후로 저는 단 한 순간도 여행을 가기 전에 공부를 하지 않은 적이 없었기에 그리고 그 공부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다양해지는지를 경험했기에 이 말에 동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첫 번째보다 더 중요하다는 두 번째는 ‘같이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혼자 하는 여행보다는 좋은 사람과 같이하는 여행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자 논산-남원-해남-강진을 거쳐 온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더군요. 저는 새로운 문화유산을 보고 자연의 풍경을 보는 일이 너무 즐거웠지만, 누가 비바람을 잔뜩 맞고 하루 종일 걸으면서 이런 것을 보는 것을 같이 해줄 수 있을까요. 제 주변엔 좋은 사람이 많지만, 이런 고행에 가까운 여행을 즐길 것 같은 사람은 없어보였습니다.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제가 뿌리쳤겠지요. 문화유산과 자연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받아들이고 새기는 데에 다른 사람을 신경 쓰며 여행할 여력은 없을 테니까요.
그런 것을 생각하며 속으로 피식 웃다가 문득 ‘무엇을’을 위한 여행이 아닌 제 인생에 ‘누구와’가 목적이었던 여행이 있었던지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조차도 무엇을 보는지에 초점을 두었었으니까요. 생각해보니 딱 한 번 있었습니다. 전 애인과 함께한 여행이었지요. ‘여행에서 먹는 것은 사치다.’를 외치며 보는 것에 모든 것을 쏟던 저는 전주와 공주라는 역사 유적지 근처의 도시를 가면서도 문화재를 보는 것보다 그 사람과 함께 있고 그 사람이 웃는 것을 더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련한 기억에 잠시 가슴이 시큰하였지만, 이내 속에서 털어내고 ‘누구와’를 목적으로 하는 여행도 매우 좋았음을 깨달으며 중년 남자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대화가 끝나고 월평 로터리에서 저는 낯설지만 사람의 정을 느낄 수 있었던 인생 첫 히치하이킹을 끝냈습니다. 어느새 6km거리가 1km로 줄어있더군요. 그날도 감사인사를 수없이 남발했지만, 지금에 와서도 그 분께 감사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네요. 큰 차도를 건너 연꽃 밭을 끼고 걸으니 성전초등학교나 우체국과 같은 공공기관이 있는 성전면의 읍내가 보였고 그곳에서 어렵지 않게 성전터미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진흙 밭에서 뒹굴고 그걸 털고 히치하이킹을 당한 후 성전터미널에 도착하기까지 대략 1시간 30분 저는 이 짧은 시간에 긴 인생 곡선의 단면을 본 느낌이었습니다.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있기 마련이고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있기 마련이니 앞으로의 여행도 순간순간을 즐기되 순간순간을 조심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상황을 내가 모두 제어할 수는 없으니 편하게 부담 없이 계속 이어진 길을 걸어 나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