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엄마와 잠시 외출을 했다가 엄마가 카페에서 기프티콘을 써야한 대서 엄마는 카페 안으로 들어가 주문하는 동안 나는 밖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가만히 서있었다. 밖의 난간에 기대어서서 주변을 살피는데 뒤에서 ‘통통’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상해서 뒤돌아보니 한 어린아이가 계단 앞에서 놀고 있었다. 계단 끝에 서 있다가 몸을 기울여서 넘어질 즈음에 발을 땅에 대서 멈추어서는 단순한 놀이를 반복하는 아이를 가만히 쳐다보니 나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아이의 뒤에 서서 아이가 하고 나면 내가 하고, 내가 하고 나면 아이가 하기를 몇 분 반복했다. 길을 지나가는 행인들이 쳐다봤다. 나이를 많이 쳐줘야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와 20대 중반의 시커먼 대학생이 똑같은 행위를 번갈아가며 반복하는 것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한할 것만 같았던 무언의 행위는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를 끌고 가며 끝이 났다. 아이는 한 손에 커피를 든 어머니의 다른 손에 붙들려 자신의 놀이터를 떠나야 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가며 가끔씩 뒤돌아 여전히 방금 전 했던 놀이를 반복하고 있던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딱 나와 눈이 마주쳤다. 예전에 놀이터에서 친구랑 놀다가 학원에 가야 해서 먼저 놀이터를 빠져 나가야 했던 내 모습이 딱 저랬을 것 같았다. 그 아이에게 반갑게 잘 가라고 인사를 해주고 싶었지만, 아이와 같이 놀았던 내 안의 아이는 무척 소심해서 그냥 오래도록 그 아이가 가는 것을 봐주는 것이 전부였다.
얼마 후 친구의 SNS에서 <어른들 안에는 아이가 산대>라는 동화의 일부를 보았다. 카페 앞에서 아이와 놀던 나의 모습과 겹쳐져 바로 도서관에 가서 그 동화를 빌려보았다. ‘어른들은 누구나 자기 안에 아이를 품고 있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이 동화는 한참 동안 나에게 많은 생각을 가져다주었다.
언젠가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저학번들은 고학번들을 대단한 눈으로 쳐다봐. 사실 그냥 나이를 먹은 아무것도 못하는 똑같은 대학생일 뿐인데.”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나이를 먹는다고 갑자기 내가 대단한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금 더 성숙하고 철들었다는 티를 내야하는 성가신 상황들만 늘어날 뿐이지. 자동적으로 흘러가는 세월과 커져버린 내 몸은 내 맘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아이를 억눌러야 하는 상황으로 이끈다. 이쯤 되면 위의 말을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대단한 눈으로 쳐다봐. 사실 그냥 나이를 먹고 몸만 커져버린 똑같은 아이일 뿐인데.”
무수히 많은 사회의 기대에 우리는 맘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아이들을 억누르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엄청 노력한다. 하지만, 마냥 아이들을 억누를 수만은 없다. 아이들이 풀려나는 순간, 우리는 사회의 시선들을 모두 무시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한다.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이나 그네를 타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막춤을 추고, 원하는 것을 보자마자 사버리기도 한다. 억누름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느끼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얻어가는 순간이다.
이렇게 행복을 얻어가는 순간이 많으면 무척 좋겠지만, 이미 주어진 벗어난 역할들은 그렇게 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은 계속 기계의 부품처럼 굴러간다. 기계의 부품이 하는 일은 무척 당연하기에 내가 어떤 일을 해도 칭찬은 돌아오지 않는다. 뛰어놀지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칭찬까지 주어지지 못하는 상황. 요즘 보통 사람들의 보통의 삶이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게 된 <식스센스2> 클립에서 출연자들이 서로에게 ‘잘하고 있어.’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출연자들은 다수가 울었고, 나 또한 가슴이 뭉클해졌다. 잘하고 있단 말이 이렇게 감동적이었나 싶었다. 미래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 속에서 붕 떠 있는 내 자신이 차분히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세월이 지나고나니 저절로 주어진 사회의 여러 역할과 의무에 지쳐버린 내 맘속의 아이가 환히 웃고 있었다.
엄마가 요즘 자꾸 칭찬을 해달라고 한다. 엄마가 해 온 많은 일들에 대해 인정받고 싶은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아이가 보인다. 칭찬을 하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솔직히 귀찮기도 해서 건성으로 하는 경우가 참 많지만, 그래도 제대로 칭찬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으니 언젠가는 엄마 맘속의 아이를 위로하고 만족시킬 수 있는 칭찬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 엄마 맘속의 아이를 만족시키기 이전에 계단에서 즐겁게 놀던 내 맘속의 아이부터 위로와 칭찬을 해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