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와 감사

by baekja

저번 주 일요일 기말고사가 끝났습니다. 동생은 그 전 주 금요일에 끝나고 다른 친구들은 저와 같은 주 화요일에 끝났습니다. 제 시험은 무척 늦게 끝난 편이죠. 많은 과목들이 시험을 보고서 대체로 해서 이런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더군다나 이번 시험은 제가 기피하거나 어려워서 그동안 듣지 않고 미뤄두었던 과목들의 시험이라 너무 하기도 싫었고, 어려운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아 성적은 무조건 잘 받아야 하고, 공부는 하기 싫고 진퇴양난의 속에서 숨 막히는 압박감만 저를 옥죄었습니다.


꾸역꾸역 시험을 다 끝내고 수요일이 왔습니다. 수요일은 시험 기간에 신청해둔 봉사활동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봉사활동을 자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학 들어와서 봉사 시간을 받는 것은 아마 헌혈을 제외하고 처음일 겁니다. 갑자기 봉사를 왜 했느냐고 묻는다면 ‘그냥’이 가장 적당한 대답일 듯합니다. 이상한가요? 가끔 이런 좋은 변덕도 부려봐야죠. 봉사는 집 근처 종합복지관에서 하는 것이었고, 도시락을 포장하는 봉사였습니다. 복지관에서 관리하는 어르신들이 코로나 때문에 복지관 식당에서 밥을 드실 수가 없으니 반찬을 포장해서 어르신들께 드리는 데 거기에 쓰이는 도시락을 포장하는 봉사였습니다. 3시간짜리 봉사였지만, 할 일은 30분만에 다 끝내놓고 한 시간 정도 쉬고 있으니 담당자께서 오늘은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하시며 한 가지 일만 더 해줄 수 없겠냐고 말하시기에 흔쾌히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부탁받은 업무는 내일 도시락을 받으러 오시라고 어르신들께 연락을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 담당자께서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한 십 분정도 헛수고를 하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전화기를 붙잡고 연락처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연락을 돌리는데 어르신들이 대부분 무척 고마워하시며 ‘수고하십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을 하시더군요. 마음이 무척 따뜻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전화 한 통이라는 작은 소통 창구 사이로 주고받는 따뜻한 말과 마음이 고단했던 지난주의 일정을 이겨낸 저에게 보상을 해주는 듯했습니다.


봉사를 마치고 복지관을 나와 학교 도서관으로 가는 전철을 타러 역으로 가는데 기분이 무척 좋아졌습니다. 주변의 경치를 보는 시야가 넓어지더군요. 정말 오랜만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기분 좋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니 역 근처 천에서 날아온 듯한 철새들이 제 머리 위에서 군무를 추고 있었습니다. 군무를 보고 역에 들어가니 딱 맞는 시간에 서울로 가는 급행열차가 역에 들어왔습니다. 모든 것이 딱 들어맞는 이 상황에 저는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KakaoTalk_20211231_142828266.jpg 오산역 위의 겨울 철새들


도서관을 갔다가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인터넷 사이트에 발표된 학점을 확인하기 위해 강의 평가를 진행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학점을 보기 위해서 계속 해왔던 강의평가가 무언가 어색하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교수님들이 저를 평가한 학점을 보기 위해 제가 교수님들의 강의를 평가하는 것이 무척 이상했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평가를 주고받는 것이 교수와 학생 쌍방에게 남을 평가할 권리는 주는 것이기에 공정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평가를 주고받아야하는 행위 자체가 이상했습니다. 좋은 수업을 제공한 교수님께 감사하고 수업을 열심히 들어준 학생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우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냉혹한 평가를 주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그러자 사이트에 떠있는 ABCDF로 이루어진 학점이 차갑게만 보였습니다.


우리의 삶은 평가로 가득합니다. 좋은 학교나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평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도 많죠.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인생들을 평가한 무수히 많은 영상들과 댓글들을 볼 수 있습니다. 틀이 정해진 냉혹한 평가 앞에서 누군가는 정당한 권리를 쟁취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숨겨진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권리를 전혀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숨겨진 능력을 찾고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도 능력이라고요? 그 의견에 부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평가가 어떤 한 ‘사람’이라는 소우주의 다양성을 담아낼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세상에 만연한 계속된 평가는 사람을 소외시키고 지치게 만듭니다.


차갑고 냉혹한 평가가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를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은 ‘감사’입니다. 봉사활동 당시 제가 전화를 끊기 전 한 인사는 ‘감사합니다.’였습니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답변이 제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셨으니 당연한 말이었습니다. 그 중 한 어르신은 제 감사합니다에 덧붙여 이런 말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더 감사하죠.’ 어두운 회색빛의 방 안이 순간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감사에 감사가 얹어지는 따뜻한 순간이었습니다. 이처럼 누군가를 평가하기 이전에 우리가 누군가에게, 그리고 세상의 많은 것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이를 표현한다면 세상의 평가 때문에 소외된 누군가는 그 감사 속에서 설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2021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분명 평가로 가득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행복을 찾아 1년을 만끽하신 분들도 있을 것이고, 평가 속에서 고통 받은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제 삶 또한 평가로 가득했고, 냉혹한 평가 앞에서 많은 좌절을 겪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의 삶에서 평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많은 좌절을 겪을 겁니다. 성공하는 순간은 매우 적겠죠. 이런 냉혹한 세상 속 당신의 행위와 존재가 평가로 무시 받는 것이 아니라 감사로 인정받는 순간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에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많은 평가를 주고받기 보다는 많은 감사를 주고받는 삶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를 간절히 바라며 저와 함께해준 2021년의 모든 이들과 것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해보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감사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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