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by baekja

삶과 죽음의 수레바퀴를 계속도는 것. 그 의미 없는 순환을 반복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윤회라고 합니다. 윤회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것들로 변한다고 합니다. 인간의 종이 아닌 다른 생물들로 말이죠. 보통 전생에 죄를 많이 지을 경우 업이 쌓여 그 인과관계 때문에 개나 돼지로 태어나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꽃은 어떤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것일까요?


앞의 말은 충분히 우문일 수 있습니다. 사실 꽃은 식물의 한 기관에 불과하니까요. 그럼 위의 질문을 고쳐야겠군요. '식물은 어떤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것일까요?'라고. 저는 이렇게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분명 꽃은 뿌리, 잎, 줄기 등 다른 기관들의 도움을 받아 피어나는 것이 맞지만,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면 뿌리, 잎, 줄기 등이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후자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며 그 향기를 맡는 그 순간에 그 식물의 인상이 정해지니까요. 마치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처럼요.


식물의 얼굴인 꽃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사람들을 취하게 만들죠.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꽃은 핍니다만, 봄에 가장 많은 꽃이 핍니다. 겨울 내내 추위와 목마름을 견디고 모은 힘으로 한껏 피워낸 꽃은 찬란하기 그지없습니다. 추위를 이겨내고 가장 먼저 피는 사국자의 첫 번째 매화부터 순수한 어린아이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개나리, 분홍빛의 엷은 미소를 가진 진달래와 커다란 봉오리로 한가득 꽃을 피우는 나무의 연꽃이라 불리는 목련, 봄의 마지막 쯤에 빨간색, 흰색, 보라색의 색깔로 우리나라 곳곳을 메우는 철쭉까지. 우리나라의 봄은 꽃들로 가득합니다.


꽃들의 아름다움은 외견뿐만이 아닙니다. 그들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들이 죽고나서, 그러니까 지고나서 드러납니다. 그들이 그렇게 화려하게 장식한 봄이 지나가면 나무들에선 하나 둘 씩 열매가 드러납니다. 그 열매 안에는 대부분의 경우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한 씨앗이 들어가 있습니다. 누군가 열매를 먹고 씨앗을 땅에 뿌려주면 새로운 생명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꽃은 생식기관의 역할을 다하여 자신을 희생합니다. 이렇게 열매를 만들고 씨앗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합니다. 놀랍게도 꽃은 외면의 아름다움과 내면의 아름다움을 다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불교의 얘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불교에서 고통이 생기고 자신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의 고정관념과 고집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걸 넘어서서 자신이 갖고 있는 고집을 깨달음을 통해 깨뜨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해탈에 이르러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부처가 되면 무아(無我)의 경지에 오르게 됩니다. 내 자신의 근원이나 실체는 없고 모든 것은 우주의 관계 속에서 변화하며 결정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이 불교의 교리를 따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실체가 없는 것이라니 너무 허하지 않나요? 제가 보는 꽃의 찬란한 아름다움과 단단한 내면 안에 숨겨진 꽃의 희생정신이 그 자신의 근원과 실체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라면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봄을 적시는 그윽한 향기와 형형색색의 은은한 빛깔들이 꽃 그 자체의 특징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불교에서는 이를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이라 하겠지만, 저는 꽃을 보고 있노라면, 그 아름다움을 몸소 느끼고 있노라면, 종교가 추구하는 보편적 진리를 넘어 그저 꽃의 존재를 느끼는 데 만족하고 싶습니다.


아니, 오히려 저는 불교에서는 고통이라는 윤회를 빌려 삶과 고통의 수레바퀴 안에서 꽃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사람의 시선을 빼앗는 갖가지 색들과 벌들을 유혹하는 달콤한 꽃향기, 꽃잎에서 느껴지는 보드라운 촉감과 꽃잎을 밟을 때 들릴듯 말듯한 자그마한 소리 우리의 모든 오감을 넘어 정서를 자극하는 꽃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습니다.


저는 꽃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추위와 가뭄을 모두 이겨내는 그런 강인한 꽃으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가끔은 동물이나 사람에게 짓밟히고 눈과 서리를 맞으며 괴로울지언정 봉오리를 터뜨려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굳센 기상을 가진 꽃으로 태어나 자신의 노력에 만족하고 가끔은 거드름도 피우고 싶습니다.


저는 꽃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벌들에게 꽃가루를 듬뿍주는 꽃으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먹일 꿀을 구하느라 이 꽃 저 꽃을 돌아다니며 온종일 구슬땀을 흘리는 벌들에게 꽃가루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꽃이 되어 그들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꽃가루 조금이라도 더 내어주고 그 나눔의 기쁨에 슬며시 미소짓고 싶습니다.


저는 꽃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한순간의 아름다움 뒤에 영원한 생명을 숨기고 있는 꽃으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외면적인 아름다움으로 기쁨을 주고 한 순간에 사라지지만 뒤에는 열매와 씨앗을 만드는데 헌신하여 생명을 만드는 그런 희생정신을 가진 꽃이 되어 새로운 생명을 잇는 그런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습니다.


그러다 한 장 한 장 꽃잎이 다 떨어지는 마지막이 오면 전부를 아낌 없이 내주는 생이 만족스러웠다고 생각하며 입꼬리가 보일듯 말듯 살짝 올라간 채로 마치 원래 없었다는 것처럼 조용히 그 삶을 마감하고 싶습니다.


이런 꽃의 삶은 고결하고 아름답습니다. 과연 인간이 평범하게 다시 태어나 꽃이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며 남을 위한 삶을 살았던 사람만이 이런 아름다운 꽃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만약 제가 죽어 다시 삶을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환경을 파괴하고 서로 헐뜯으며 싸우는 고통스러운 인간이 아니라 봄을 알리는 전령사이자 생명의 순환에 기여하는 지고한 꽃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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