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by baekja

건축가 유현준은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놀이터를 없애는 것은 아이들의 공간을 뺏는 것만일 뿐만아니라 청소년과 청년들의 추억을 뺏는 일이라고요. 제 집 주변의 놀이터는 대부분 살아남았지만, 제가 옛날에 기억하던 모습과는 많이 변했습니다. 놀이터 주위로 흙이 넘치던 정겨운 모습은 사라지고 무슨 알 수 없는 인공 스펀지 비슷한 것이 깔린 바닥만이 남았습니다. 그래도 저희 집 뒤의 놀이터는 아직 생명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네를 타고 미끄럼틀을 타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면요. 하지만, 흙으로 할 수 있는 놀이들을 하지 못하는 저 상황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끄럼틀과 그네가 있는 곳만 놀이터인가요? 놀 수만 있다면 다 놀이터죠. 오늘 연극에서도 그랬습니다. 고물들이 가득한 버려진 땅 같은 곳은 배우들이 뛰놀기 시작하자 놀이터로 변했습니다. 온갖 폐품들을 재치있게 사용하며 서로 재밌게 놀고 그것으로 관객에게 웃음을 주었습니다. 이제는 직업병에 가깝게 되어버린 분석적인 사고를 버리고 맘껏 즐겼습니다. 그러다가 헬기 모습으로 전쟁놀이를 하는데 스타크래프트의 시즈탱크 노래를 따라하고 'fire in the hole!'을 외치는데 저만 웃더군요. 제 추억엔 있는 것들이지만, 다른 분들의 추억에는 없었나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이 노는 모습은 보던 사람들을 과거의 추억 속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저는 동생이랑 집에서 놀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매우 내성적이었던 어린 시절, 저의 가장 친한 친구는 동생이었습니다. 동생이랑 노는 게 제일 재밌고 즐거웠죠. 당연히 가장 주된 놀이터는 집이었습니다. 레고를 사와서 조립은 안 하고 동물 모양 블럭을 꺼내서 전쟁을 한다거나 모험을 하는 상상을 하며 이야기를 전개시키기도 하고 미끄러운 양말을 신고 스피드스케이팅이라며 그 폼을 따라하는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많이 했던 것은 푹신한 작은 공으로 한 핸드볼이었습니다.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지요. 어머니 없는 동안 몰래 하는 그 스릴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서로 학교가 갈라져 볼 일이 별로 없다가 둘 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다시 놀기 시작했습니다. 온갖 자세를 잡고 장풍을 날려 서로 날라가는 시늉을 해주는, 24살과 22살의 놀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합니다. 혼자서도 잘 놀았습니다. 버리기 직전의 책을 쌓아 집 천장에 닿게 한다든가, 집 바닥에 장판처럼 전부 깐다든가하는 일은 정말 재밌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하면 어머니한테 핀잔을 듣습니다. 뭔 쓸데 없는 짓을 하냐고요. 하지만, 오늘 그 쓸데 없는 짓을 하는 배우들에게는 그런 핀잔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흐뭇한 미소가 계속 지어졌습니다. 어린 아이같아 보이는 순수함. 그런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그들이 노는 것을 봄으로써 제 자신이 정신적으로 치유받는 느낌이었습니다. 흔히 추억팔이 한다고 하죠. 그들이 노는 것과 제 추억을 교차하며 즐겁게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런 아련하고도 순수한 기억에 멈춰있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지금은 못할까? 철이 들어서? 옆의 눈치를 봐야해서?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별로 그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과연 저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떠올렸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비 맞는 것이 최고의 행복인줄 알고 동생과 장풍이나 쏘며 노는 누군가에게는 한심해보일 수도 있는 행동을 하고 있는 저를 떠올리자 아직 저는 제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추억팔이에만 멈춰있을 때가 아니라 추억을 쌓을 만한 때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조금 더 어린애 같이 하고 싶은 것 하면서 놀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제 나이 아직 스물넷, 젊은 나이입니다. 조금은 더 어린애 같이 굴어도 되지 않을까요? 갈 수 있는 놀이터도 많아지고 놀 수 있는 시간도 늘었는데 이 순간에 원하는 대로 놀지 않는 것도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제 집 뒤에 있는 놀이터는 제 추억에 멈춰 있는 놀이터이지만, 제 인생의 모든 놀이터가 추억에 멈춰설 필요는 없겠지요. 저는 조금 더 제가 원하는 만큼 저의 놀이터에서 놀면서 살아볼 생각입니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제 자신에게 지금 제가 더 신나게 놀고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 말이죠.


*2020년 4월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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