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하지만 놓쳐서는 안 될 아름다운 길

사찰기행-해남 대흥사 진입로

by baekja

소나기가 한바탕 내린 후라 그런지 날씨는 맑았습니다.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빠져나와 내렸던 곳에서 대흥사 가는 버스를 기다리기로 마음먹고 잠시 짐을 의자에 내려두었는데 정말 꿀맛 같은 휴식이었습니다. 버스가 대략 1시간에 한 대 정도 있는지라 30분을 기다려야 했는데 그 시간에 취하는 휴식은 정말 황홀할 지경이었습니다. 버스정류장에 적힌 시간은 11시 35분이었습니다. 그래서 11시 30분에 일어나 버스를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 버스가 알아서 멈출 텐데 뭐하러 일어서서 기다리냐고요? 그럴리가요. 시골 버스는 멈추란 신호를 주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 버립니다. 그래도 대흥사는 1시간에 한 대이니 망정이지 나중에 말할 무위사나 보림사는 버스가 하루에 다섯 대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서서 기다리는데 11시 40분이 되도록 버스가 안 오더군요. 버스 시간이 잘못됐나 하여 미리 터미널에서 찍어둔 버스 시간표를 찾아보는데 버스 시간표가 10분 뒤로 밀려있더군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한 번 내쉬고 조금 더 기다리니 버스가 섰습니다.


탄 버스엔 사람은 별로 없었기에 아무 자리나 골라 앉고 햇빛을 피해 숨을 고르고 있는데 버스의 속도가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2차선 도로를 계속 달리는데 속도가 줄지를 않더군요. 가로수가 이어진 2차선 도로를 10분 남짓 달리자 어느새 대흥사에 도착했습니다. 아니, 대흥사 관광시설지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대흥사가 위치한 두륜산은 도립공원이라 그런지 여러 식당이 계곡을 끼고 자리하고 있더군요. 제 숙소 체크인 시간은 2시였는데 아직 시간이 남아서 벤치에 앉아 책을 읽으며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 부는 선선한 바람은 8월의 한때임을 잠깐 잊게 해주었습니다.


어느덧 2시가 되고 모텔로 향하였습니다. 모텔 이름은 힐링 모텔. 외관은 낡았지만, 리모델링한지 얼마 안 되어 내부가 참 깨끗했습니다. 전라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쓰시는 주인분이 반갑고 친절하게 맞아주셔서 참 좋았습니다. 잠시 가족끼리 식사를 하러 나간다고 하여 저 또한 바로 대흥사로 향할 것이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주인분께서 좋은 마음에 돈 안 내고 대흥사 가는 법을 알려주셨지만,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선 돈 내고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저는 그저 즐겁게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매표소는 숙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표를 사고 들어가는데 아스팔트에 일주문 식으로 지어둔 거대한 문이 저를 약간 불쾌하게 하였습니다. 저것이 진짜 일주문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며 현판을 보는데 두륜산 대둔사라 적혀 있더군요. 가장 최근에 만든 문일 저 문에 왜 두륜산 대둔사라 적혀 있는지 알려면 두륜산 대흥사의 이름 유래를 알아야 합니다. 두륜산의 원래 이름은 국토 남단에서 갑자기 솟은 형상을 본 따 붙인 ‘한듬’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한자어를 섞어 ‘대듬’이 되었고 여기에 더 나아가 아예 대둔산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한듬절’이라고 이름 붙여졌던 이 절은 산의 이름을 그대로 따라가 ‘대듬절’에서 ‘대둔사’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런 중에 한 유식한 자가 나타나 중국 곤륜산 줄기에서 백두산을 거친 태백산맥 줄기의 끝이 여기에 있다며 곤륜산과 백두산에서 한 글자씩 따서 산 이름을 두륜산으로 붙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천이 있으면서 대둔사 또한 대흥사로 이름이 바뀌었으니 그 이름에서 ‘한듬’이라는 말의 어원은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어원을 생각하며 문 아래를 지나니 옆쪽에 조그마한 산책로가 있더군요. 도보 여행자는 이곳으로 가라는 말이 있어 산책로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옆의 자그마한 계곡을 따라 수풀이 우거진 이 길은 참으로 저의 맘을 편안하게 해주더군요. 한 오 분쯤 걷자 갈림길이 나와서 잠시 멈춰섰는데 뒤에서 동네 주민 같은 할아버지가 보여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물었습니다. 둘 중 어디로 가든 대흥사로 가는 길이라고 친절히 알려주셨습니다. 저는 오른쪽 길을 택하여 갔습니다. 얼마 후 나타난 지도를 보자 진입로는 대흥사 주차장까지 가는데 대략 1.5km의 야트막한 산길이었습니다. 생각보다 긴 느낌이라고 생각하며 얼마간 걸으니 왼쪽 길과 합쳐지는 부분이 나오더군요. 계곡의 물줄기가 꽤 커서 물놀이하기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많은 사람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긴 산책로를 걷는 동안 중간중간 곧게 뻗어 모여 있는 편백나무 숲의 그늘 덕에 시원하였으나 매미 울음소리가 제 귀에서 떠나지 않았기에 지금이 한여름임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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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을 벗어나고 너른 맑은 하늘이 등장하고 그 아래 산에 감싸진 평지가 등장했습니다. 차가 가득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주차장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옆에 웬 전봇대에 확성기가 잔뜩 달린 것이 눈에 띄어 살펴보니 산사태 등의 재난에 대비한 경보시스템이더군요. 생각보다 산세가 험하겠다는 생각이 얼핏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주차장을 조금 지나니 옆의 표지판에 아도화상이 대흥사를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술사적으로 봤을 때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합니다. 대흥사의 가장 오래된 유물들은 대부분 나말 여초의 것으로 신라 진흥왕 대의 아도화상이 이 절을 창건했다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미 대흥사 13대 종사 중 하나인 초의선사가 실학이 융성할 때에 이것이 틀림을 밝힌 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의 역사를 높이기 위해 확실하지 않은 전의 기록에만 의존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습니다.


주차장을 넘어 널찍한 진입로로 들어서는데 옆에 광주민주화운동 사적 표지판이 있어 놀랐습니다. 광주에서 간신히 벗어난 몇몇 사람들이 해남으로 흘러들어왔고 이 사람들은 대흥사와 그 옆의 유선여관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해남 사람들과 광주를 지원할 방법을 고민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광주만의 일이 아니라 전남 전체의 일이었음을 생각하며 진입로로 들어섰습니다. 계곡이 보이는 초입의 오른쪽에 다 낡은 표지판이 있어 읽어보았는데 탱화장이라는 무형문화재 관련 표지판이 써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탱화는 단순하게 말하면 불교의 신앙 그림입니다. 이 탱화를 그리는 탱화장의 전통이 2005년에 기능보유자인 고재석의 사망으로 소실되었다는 것을 쓴 표지판이었는데 하나의 중요한 전통이자 문화재가 사라진 것 같아 가슴이 아팠습니다.


널찍한 진입로는 방금의 좁은 산책로처럼 아늑한 느낌은 없었지만, 주변의 수많은 나무와 오른쪽으로 흐르는 계곡물이 어우러져 괜찮은 진입로를 가진 절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단풍이 든 가을이나 왼쪽의 동백나무들이 빨갛게 물들이는 겨울이면 그 아름다움이 배가 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옆에 새로 지은 암자가 나타났는데 실상사의 백장암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현대식에 절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깨버리는 암자인지라 바로 눈을 돌리고 계속 대흥사로 향했습니다. 얼마 후에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은 기와집이 나타나 제 시선을 끌었는데 표지판을 살펴보니 이것이 유선여관이라 하더군요. 원래 이 주변이 전부 여관으로 들어차 있었는데 유선여관을 제외하고는 다 관광단지로 쫓겨났다고 하더군요. 대흥사의 근현대사와 함께 늙어온 느낌이 사무쳐 사뭇 감동적인 여관이었습니다. 다음에는 여기서 꼭 묵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 <서편제>의 촬영지이기도 했다고 하니 <서편제>를 인상 깊게 보셨던 분들은 특히 묵어보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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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을 지나자마자 피안교가 등장하였습니다. ‘피안’이란 ‘피하는 언덕’이라는 뜻으로 사바세계의 고통을 넘어 깨달음의 경지에 있는 언덕을 뜻하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깨달음을 수행하는 절로 넘어감을 말하는 것이지요. 계곡을 넘어가자 구불구불한 경사길이 보였고 그 경사길을 넘어가자 대흥사의 일주문이 드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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