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산선문의 처음, 한국 선종의 본산

사찰기행-남원 실상사

by baekja


광한루원에서 숙소까지 오는 길은 비가 매우 쏟아져 우산을 쓰고 있음에도 옷이 쫄딱 젖어버렸지만, 제 걱정은 그에 있지 않았습니다. 당장 내일 실상사를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었는데요. 네이버에는 농어촌 버스의 노선도만 있을 뿐 시간표는 하나도 없고 노선도에는 실상사 정류장은 적혀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네이버를 뒤지다가 우연히 어느 한 사이트에 남원시 시내버스가 정리된 것을 확인했는데 사이트 이름이 나무위키였습니다. 백일리 가는 버스가 실상사를 향한다는 내용도 있고 그 버스의 첫차 시간표도 친절히 나와 있어 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첫차는 6시 45분, 남원역에서 출발하는 버스이니 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대략 10분 정도가 걸릴 터였습니다. 그렇게 내일 실상사를 갈 수 있다는 설렘을 가득 안고 저는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난 저는 가장 먼저 날씨부터 확인했습니다. 밤새 천둥 번개와 미지의 장소에 대한 불안으로 4번쯤 깨어났던 저는 비가 많이 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죠. 날씨가 흐리기만 하고 비가 오지 않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터미널로 걸어가서 편의점 김밥을 먹은 뒤 6시 26분에 141번 버스에 탑승했습니다. 버스에는 저 혼자 탑승했고 경유 정류장에도 사람이 없어 버스는 빠른 속도로 나아갔습니다. 시내를 쭉 지나니 시내의 끝에는 남원 의료원이 있었습니다. 버스는 그곳에서 시골로 들어가 이제는 굽이굽이 산길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길이었지요. 섬진강과 이어지는 남원요천이 늘 버스를 따라왔습니다. 그 뒤로는 안개를 살포시 감싸 안고 자신의 얼굴만 살짝 내비친 지리산 자락이 계속 보였지요. 그렇게 얼마쯤 달리자 중간에 운봉이라는 꽤 큰 마을을 만났습니다. 근처에는 목기 단지가 있었습니다.


목기는 남원의 특산물 중 하나입니다. 초등학교 때 남원의 특산물은 유기라고 배웠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남원의 특산물은 그릇인 것 같습니다. 남원의 그릇이 특산물이 된 데에는 실상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실상사는 사세가 클 때는 3000명까지 승려들이 거주했던 절로 상당히 많은 생활용품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용품들을 자체 제작했는데 그중에는 승려들이 쓰는 식기인 발우가 있었죠. 주변에 큰 절이 있다 보니 자연스레 민가도 생겨났고 서로 교류를 하는 과정에서 발우 만드는 기술이 민가로 넘어갔습니다. 이렇게 전수된 기술은 남원의 그릇 만드는 기술을 현격히 발전시켰고 남원의 그릇이 특산물이 된 것입니다. 다만, 실상사는 그 이후로 사세가 기울어 발우를 만들었던 기술을 잃어버렸으나 그 대단했던 실상사의 위세를 이렇게 운봉 목기 단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버스는 달리고 달려 지리산 입산의 첫 고을 인월에 도달했습니다. 지리산 달빛 고을이라는 마을 소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지리산 휴게소와 지리산 IC가 위치하며 지리산 둘레길 3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하죠. 인월 터미널에서는 지리산의 곳곳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실상사는 이 인월 터미널에서도 대략 8km를 구불구불한 2차선의 좁은 도로로 더 들어가야 합니다. 저는 실상사를 가야 하니 버스에 계속 타 있는데 인월에서도 내리지 않으니 신기하셨는지 기사님이 저에게 어딜 가냐고 물어봤습니다(그때까지도 버스에는 기사님과 저 둘뿐이었습니다.). 제가 실상사를 간다고 하니 실상사 말고 지리산이 더 볼만 하다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남원에서 가는 정령치 순환버스를 타고 지리산의 아래를 굽어보는 경치가 참으로 좋으며 지금은 비가 와서 계곡이 흙탕물이지만 나중에 맑을 때오며 맑은 계곡이 보기만 해도 매우 시원하게 느껴질 것이라 말했습니다. 나중에는 지리산 여행을 위해 남원을 와봐야겠다고 결심할 때쯤 실상사에 도착했습니다. 남원 시내에서 한 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마지막까지 버스에서 기사님과 혼자서 버스를 탔기에 기사님과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을 추억으로 남길 수 있음에 감사하며 기사님께 인사를 드리고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비는 오지 않았으나 여전히 날씨는 흐렸고 구름이 낮게 깔린 덕분에 이 깊은 산골 마을의 신비함이 더해져 저는 설레는 마음으로 실상사의 진입로로 들어섰습니다. 일주문은 없고 넓은 계곡을 건너는 해탈교와 양옆을 지키고 선 돌장승이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사찰이나 마을 간의 경계를 가르는 이정표의 역할을 행함과 동시에 마을의 수호신 역할도 겸했던 돌장승은 흔히 생각하는 수호신처럼 무섭게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뭉툭한 코와 큰 입으로 짓는 맑은 미소, 익살스러움이 듬뿍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돌장승을 보고 있으니 저 또한 기분이 절로 좋아지더군요. 이제 다리를 건너는데 옆으로는 지리산의 자락과 그 사이를 지나는 계곡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구름과 습기가 많은지라 산봉우리마다 구름이 그 모습을 감춘 채 다 보여주지 않았고 계곡에선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안개와 구름이 가득했기에 아침의 조용함과 맞물려 초월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어 절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올라갔습니다. 맑은 날이면 지리산 천왕봉이 한눈에 보이는 장쾌함이 있다고 하니 맑을 때의 실상사도 보러와야겠다고 다짐하며 다리를 넘어섰습니다.


불교에서 상징으로 가장 많이 쓰는 꽃은 연꽃입니다. 사찰 어디에서나 연꽃에 대한 상징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흙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모습을 보고 번뇌가 가득한 현세에서 사바세계를 향해 피어나는 아름다운 깨달음과 같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실상사도 진입로 옆에 연꽃밭을 조성하여 진입로를 아름답게 함과 동시에 그런 생각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연꽃이 피는 여름, 연꽃이 채 다 피지는 않았지만, 활짝 핀 연꽃들이 꽤 있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그 빛깔이 형형색색으로 제 망막을 강타하여 흐린 날에도 눈이 부실 정도였지요. 벌들도 그 아름다움과 향기에 홀려 연꽃 주변을 날아다니며 관심을 끌기 위해 애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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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밭을 다 지나고 나면 이제 천왕문이 앞에 나옵니다. 실상사의 일주문이 아마 전에는 있었겠지만, 이제는 없다는 것에서부터 실상사의 위세가 많이 떨어졌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죠. 원래는 통일신라 때 우리나라 최초로 선종을 들여온 증각대사 홍척이 세운 절로 구산선문 중에도 으뜸이었으나 이제는 김제 금산사의 말사가 된 것만 봐도 실상사의 위세가 역사와 같지 않음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세월이 참으로 무심한 듯합니다. 천왕문에는 옆에 다른 절들이 붙어 놓는 한문 주련과 달리 한글 주련이 붙어 있었습니다. ‘가득함도 빛나고 비움도 빛나라.’ 이분법적인 사고를 추구하지 않는 불교에 딱 맞는 글귀라 생각하였습니다. 사찰 경내에는 현대미술작품이나 시의 글귀를 꽤 적어 놓았는데 이를 통해 주지 스님이 문화재의 창조적 보전에 관심이 많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습니다.


들어가자 오른쪽을 보니 실상사 주변에 몸체는 사라지고 기와만 남은 것들을 모아 세운 탑이 있더군요. 실상사의 역사를 증언함과 동시에 시각적인 아름다움까지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 오른쪽에는 주춧돌이 가지런히 있었는데 예전 실상사의 목탑지라고 하였습니다. 지리산 깊은 산골에 높은 목탑이 서 있었을 생각을 하니 그 위용이 과연 찬란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목탑지에는 주춧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란 리본이 조형물로 놓여 있었습니다. 또한, 추모하는 글이 적힌 기와가 주춧돌마다 놓여 있었죠. 사회 참여를 두려워하지 않는 절이라니 신기했습니다. 또한, 문화재마다 인월중학교 학생들이 자신들의 말로 만든 문화재 안내판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순수한 눈으로 본 문화재 설명이 매우 제 가슴을 따뜻하게 했습니다. 문화재 보전과 사회 참여, 지역 학생들의 교육까지, 욕심이 한 가득인 주지 스님이 해탈을 못 할 것 같아 걱정이었지만, 그 욕심으로 절의 전통과 현대의 사회를 잘 아우르고 있는 것 같아 오히려 감사하다는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이제 천왕문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실상사의 중심 영역인 보광전 영역으로 눈을 돌려볼 차례입니다. 보물인 동・서 3층 석탑과 석등이 보광전 앞을 아름답게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띌 것입니다. 통일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인 동・서 3층 석탑은 그 비례미도 안정적이지만, 상륜부가 온전히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을 복원할 시 남원 실상사의 동・서 3층 석탑을 참고한다고 하니 그 미술사적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사이에는 석등이 보이는데 그 크기가 장중하고 위엄있으며 그 장식이 매우 화려합니다. 또한, 훼손된 면이 거의 없어 통일신라 시대의 화려한 장식을 한 석등이 어땠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석등에 불을 붙이기 위해 올라가는 계단이 보존된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예이기도 합니다. 보광전 안에는 아름다운 동종과 건칠아미타불좌상, 건칠보살입상이 있으니 보광전 안으로 들어가서 한 번쯤 보는 것을 추천하겠습니다.


이렇게 보광전을 스윽 둘러보고 옆을 보니 대나무 숲 옆에 약사전이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안에서 한 신자가 기도를 드리고 있더군요. 약사전 건물은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그 안에 있는 뒤의 그림은 지리산 5개 고을(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을 그려 놓은 현대 미술이라는 것이 특이했습니다. 그리고 안의 철조여래좌상은 둔중한 크기를 자랑함과 동시에 영험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습니다. 약사전과 딱 맞는 거대한 불상은 부드러운 느낌은 없지만, 그 경직된 느낌에서 오는 초월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저를 압도했습니다. 저는 그 분위기에 취해 오래도록 불상을 바라보았습니다.


약사전을 보고 보광전 앞에 서서 지리산을 바라보는데 산등성이의 아래만 드러날 뿐 구름에 가려져 산 위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산사가 주는 고요한 분위기와 구름과 산이 어우러진 신선의 주거지와도 같은 풍경에 반해 구름 위에는 신선이 살거나 극락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구름이 끼면 깊은 산골의 신비로운 기운이 더해지고 맑으면 천왕봉의 장쾌한 기운을 받을 수 있으니 실상사의 자리앉음새 또한 아주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지리산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광경과 그 광경 안에서 나오는 근원적인 기운이 과연 지리산을 삼신산 중 하나인 방장산에 비유할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잠시 화장실이 급해 해우소에 들렀는데 변기가 없고 아래로 구멍만 뚫린 푸세식이라 이곳이 확실히 산사임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화장실 밖에 쓰여있는 문구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똥, 오줌 냄새는 내 밥이고, 내 술이고, 내 몸이고, 내 시간의 냄새입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똥과 오줌 같은 찌꺼기마저도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를 꾀하는 불교의 사상을 잘 담은 문구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의 뒷간은 소담했는데 이 뒷간은 보존하여 조그만 그림들을 전시해두고 있습니다.


이 뒷간을 지나쳐 극락전 영역 근처에는 이 절을 세운 증각대사 홍척의 승탑과 탑비 받침대가 있습니다. 받침대의 거북은 그 생김새가 단순하나 유려한 곡선이 돋보이는 수작입니다. 다만, 비석은 온데간데없어 그를 볼 수 없음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홍척의 승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시대 팔각원당형의 승탑으로 보존 상태가 좋고 그 장식도 잘 남아 있어 볼만합니다. 그에 들어간 공력을 생각해볼 때 증각대사 홍척이 실상사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알만합니다. 이제 돌아가면 증각대사 홍척 다음으로 실상사의 두 번째 주지를 맡은 수철화상의 승탑을 볼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균형은 홍척의 승탑보다 떨어지지만, 이 또한 통일신라 시대 승탑의 전형을 보여주는 수작입니다. 하지만, 지반의 무너짐으로 살짝 기울어 있어 언젠가는 보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 옆의 탑비는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문 장식이 멋있었습니다.


실상사를 이렇게 다 살펴보니 건물들은 대부분 새로 지은 것이더군요. 이는 정유재란 때 남원이 함락되며 불탄 것이 첫 번째고, 고종 대에 함양 대에 유림들이 지세 좋은 땅을 갖기 위해 불태운 것이 두 번째니 건물들의 역사가 그리 깊지 않습니다. 실상사의 위세가 떨어진 것도 떨어진 것이지만, 이렇게 새로 지어진 건물들을 보면서 인간의 욕심으로 망친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되새기며 안타까움만 늘었습니다.


구름과 산으로 둘러싸인 포근하고도 고즈넉한 분위기에 취해 보광전 앞을 서성이던 중 제 머리 위로 물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핸드폰을 켜보니 남원에는 호우경보가 내려있었고, 지리산은 산사태 주의보가 떨어졌더군요. 다음 목적지인 실상사 백장암까지는 인도 없는 2차선 차로로 5km를 가야 했기에 저는 재빨리 절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절을 나오는 와중에 한 신자분이 웃으며 합장을 해주시더군요. 마치 편안히 여행을 마치기를 기원해 주시는 것 같아 마음에 따뜻함이 퍼졌습니다. 미소를 띤 합장으로 답례를 하고 우의를 쓴 다음 백장암으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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