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기행-남원~집으로
‘Life is a journey.’ 요즘 어디선가 자주 듣는 말입니다. 인생이 여행과 같다는 말인데 사실 여행이 축소한 인생 같다 해야 하지 않냐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인생이나 여행이나 계획이 항상 맞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기쁨이,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슬픔이 나를 덮치곤 합니다.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벌어질 때는 요동치는 감정을 넘어서 자신이 목표했던 바를 이루지 못하기도 합니다. 실상사를 갔다 온 제가 딱 그랬습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5시쯤 되었는데 여전히 날은 밝았습니다. 남원의 추어탕이 먹고 싶어 검색하려고 핸드폰을 켰는데 액정이 맛이 가 있었습니다. 글자나 이미지 모두 확인이 가능한 수준이긴 했지만, 여기저기 새겨지는 이상한 색깔의 선들이 내 신경을 거슬렀다. 아무래도 터미널까지 세찬 비를 맞으며 오는 동안 핸드폰이 고장 난 모양이었ㅅ브니다. 화면은 좀 맛이 가도 나머지 기능은 멀쩡했기에 ‘별일 없겠지.’라고 생각하며 추어탕 골목의 위치를 찾은 후 숙소를 떠났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가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워 핸드폰 카메라를 켰습니다. 그리고 카메라는 다시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심각해지기 시작했고 추어탕이고 뭐고 핸드폰을 고치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남원은 시인지라 꽤 많은 휴대폰 수리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휴대폰 수리점에 들리자 받은 판정은 침수. 비를 너무 맞아 물이 휴대폰 안에 들어갔다는 얘기였습니다. 당장 이곳에서 고칠 수는 없다는 대리점 주인의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답사가 주목적인 제 여행에서 사진이 없는 것은 더는 여행을 이행할 목적이 사라지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에서 카메라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 저는 바로 근처 하이마트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게 웬걸. 매장에는 디지털카메라 하나 없었습니다. 이제는 시대의 풍파를 직격으로 맞아 휴대폰에 밀려버린 디지털카메라의 운명을 슬퍼하기 전에 여행이 끝나버리게 생긴 저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걸으며 생각해보니 삼성 대리점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대도시는 광주. 광주 터미널 근처의 삼성 대리점에서 내일 진단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한 뒤 남원의 유명 빵집인 명문 제과에서 빵을 사고 추어탕을 먹으러 갔습니다. 추어탕 골목 초입에 있는 현식당은 그냥 유명 국밥집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구수하고 끈적하며 칼칼한 추어탕 국물이 괜찮았습니다. 동네 분들의 포장 주문이 계속 들어와서 이곳이 동네 맛집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ㅅ브니다.
군대를 다녀온 이후로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푸는 습관이 생겨서인지 가는 길에 햄버거 세트를 사 왔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먹으며 티비를 보기 시작하니 괜찮아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음 날 여행을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아 옷들을 빨래하고 드라이기로 말리고 있었다. 이 일 저 일 하다 보니 당장 휴대폰이 고장 난 현실을 잊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휴대폰 카메라는 여전히 돌아올 생각을 안 했다. 새벽 내내 비가 오던 남원의 비는 아침 즈음엔 그쳐 광주로 편하게 갈 수 있었다. 광주로 가는 길에 순창을 지났는데 순창에선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어 아직 장마가 끝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도착한 광주의 날씨는 맑았고 좀 더웠습니다. 터미널에서 걸어 도착한 대리점에서 내 핸드폰은 다시 침수 판정을 받았고 건조해도 기능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며칠이 걸릴지 모를 수리를 광주에서 기다리며 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광주 터미널에서 오산 가는 표를 끊었습니다. 광주에서 점심이나 먹을 요량으로 터미널 안의 식당에서 뼈해장국을 시켜 먹었는데 가성비가 말도 안 될 정도로 좋았습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니 조금 기분이 나아졌고 휴대폰을 고치면 다시 내려와 남은 일정을 수행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뒤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