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을 넘어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까지 닿는 호남제일루

사찰기행-광한루원

by baekja


비가 그치지는 않았으나 약간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밖으로 저녁을 먹으러 나갔습니다. 멀리 가기는 그렇고 바로 옆이 춘향 테마파크였는데 그 근처에 소바집이 있더군요. 그곳으로 갔습니다. 가는 동안 저는 남원의 풍광에 감탄했습니다. 웬만한 강 너비의 남원요천이 비가 온 덕에 세차게 흐르고 있었고 그 뒤로는 지리산 자락의 야트막한 언덕이 아스라이 펼쳐지는 그런 풍광,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건너편에 빼곡히 작은 건물들이 모여있는 구도심의 정겨움까지 있어 참으로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 이 아름다운 곳을 이제야 와봤냐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렇게 풍광에 취해 걷다 보니 어느새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비는 점차 거세져 이제는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춘원회관’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식당은 현지인들이 좀 있었지만, 비의 영향인지 사람이 많지는 않아 넓은 식당이 휑해 보였습니다. 소바 한 그릇과 만두 한 접시를 시켜 먹었는데 원래 면과 국물을 따로 주는 평범한 소바와는 달리 면이 국물에 담겨 나와 이것이야말로 한국식 소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청 맛있다기보다는 딱 적당히 맛있는, 무난한 수준의 음식이었습니다. 만두 또한, 그런 느낌의 맛이었습니다.


광한루원을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와 남원요천을 따라 다시 걷는데 남원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적혀 있어 재밌게 읽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보였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남원에 국악의 성지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가왕의 고장이라는 얘기가 있어 조용필의 고향이 이곳인가 하였습니다. 자세히 읽어보고 나중에 조사해보니 가왕은 판소리 명창 송흥록의 고향이 이곳이었으며 송흥록은 구례, 남원, 순창을 중심으로 성행한 동편제를 창시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동편제가 판소리를 나누는 서편제, 동편제, 중고제 중 가장 먼저 판소리를 체계화했다고 하니 남원에 국악의 성지를 설치한 것이 타당한 일임을 알았습니다. 이 송흥록의 송씨 가문은 4대에 걸쳐 판소리 명창으로 이름을 떨쳤으니 재능에도 유전이 있다는 생각이 지나갔습니다. 그 옆에는 판소리 다섯 마당에 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수궁가>, <춘향가>, <적벽가>, <흥보가>, <심청가>를 판소리 다섯 마당으로 꼽는데 저는 조사하기 이전에는 춘향가의 배경이 된 남원 광한루가 있어 이런 것을 설치했나 싶어 약간 억지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아, 잘 알지도 판단을 했으니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어쨌든 그 옆을 지나 승월교라는 다리를 건너는 중 한 폭포를 보았습니다. 승월교도 관광지의 맛에 따라 다른 다리와는 다르게 크게 지은 것이 썩 맘에 들지는 않았는데 인공폭포까지 설치한 것은 과연 어울리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둘 다 야간에 조명이 켜지는 야간이면 훨씬 볼만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리를 건넜습니다. 그런데 다리 위에는 이상한 조각상들이 있더군요. 나름 춘향전의 배경이라고 연인들이 사진 찍을 스팟을 만들어 놓은 듯했는데 적당히 이해가 되는 것을 넘어 괴이한 것도 있었습니다. 물구나무를 선 비보이 도령은 그 중 단연 최고였습니다.


이런 어이없는 광경에 실소를 하며 승월교를 건너자 바로 앞에 광한루원의 대문이 보였습니다. 들어가자 완월정이 앞에 보였습니다. 앞에 잔디밭을 두고 연못 위에 올라앉아 있는 완월정은 1971년에 세웠다고 합니다. 광한루보다 크지는 않게 하지만, 적당히 어울리게 지은 이곳은 각종 행사가 열리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름의 뜻은 달을 희롱하는 정자라는 뜻인데 광한루 앞의 승월대와 더불어 이름을 맞추었다고 합니다. 이 승월대에서 달을 바라보는 행사는 오래전부터 있어 온 것으로 이곳의 이름을 따 승월교의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완월정은 나름 괜찮았지만, 전체적으로 한국 정원이 가지는 포근하고 고즈넉한 느낌이 아닌 다른 느낌이 들어 생경했습니다. 정원을 거니는 것이 아닌 관광지에 온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을 지우려 애쓰며 지도를 쳐다보던 와중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광한루의 역사를 설명하고 춘향전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담은 춘향관은 그렇다 치고 도대체 월매집과 VR체험관은 광한루원 안쪽에 지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광한루를 맨 처음 세웠던 황희 정승은 어떤 생각을 할지 부끄러움이 사무쳤습니다. 누군가는 광한루에 춘향전의 이야기가 덧씌워지면서 광한루는 문화적으로도 더욱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하였는데 그 문화적 볼거리를 이런 식으로밖에 재생산하지 못하는 상황을 본다면 과연 그 말을 다시 할지에 대해 의문이 들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도를 보고 난 후에는 춘향관으로 향해서 광한루의 역사를 살피고자 했습니다. 원래 황희 정승이 이곳에 광한루를 지을 때 붙인 이름은 ‘광통루’로 널리 알려진 누각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를 광한루로 바꾼 것은 정인지입니다. 달나라 궁전을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하였는데 정인지가 광통루를 보고 달나라 궁전 같다 하여 이름을 광한루라 붙인 것이지요. 이를 송강 정철이 뒤에 누각을 중심으로 정원을 조성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름을 붙임으로써 광한루는 더 높은 문화적 가치를 갖게 됩니다. 그 이유는 광한청허부를 바탕으로 쓰인 오래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인데요. 까치와 까마귀로 만들어진 다리를 건너야만 달나라 궁전을 향할 수 있는 남자와 그 다리를 건너야만 달나라 궁전을 벗어날 수 있는 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 다들 알고 계시나요? 견우와 직녀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달나라 궁전이 광한청허부이지요. 광한루는 춘향전 이전에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를 이미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춘향관에서는 춘향전이 어떻게 변모해왔는지에 대한 내용 또한 있었는데 오페라, 연극, 창극 등 다양한 장르로 해석이 되어왔으며 시대가 요구하는 생각에 따라 그 내용도 변해 온 것을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전시를 보던 도중 가장 재밌었던 것은 각국의 언어로 해석된 춘향전이었습니다. 중국어, 일본어를 넘어 영어, 불어, 러시아어, 독어, 스페인어, 말레이시아어, 인도 마라티어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했습니다. 그 책들의 삽화도 볼 수 있어서 각 나라에서 생각했을 춘향의 이미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춘향전을 나와 광한루로 다가갔습니다. 설레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오작교를 건너자 광한루의 옆모습과 앞모습이 동시에 드러났습니다. 과연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질 만한 정도의 아름다운 누각이었습니다. 건축이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고 그에 따라 그 크기에 맞는 위엄도 갖추면서 앞의 연못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과연 호남제일루라 일컬어 질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각은 원래 올라가서 그 풍광을 맛봐야 하는데 올라갈 수 없는 것은 매우 아쉬웠습니다. 광한루 뒤의 올라가는 입구에는 아예 호남제일루라고 쓰인 현판이 걸려 있어 이 광경이 호남 제일의 누각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움 풍광임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광한루 앞 넓은 연못에는 세 개의 섬이 자그마한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삼신산의 이름을 따 영주섬, 봉래섬, 방장섬이었습니다. 삼신산은 중국의 오랜 설화에서 나온 것으로 동쪽에 있는 신선의 산 세 가지, 영주산, 봉래산, 방장산을 가리킵니다. 이를 중국의 동쪽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받아들여 우리나라의 산에 하나씩 대입했는데 영주산은 한라산, 봉래산은 금강산, 방장산은 지리산에 대입했습니다. 빗줄기가 점차 굵어져 잠시 방장섬의 방장정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었습니다. 조용한 중에 연못에 떨어지는 세찬 빗소리와 나무 너머로 보이는 광한루의 모습이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 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비가 조금 사그라들었습니다. 구름이 껴있어 달빛은 내리지 않았지만, 인공의 조명이 그를 대신하였습니다. 그리고 보이는 광한루 밤의 표정. 그제야 저는 이곳을 왜 달나라 궁전에 비유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신선의 섬에서조차 그 아름다움을 탐냈던 그 너머의 아름다운 누각. 까치와 까마귀를 타야만 갈 수 있는 이상의 아름다움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 근처의 불이 다 꺼지고 만월이 비치는 날이면 광한루를 비추며 연못에 사뿐히 내려앉은 눈이 시리도록 찬란한 빛이 이 정원을 가득 채웠겠지요. 그 모습을 본 정인지는 광한루라고 이름을 붙이지 않을 재간이 없었을 것입니다. 봉래섬과 영주섬을 잇는 다리에서 한참을 바라보다 보니 마치 제가 신선이 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들더군요. 그 느낌에 취한 저를 밖으로 끌은 것은 다시 굵어진 빗줄기였습니다. 마치 이 이상의 세계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듯했습니다. 저는 뒤를 계속 돌아보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비를 피하며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그 아쉬운 마음을 담아 난포 양경수가 쓴 시가로 광한루원 여행기의 마지막을 장식하고자 합니다.


천상의 규모가 이 광한루에 섰으니

은하수 옆에 오작교가 있구나.

옛 고을을 흐르는 물은 어디로 가는가?

아름다운 사람은 꽃을 보고 미련을 금치 못하네.

천 길이나 먼 달 그림자는 이 누각을 비추고

옥퉁소 소리는 구만리 먼 하늘까지 울리네.

조각배로 물결 따라 다시 영주섬으로 가니

다만 맑은 바람은 실어도 근심은 실을 수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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