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미륵

사찰기행-논산 관촉사

by baekja


5시 30분에 일어나 어머니가 어제 끓여 놓은 김치찌개를 먹으며 바라본 하늘은 매우 흐렸지만, 비는 안 오고 있었습니다. 비가 예고되기는 했지만, 일단 여행의 처음은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밥을 먹고 짐을 확인하고, 방수 커버를 씌운 뒤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습니다. 검푸른 공기가 어느 정도 밝아져 밖은 점점 밤을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오산역까지 걸어가 천안행 일호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다들 잠이 채 깨지 못한 6시 30분경, 지하철에서는 자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들의 일상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지하철 안에서 저만 그 일상을 벗어나는 여행을 떠나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일호선 열차는 천안역에 닿았고 그 후에 광주행 열차에 탑승했습니다. 조치원, 신탄진, 서대전, 계룡을 거쳐 약 1시간 만에 논산에 닿았습니다. 가는 동안 구름이 짙게 끼어 낮은 산에도 걸려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논산역에 도착하고 나서는 바로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9시, 논산역 앞은 사람이 매우 적었습니다. 전날 네이버를 찾아본 결과 관촉사까지 가는 노선은 많으나 그 시간표를 알 수는 없었고 돌아가는 버스도 있었기에 저는 살짝 불안해졌습니다. 그 와중에 버스 정류장에서 보여주는 버스 대기 시간은 반대로 지나가는 버스도 잡는 통에 도저히 알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관촉사라고 적힌 버스를 세우고 기사님께 물어보니 이것은 돌아가는 버스이고 다음 버스를 타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타게 된 버스 번호는 801-3. 가는 도중에 화지 중앙시장을 지났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버스 기사님이 오늘이 장날이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이따가 한 번 들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버스에 탄 지 10분 만에 관촉사에 도착했습니다. 내리자 왼쪽에는 논이 보였고 오른쪽에는 낮은 반야산과 민가가 보였으며 정면으로는 일주문이 보였습니다. 가는 길에 이것저것 비석이 세워져 있었는데 다는 읽지 못했지만, 관촉사 주변으로 나무를 심은 것과 공원을 조성한 내용이었습니다.


관촉사는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정말 진입로가 별로였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다음에 갔던 절들을 생각하면 최악의 진입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길은 완전히 아스팔트에 천왕문까지 이어지는 길에 난잡한 상점과 민가들이 모두 들어서 있었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고즈넉한 절의 느낌보다는 관광지나 공원 같은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래도 별 기대 안 했던 만큼 별생각 없이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천왕문을 지나 절로 들어가는 녹음이 우거진 짧은 산길 언저리에서 만난 비석은 완전히 제 기분을 망쳐놓았습니다. ‘운남 이승만 박사 추모비’. 1965년에 세웠으며 대한민국 반공 청년회 논산지부가 세운 그 비석은 당최 왜 절 경내에 있는지 알 수도 없었으며 문화재 행정을 하며 이 비석 하나 다른 데로 치우지 않고 뭘 했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절에 와서도 저런 눈을 더럽히는 것을 봐야 한다는 것에 절망했습니다.


그 올라가는 짧은 길에서 수많은 논산 시민들이 운동하는 장면은 이곳이 완전히 시민의 공원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운동하는 곳을 지나쳐 누각을 지나 계단을 오르자 관촉사의 경내가 나타났습니다. 영주의 부석사에서는 안양루를 지나자 극락이 펼쳐졌지만, 여기는 지옥이 나타났습니다. 웬 연등 조형물이 대광명전 옆에 붙어 있질 않나 윤장대라는 조형물은 화려하게 장식만 가득할 뿐 그 자신이 가진 예술적 가치는 전혀 없이 복원해 놓아 얼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국보 제323호로 지정된 석조 미륵보살입상 앞에 있는 미륵전은 최악이었습니다. 유리로 만든 창에 시트지로 붙인 단청. 종무소는 완전히 슈퍼마켓으로 변해 있는 점까지. 저는 속세를 떠나와서 번뇌를 없애러 왔으나 번뇌를 쌓고 가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이끼가 낀 채로 잘 고요하게 자기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잘생긴 석문 하나를 보고 맘에 들어 확인해보니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79호로 지정된 석문이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그 문에 적힌 이름은 ‘해탈문’ 사람 한 명 간신히 지나갈 것 같은 그 문은 소박함에서 미륵을 만나기 전 불자가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을, 시간을 견뎌내온 그 굳건함에서는 불도를 가는 의지가 느껴졌습니다. 만약 관촉사에 가게 되신다면 꼭 그 문을 한 번쯤 보고 오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관광지인지 절인지 모를 관촉사가 답사객의 발걸음을 붙잡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유명한 석조 미륵보살입상이겠지요. 사실 관을 쓴 점이나 손에 꽃을 들고 있는 점 모두 관음보살의 도상입니다. 원래 미륵전의 현판도 관음전이었지요. 하지만, 조선시대 후기부터 미륵 신앙이 크게 발달하며 민중들이 그리 믿고 그렇게 오래도록 불러왔으니 그 무수한 말들에 담긴 힘을 생각하면 미륵이란 말도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이 절에서 저 미륵보살입상이 가지는 의미는 대단히 큽니다. 큰 돌이 울고 있어 그것을 깎아 거대한 미륵을 만든 후 절을 세웠다는 설화가 이 절의 창건 설화이며 관촉사라는 이름은 중국의 승려인 지안이 저 거대한 미륵보살입상의 백호를 보고 빛나는 것이 마치 촛불과 같다 하여 ‘촛불을 보는 절’이라 이름 붙인 것이지요.


이러한 의미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미륵보살입상은 우리의 마음을 붙잡습니다. 분명 통일신라 대의 불상들처럼 유려하고 풍만하며 잘생긴 불상은 아닙니다. 고려 초의 흔한 불상처럼 투박하고 비례미가 잘 맞지 않는 그런 불상이지요. 하지만 그 크기와 더불어 그 불상이 뿜는 형형한 기는 이 절 전체를 아우르고도 남습니다. 그런 투박함과 못생김 속에 간직한 친근함. 하지만, 그런 중에 그 크기와 커다란 눈에서 받는 강렬한 인상은 과연 누구나 자신이 담아둔 소원을 꺼내어 그 불상에게 말할 만했습니다. 저런 모습 덕분에 아마 미래에 와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이라 불렸던 것이겠지요. 그렇게 불상에서 눈을 쉽사리 떼지 못하였지만, 앞에 있는 거대한 석등도 과연 볼만한 것이었습니다. 그 듬직하고 위엄있는 모습이 석불에 모자라지 않으니 균형이 잘 맞았습니다.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과 비교하여 밀리지 않으니 화엄사와 비교하여 원래 관촉사가 가졌을 사세를 가늠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앞에는 오층석탑이 있는데 많이 훼손되었으나 그 비례미가 오층석탑인데도 어느 정도 안정감이 있어 볼만합니다. 오층석탑 앞의 배례석(부처에게 제물을 바치는 곳)에 새겨진 연꽃은 이곳이 원래 가졌어야 할 고즈넉한 분위기를 멀리서 가져오는 듯했습니다.


관촉사 경내 왼쪽 언덕 위로 올라가니 논산 훈련소가 위치한 연무벌을 바라보는 불상과 흐린 하늘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더군요. 그 풍경 하나만큼은 정말 아름다워 절의 자리 배치가 얼마나 뛰어난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려오며 불상 앞에서 발을 뗄 수 없어 불상 주변을 스윽 살펴보는데 불상 뒤의 돌산 면에 한자로 각석을 해둔 것이 보이더군요. 경치 좋은 곳에 와서 자기 이름을 남기는 것은 조선 시대 때도 똑같았나 싶어 피식 웃었습니다. 불상의 알 수 없는 이끌림은 계속 저를 붙잡았지만, 다음 일정이 있는 저는 절을 빠져나왔고 이번엔 논산역까지 걸어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약 5km 정도 되는 거리기에 적당한 걸음으로 논산 시내를 보기에 딱 알맞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하늘은 여전히 흐렸고 저는 가방을 고쳐매고 반야산 시민공원의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keyword
이전 01화사찰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