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시작

사찰기행-논산에서 남원으로

by baekja


반야산 시민공원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은 것은 적송이었습니다. 소나무가 빼곡히 심어져 있어 제 눈길을 끌더군요. 그런 녹음 짙은 산을 계속 걸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습기가 가득하여 땀이 금방 나는 것은 별로였지만, 동네 언덕 수준의 산이라 좋았습니다. 하지만, 시민공원치고는 정비가 안 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사유지더군요. 곳곳에 자신의 조상을 기리는 비석들이 많아 참으로 어지러웠습니다.


가장 인상 깊은 비석은 고려 4대 개국공신 중 한 명인 배현경을 기리는 비석이었습니다. 배현경은 경주 배씨이나 그를 중시조로 모시는 직제학공파가 논산에 거주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논산시 연산면은 계백이 결사대를 이끌고 마지막 전투를 벌인 황산벌이 있는 곳으로 후백제와 고려의 마지막 싸움 또한 이 황산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한 것을 볼 때 논산에 배현경의 비석이 있는 것이 꽤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비석을 설명하는 곳에 이 반야산이 논산 직제학공파의 선산이라 되어 있어 사유지임이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배현경의 비석이 좀 어울렸다면 안향 상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고려시대에 성리학을 도입한 문신으로 경북 영주가 고향인 그는 사실 논산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동상 설치에 의문점을 가지고 찾아보니 순흥 안씨 논산종친회에서 이 동상을 설치했더군요. 말로는 안향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라는데 암만 봐도 자기들 종친회의 위세를 과시함이 분명해보였습니다. 자신들이 한 짓이 선조에게 더욱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걸 모르고 생각 없이 행한 그 동상을 보며 저는 혀를 찼습니다.


그렇게 이것저것 보며 꽤 걸었는데도 산길만 계속되고 터미널로 가는 포장도로로 가는 길은 보이지 않아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거기다 시민공원이기는 하지만, 사유지라 표지판 하나 세워져 있지 않아 불안이 더해졌습니다. 저는 거의 감으로 가기 시작했고 간신히 한 샛길을 찾아 빠져나오니 아파트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간신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빠져나오는데 내려오는 길 옆 쪽에 붙은 몇 개의 그림이 보였습니다. 근처 유치원생들의 그림이었습니다. 친구, 엄마, 아빠, 선생님을 그린 그림에서 그들의 순수함과 세상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와 잠시 그 과시욕에 찌든 안향 상을 잊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이제 큰 길로 나아가 논산역 근처에 위치한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가면서 고개를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도시 이모저모를 살펴보는데 논산은 꽤 큰 도시였습니다. 아파트가 점점 늘어나는 것이 보이는 그런 곳이었죠. 하지만, 그런 것보다 인상적인 것은 오른쪽에 쭉 펼쳐진 연무벌이었습니다. 벼가 가득한 그곳과 뒤로 멀게 보이는 작은 야산들 그리고 그곳과 맞닿은 회색의 구름. 참으로 가슴이 뻥 뚫리는 그런 광경이었습니다. 그렇게 넋을 놓고 바라보는 동안 저는 차도에 있었나 봅니다. 차가 ‘빵!’하는 소리에 놀라 재빨리 인도로 올라왔지요.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과 문명이 공존하는 곳이 논산이란 인상이 마음속에 새겨졌습니다.


시내를 가다보니 정말 많이 보이는 것이 군 가족 할인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육군훈련소가 있는 곳이니 당연한 일이겠죠. 그와 동시에 버스를 기다릴 때 육군훈련소라 써져있는 5톤 트럭이 지나간 것과 조그마한 역에 장병 라운지가 따로 설치되어 있는 것이 기억났습니다. 그런 것들을 기억 속에서 찬찬히 되살피니 저에게 있어 논산은 훈련소가 있는 곳 이상의 장소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제의 역사를 간직한 황산벌부터 고려의 역사를 간직한 관촉사, 개태사, 쌍계사와 조선의 역사를 간직한 명재 고택과 돈암서원,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 육군 장병 개인의 역사를 증언하는 논산훈련소가 위치한 이곳이 참으로 많은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길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가 반월초등학교를 끼고 걷는데 초등학교에서 흥겨운 가락이 들려왔습니다. 자세히 들어보니 장구로 휘모리장단을 치고 있더군요. 간만에 듣는 구수한 장단에 발걸음을 재촉하며 ‘반월소바’라는 음식점으로 들어갔습니다. 논산에서 맛집을 찾는데 가장 위에 있는데다가 역에서도 가까워서 별 생각 없이 선택했습니다. 원래는 줄을 서서 먹는 곳인데 저는 오픈시간인 11시에 거의 딱 맞춰 와서 바로 먹을 수 있었습니다. 들어갈 때 연예인 싸인이 하나만 있는 것이 눈에 띄더군요. 멀리서 찾아와서 먹을 만하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주문한 음식은 매콤 돈가스였는데 음식이 전체적으로 짜지만 양이 많고 맛도 무난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청난 맛집이라는 말은 솔직히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배를 채우고 논산 화지시장으로 넘어가 시장을 둘러보는데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충청도 사투리가 매우 정겨웠습니다. 고등학교 때 이후로 간만에 듣는 사투리인지라 더욱 반가웠습니다. 시장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흥겨운 트로트가 흘러나왔고 듣는 재미가 꽤 있었습니다. 돌아다니다가 한 골목을 들어가게 되었는데 거기는 청년들이 운영하는 상점이 모인 골목이었습니다. 거기서는 트로트가 아니라 흔한 K-POP댄스곡이 흘러나오고 있더군요. 이런 곳에서도 세대의 차이를 절감하며 밖으로 나오는데 한 간판이 제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명동아울렛이라는 간판을 보니 여기서도 명동은 번화한 상점의 의미로 쓰인다는 생각이 들어 대한민국에서 서울이 가지는 영향력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시장을 나와 역으로 향하는데 논산 우체국 앞의 버스 정류장에 어르신들만 많은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논산도 상당히 오래된 곳이며 이제는 고령화가 진행 중이라는 것이겠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어가는데 입영심사대로 가는 버스가 보였고 거기 타고 있는 군인들이 몇 명 보여서 좀 안쓰러웠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며 논산역에 도착해서 대합실에서 쉬다가 오후 1시 48분에 남원에 가기 위해 여수 엑스포가는 무궁화호에 탑승했습니다. 중간에 전주에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전주를 지나 산지에 들어섰을 때는 구름이 낮게 깔려 산등성이에 걸려 있었습니다. 참으로 볼만한 광경이었습니다. 임실을 넘어서서는 귀가 아프기 시작해서 고도가 높아졌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남원역은 생각보다 산지에 있어서 놀랐고 천둥번개와 함께 어마어마한 비가 쏟아지고 있어서 놀랐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장마철에 이곳을 왔다는 것이 체감되었습니다. 분명 폭포처럼 쏟아지는 비는 시원해서 좋지만, 여행 중에 다 젖어버리면 여행을 지속하는 데 있어 상당한 장애물이 되기에 저는 마음을 굳게 먹어야 했습니다. 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오후 3시 30분에 터미널로 향하는 버스를 탑승했습니다. 버스 기사님과 자잘한 대화를 나누며 충청도에서 전라도로 넘어왔음을 사투리를 통해서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두 가지 아주 특이한 점을 발견했는데, 버스 기사님이 탑승객과 인사를 나누며 어디 가는지를 알고 있다는 것과 다른 버스를 타야하는 시민 분이 버스 기사님께 자신의 버스가 언제 오는지를 물어보는 장면이었습니다. 서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장면에 정겨움이 느껴졌습니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내일 가야할 실상사를 가는 버스 노선을 물어봤더니 터미널에서는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없다고 하여 크게 당황했습니다. 분명 시내버스가 있고, 터미널에 물어보면 알 것이라 했는데……. 불안감이 증폭되었지만, 내일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기에 일단은 숙소로 향했습니다. 숙소까지 멀지는 않았고 남원요천을 건너 지방 어딜 가나 보이는 충혼비를 지나 700m정도만 가면 됐습니다. 숙소는 들어갈 때는 매우 어두워서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가격 치고는 무난하게 괜찮았고 저는 잠시 침대에 누워 쉬며 날씨를 검색했습니다. 남원에 호우 주의보가 내렸더군요. 어이가 없어 허허 웃다가 비가 조금 그치면 저녁을 먹고 광한루의 야경을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keyword
이전 02화천년의 미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