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무언지 하무뭇하게 그리워지는 날에는” 얼마 전에 어쩌다가 찾게 된 한국 가곡 <마중>의 한 구절이다. 한파에 의해 미세먼지가 날아가고 차가운 공기가 시리도록 옷 속을 파고드는 날에 하늘을 쳐다보면 그 청명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그런 흡족함과 만족함이 지나간 후에는 알 수 없는 추억들이 밀려와 약간의 씁쓸함을 남기고 간다. 다시는 닿을 수 없는 무언가가 나를 스쳐지나가는 느낌이다. 이 닿을 수 없는 것에는 얼굴을 붉히는 창피함이,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무엇인가를 성취해낸 후의 기쁨이, 그리고 무엇인가를 잃은 후의 슬픔이 모두 섞여 있다.
‘보고 싶거나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립다.’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이다. 가끔 밀려드는 그 씁쓸함은 과거에서 밀려드는 창피함에서도, 잘못한 것에 대한 반성 후에 찾아드는 부끄러움에서도, 기쁨이 끝난 후에 밀려드는 허무함에서도, 무언가를 잃고 난 후에 느꼈던 슬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약간은 미화되어버렸을지도 모르는 그 여러 감정들을 느끼게 해 준 추억들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그런 상실감에서 비롯된 씁쓸함처럼 느껴졌다. 과거로 돌아가 다시 그 추억들을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마음이 정말, 무척 그리고 매우 간절해졌다.
그리워하는 추억들의 중점이 되는 것은 각기 다르다. 어떨 때는 보고 느낀 경험 그 자체가 가장 그립기도 하고,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어떠한 사람이 가장 그립기도 하며, 사회에 너무 찌들어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순수한 내가 그립기도 하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물어본 질문들에 자신 있게 대답했다가 틀려서 창피를 당했던 사건이나 중학교의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고 느껴졌던 허무함은 당시에는 썩 내 기분을 좋지 않게 만드는 것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다시 경험해보고 싶은 어린 시절의 한 추억이 되었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점심시간마다 양말에 구멍이 뚫리고 슬리퍼가 찢어지도록 놀면서 느꼈던 즐거움이나 고등학교의 마지막 즈음 대학에 합격했을 때 느꼈던 기쁨은 지금도 나에게 주는 짜릿함이 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 공부 때문에 느꼈던 좌절감이나 그 성적으로 인한 슬픔은 여전히 나를 가슴 아프게 하지만 그 경험들의 바탕 속에서 내가 성장할 수 있었기에 그러한 경험들을 잊고 싶지 않고 가끔은 그리움을 느끼기도 한다.
가끔은 사람이 주체가 되기도 한다. 초등학교 때 꽤 친했었지만 이제는 헤어진 친구들을 생각한다. 중학교 때 같이 공부하고 싸우며 함께했지만 이제는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들을 생각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그저 1시간 정도의 이야기만 나누었던 스쳐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해 하며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을 기억하고 그에 대해 그리워하기도 한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데는 1분이 걸리고, 그 사람과 사귀는 데는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데는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는 데는 일생이 걸린다.’ 그들과 만나고 친구가 되는 데는 얼마 안 되는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그들을 평생 그리워할지 모른다.
추억에 나오는 사건도 사람도 모두 그립지만 결국 가장 그리운 건 과거의 나인 것 같다. 시험 문제 하나 더 틀려 분해서 울던 나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순수한 열정, 뒤의 수업시간 같은 건 생각도 않고 점심시간에 죽도록 뛰어 놀던 패기, 돈이나 이념, 생각 따위는 따지지 않고 그저 공이나 딱지 하나만 있으면 행복하게 놀 수 있었던 백지 같은 순수함. 그 모든 과거의 내가 그립다. 현실이라는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그저 가볍게 앞에 놓인 것들을 바라볼 수 있었던 과거의 그 모든 내가 그립다. 부정적인 단점을 먼저 찾는 지금과 달리 긍정적인 것을 먼저 바라보던 과거의 내가 무척 그립다. 그 모든 내가 합쳐져서 지금의 내가 되었지만 매일 현실에 타협하고 게으르게 사는, 열정을 계속 태우기 힘들어 간신히 불길만 유지하고 있는 내가 과거의 나와 비교되어 비참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런 때면 더욱 마음속에 순수함을 가득 간직하고 있던 과기의 내가 그립다.
사람은 과거를 딛고 미래를 보며 현재를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그리움에 빠지면 그저 과거의 그런 아름다워 보이는 추억들을 만나 과거를 보며 과거에 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과거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기에 아름다워 보이고 더욱 그리운 것일지 모른다. 그리운 추억들은 다시는 만날 수 없고 볼 수 없는 그 부재 덕에 더욱 소중히 담고자 나의 한 부분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단 한 순간의 추억이었지만 그것의 잊히지 않는 진한 느낌에 아마 나는 그 추억들을 평생 그리워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마중>의 한 구절을 빌려 이 글을 끝맺어보려 한다. ‘그립다는 것은 오래 전 잃어버린 향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