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기행-성전터미널~강진터미널~다산초당
성전터미널은 말이 터미널이지 편의점에서 표를 팔고 의자를 몇 개 놔둔 정도였습니다. 그런 의자만 있는 간이 터미널에도 지친 저는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성전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12시 무렵. 강진 가는 버스는 12시 45분에 있다고 시간표에 적혀 있었습니다. 얼마 만에 보는 정확한 시간표인지! 잠시 감격에 빠져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긴장이 풀린 탓인지 몸이 매우 나른해지고 지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단 1시간여 만에 지옥과 천국을 왔다 갔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득 방금 차 안에서 한 이야기가 떠올라 당장 제가 겪은 여행 이야기를 무난하게 나눌 수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친구는 졸린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며 전화의 이유를 묻고 여행은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여행 중간에서 심심해서 걸었다고 하고 히치하이킹 당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걸 듣더니 자기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제가 부럽다고 하기에 얼마 전에 소개팅 잘된 얘기를 하며 제 염장을 질렀습니다. 그런 일상 얘기를 하다 보니 사람과 이렇게 말이 이어지는 대화를 십 분 이상 한 것이 얼마 오랜만인지 깨닫게 되더군요. 사실 단 이틀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체감 상으로는 한 일 년은 된 것 같았습니다. 이런저런 것들에 묻어두고 있던 홀로 여행의 외로움을 저도 모르게 느끼고 있었던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외로움을 살짝 느끼자 갑자기 걸은 전화에도 신나게 이야기를 하고 들어주는 친구가 참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버스를 탈 시각이 되어 전화를 끊고 버스를 탄지 10분 정도 지나자 강진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엉덩이 붙인지 몇 분이나 됐다고. 지친 다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버스 시간표를 살펴보는데 오후 2시 10분에 다산초당 가는 버스가 보였습니다. 다산은 강진에 유배를 왔지만, 18년 동안 한 곳에서 머무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총 4곳에서 머물렀는데 그 중 가장 오래 머물렀고 마지막에 머무른 곳이 다산초당입니다. 특히 18년의 유배 생활 중 집필했다는 수많은 유명한 저서가 다산초당에서 대부분 집필되었죠. 대표적인 예로 <목민심서>를 들 수 있겠습니다. 실학을 통해 과학과 인문에 모두 뛰어났던 조선시대 대표적인 융합형 인재의 삶이 짙게 배인 곳을 어찌 가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원래는 무위사로 끝났을 일정에 바로 다산초당을 추가하여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다산초당을 가기 전에 앞서 점심을 먹고자 밖으로 나왔는데 비가 다시 오기 시작했습니다. 우산을 찾는데 우산이 없더군요. 버스에 놓고 내렸음을 깨닫고 아차 싶었습니다. 바로 휴대폰으로 다이소를 찾는데 역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5000원을 주고 우산을 사고 바로 옆에 있는 롯데리아로 들어가 햄버거 세트로 요기를 한 뒤 벼락공부를 하였습니다. 갈 생각이 없었던 다산 초당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자하는 저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시간이 되어 터미널로 돌아와 다산초당 행 버스에 탑승했습니다. 버스에는 저를 제외하고는 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었습니다. 농촌의 젊은 인구가 적다는 것이 실감이 되더군요. 혹시라도 버스가 다산초당을 지나칠까 기사님께 다산초당을 간다고 말을 하는데 주변에서 어르신들이 웅성대시더군요. 큰 가방을 맨 학생 여행객이 다산초당을 혼자 간다고 한 게 매우 신기하셨나 봅니다. 버스는 이내 출발했고 강진 군내를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내내 논을 끼고 달렸는데 논 뒤로 강과 같은 넓은 폭의 물줄기와 야산이 보였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자연스러운 정원인 논과 뒤의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져 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참으로 새롭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렇게 정신을 놓고 풍경을 바라보다보니 기사님이 다산초당에 도착했다고 내리라고 말하셨습니다. 급히 내리는데 다산초당에서는 저밖에 내리지 않았습니다. 다시 덩그러니 길 위에 놓인 저는 가방을 고쳐 매고 다산 초당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