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락을 따라 계곡은 매섭게 굽이치고

사찰기행-실상사~백장암~인월 터미널

by baekja

실상사를 나오니 비가 매섭게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가야 할 거리는 차가 쌩쌩 다니는 2차선 산길로 8km. 그때부터 매우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드레일에 딱 붙어서 걷다가 차가 오면 멈추는 일을 반복했죠. 얼마 지나지 않아 산내면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버스정류장을 보니 거의 30분에 한 번씩 인월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지나가더군요. 고속버스기는 했지만, 버스 대수 자체가 많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당장 인월 터미널만 오면 실상사를 무난하게 갈 수 있었단 이야기가 되니까요. 남원에서 인월까지 가는 버스는 꽤 있었기에 어제 그렇게 걱정을 했던 저의 모습이 지금에 와서는 안쓰러워졌습니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던 것이 직접 오자마자 해결되는 게 무언가 허무했습니다. 버스정류장은 누군가가 사유지를 기부하여 조성된 것으로 그 감사함을 표시하는 비석이 정류장 옆에 있었습니다. 지리산의 모습을 귀엽게 표현해놓았더군요. 바로 위에는 6.25 참전 용사를 기리는 충혼비가 있었습니다. 지리산 또한 하나의 격전지였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숙연해졌습니다.


길을 좀 더 가다 보니 산내중학교가 보였습니다. 올라가는 길의 벽화가 아이들의 순수함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오히려 중학생들은 유치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코로나 시대인지라 대부분 중학교 정문을 닫아놓는데 이곳은 닫아놓지 않아 세상의 풍파에서 비껴간 산속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산내중학교를 나와 길을 가는데 오른쪽에 뒷산을 배경으로 산내중학교가 멋지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묵직하게 내려온 구름과 함께 그 풍광이 볼만하더군요.


얼마 지나지 않아 인월까지 4.2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길어야 1시간 반이면 충분히 도착하겠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마음 따라 비도 그치는 듯, 비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또 하나의 마을을 지나고 어느 관광 모텔 옆에 문화재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었습니다.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퇴수정이라는 정자로 보였습니다. 나무로 가려지고 가는 이 없어 거미줄로 막힌 길을 뚫고 50m 정도 내려가니 계곡 옆에 건실하게 자리 잡은 정자가 제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나무와 구름에 가려져 시야가 마냥 좋다는 말은 할 수 없었지만, 너른 바위와 세차게 흐르는 계곡물이 잘 어울리는 풍경이 녹음과 어우러진 모습은 썩 괜찮았습니다. 맑았다면 뒤로는 지리산자락이 펼쳐졌을 것이라 상상하니 맑은 날 보면 더 좋을 것 같았습니다. 조선 후기에 공조참판을 지낸 박치기가 은퇴하며 지은 정자로 이름에는 물러나 산수와 함께 살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크기는 크지 않지만, 팔작지붕과 2층 누각으로 구성된 이 정자는 화려함과 함께 소담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옆에는 후손들이 박치기를 기리기 위해 관선재라는 사당을 세워 뒀습니다. 지리산 맑은 물소리가 들리는 멋진 계곡의 한 변에 정자를 세워 준 것이 고마워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세게 흘러나가는 계곡물에 잠시나마 근심을 씻고 다시 차도로 들어섰습니다. 중간 목적지인 백장암은 보일 생각이 없더군요. 그래도 비가 잠시 그쳐 구름으로 된 옷이 살며시 들쳐져 지리산의 속살이 드러나면 그 사이를 흐르는 힘찬 계곡과 어우러져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폭포 옆으로 지리산 산내 우체국이 크게 들어서 있었습니다. 고작 면의 우체국이 논산시의 우체국과 크기가 비슷하길래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안에 교육원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공무원들이 휴가와서 묵을 수 있는 곳이겠지요. 우체국을 지나쳐 가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짙게 깔린 구름 사이로 조그마한 틈이 생겼고 그 사이로 아름다운 천왕봉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장관이었습니다.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맑은 날의 지리산은 어떤 모습일지 더욱 기대하게 하는 웅장한 장면이었습니다.


더 걸어가니 계곡물이 넓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넓어진 계곡은 늘어난 물로 인해 엄청난 양의 급류가 흐르고 있었고 그 소리가 매우 커서 차 소리와 구분이 쉽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급류가 있어서인지 소수력 발전소가 있었습니다. 산에서 수력발전소를 볼 줄은 몰라서 매우 신기했습니다. 조금 더 걸어가니 ‘곰조심’이라고 적혀있는 표지판이 있어 급류에 휩쓸리는 걱정에 곰이랑 마주치는 걱정까지 늘어났습니다. 거기에 왼쪽 사면에서는 물까지 새고 있어 산사태에 대한 걱정까지 더해졌습니다. 아름다운 지리산의 풍광과 이런저런 걱정이 뒤섞여 걷다 보니 어느새 백장암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왔습니다.


천왕봉로 2차선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1차선 포장도로로 들어가는데 내내 오르막길이었습니다. 실상사 백장암까지는 오르막길로 대략 1km. 아직은 비가 그리 많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오르막길이란 것 자체가 부담은 되었습니다. 가끔 오르막길을 올라가다 뒤를 돌아보면 세상을 가리는 거대한 병풍처럼 펼쳐진 산과 그 병풍에 붓으로 그려낸 듯한 구름이 늘 저를 감탄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언제까지 오르는지도 모른 채 계속 오르다 보니 아주 짧은 내리막길이 잠시 나왔고 그 내리막길의 끝에는 오르막길 위로 암자의 모습이 조금 보였습니다.


생각했던 조그만 암자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크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대웅전이 보였고 대웅전 앞의 3층 석탑과 석등은 가지런히 놓여서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또한, 석탑 앞에 일자로 놓여 있는 승탑들은 이곳에서 수행한 승려들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고요한 중에 낮게 깔리는 염불 소리와 목탁 소리가 남원에서 가장 높은 암자인 이곳에 힘들게 도착한 저를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실상사에서 백장암까지 오는 내내 불안했던 저에게 이곳의 분위기는 가뭄 중 만난 단비와도 같아서 오랜만에 마음을 놓고 주변 광경을 편안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구름으로 주변 풍경을 가려져 있었지만, 원래 제대로 보였어야 할 앞은 아마 깊고 깊은 지리산의 몇 겹 병풍 같은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졸졸 흐르는 계곡 소리가 들려 이곳 자연의 정취를 더해주었습니다. 또한, 이런 위대한 자연에 소담하게 자리 잡은 백장암의 3층 석탑과 석등 또한 명작이어서 제 눈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3층 석탑은 국보 제1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비례미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각각의 탑신면에 새겨진 부조들이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뒤의 석등은 장식이 화려하지는 않아도 단아한 맛이 있어 화려한 장식을 가진 앞의 석탑과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책으로만 보던 아름다운 백장암 3층 석탑을 고생 끝에 눈으로 직접 볼 때의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시각, 청각, 그리고 분위기의 완벽한 조화를 가진 이 작은 암자를 고생 끝에 올라오지 않았으면 매우 후회했을 것이라 생각하며 올라왔던 길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절반쯤 내려가니 이제 다시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산사태 걱정을 하며 내려왔는데 정작 내려오니 차에 치이진 않을까하는 걱정이 더 커졌습니다. 비로 인해 시야가 좁아진 데다 산을 따라 굽이굽이 도는 길이기 때문에 불안만 늘어났고 멈추는 시간이 늘어나 비에 계속 젖는데 걷는 속도는 더욱 더뎌졌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한 개가 사람조차 무서워 다니지 못하는 2차선 도로에서 한 개가 비에 젖은 채로 서성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개는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에서 계속 서성이고 있었고 몇 번이나 차에 치일 뻔했습니다. 그 개를 피하느라 사고가 몇 번이나 날 뻔했죠.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그 개는 사라졌고 다시는 보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개는 잠시 주유소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고 걸어가는 저를 보고는 따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손을 많이 탔던 개 같았습니다. 각자 따로 걷기는 했지만, 다시 몇 번이나 치일 뻔한 개를 보면서 저는 도로 옆쪽으로 개가 오도록 계속 유도했고 그 과정에서 차의 경적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 또한 그 개를 책임질 수 있는 상황에 있진 않았기에 개가 저를 따라오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렇게 차를 몇 번이나 피했을까요. 차의 무서움을 몰랐던 그 개는 잠시 제가 주의하지 못한 사이에 차에 치여 죽었습니다. 순간 제 뒤에서 ‘쾅’하는 소리가 제 심장을 내려앉게 하더군요. 차가운 아스팔트에 그대로 둘 수 없어 맨손으로 개를 옆에 묻고 맨손으로 흙을 퍼서 묻어주었습니다. 인간에 손에 버려진 채 인간의 세상의 규칙을 모르고 놓여 있던 그 개는 이미 초점을 잃은 후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무엇을 본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걸어서 인월 터미널까지 왔습니다. 비는 많이 왔지만, 그것을 신경 쓸 기분이 전혀 아니었지요.


터미널에서 남원 가는 표를 끊고 흙으로 엉망진창이 된 우의 소매와 손을 닦고 핸드폰을 닦았습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핸드폰에 물이 많이 묻어 있더군요. 하지만, 당시에는 별생각을 못하고 그저 슬픔과 배고픔에 지쳐 편의점에 들어가 컵라면을 먹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도 비가 왔습니다. 남원 터미널에 도착해서도 내내 비가 왔죠. 오후 두 시쯤 비를 잔뜩 맞고 돌아온 숙소에서 저는 씻자마자 잠을 청했습니다. 감정이 소모되고 체력적 피로도가 쌓인 상태라 잠을 이길 방법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잠시 재밌는 일만 가득할 줄 알았던 여행의 이면인 고단함에 잠시 쉼표를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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