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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게츠교(渡月橋) 위에 달이 뜨면

아라시야마의 밤

by baekja

첫날 아라시야마의 숙소는 무척 좋은 곳이었습니다. 온천이 딸려있고, 저녁으로 일본의 연회용 코스 요리인 가이세키(懐石)가 나오는 곳이었죠. 제대로 된 일본 요리를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저는 무척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되자 직원께서 코스 요리가 무엇이 나올 건지 적힌 종이를 주고, 음식을 하나씩 내오기 시작했습니다. 에피타이저부터 시작해서 탕, 두부 등 다양한 요리가 나왔는데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기억이 남는 것은 메인 요리로 나왔던 복어회가 무척 맛있었다는 것이고, 밑반찬은 하나도 손을 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밑반찬은 대체로 전부 초절임이었는데 제가 초절임을 먹으면 거의 토를 해서 단 하나도 먹지 못했습니다. 일본에 왔으니 그래도 조금 먹어볼까 하는 생각에 하나 집어먹어 보았는데 바로 토를 할 뻔 했습니다. 코스 요리 밑반찬의 대부분이 초절임이었으니 저는 배불리 먹지 못한 채로 식사를 끝내야 했습니다.


1518270361730.jpg 가이세키


주린 배를 잡고 온천에 들어갔습니다. 종일 돌아다닌 피곤함이 따스한 물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창문이 하나도 없는 우리나라 목욕탕과 달리 위쪽으로 창문이 뚫려 있어 달을 보며 운치 있는 목욕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날은 보름 이틀 전이라 무척 달이 밝고 컸습니다. 좀 있으면 보름달이 된다고 뽐내는 듯했습니다. 온천에서의 목욕은 순전히 저와 친구들만의 것이지만, 창에 달린 달의 아름다움은 모든 이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입니다. 이 창에 걸린 달을 두고 에도시대 선승인 료칸(良寬)은 하이쿠(俳句)로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盜人にとりのこされし窓の月

도둑이

남겨 두고 갔구나

창에 걸린 달


언뜻 들으면 도둑이 달의 아름다움만은 훔치지 못했음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도둑에게 옷과 멍석 등을 전부 내어주고도 달의 아름다움까지 내어주지 못하는 료칸의 안타까움이 시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재물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니 필요한 이에게 하나라도 더 내어주고자 하는 료칸의 높은 경지가 느껴지는 시구입니다. 속세의 저는 만인에게 주어진 달의 아름다움까지도 더 내어주고자 하는 하해와 같은 마음은 모르겠으니 달을 보면 그저 즐길 뿐입니다. 일본에서 달을 마주한 그 때도 달을 더 즐기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온천에서의 즐거운 목욕을 끝내고 달을 더 즐길 요량으로 친구 한 명을 붙잡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마침 배도 출출하니 강 반대편의 편의점에서 간식거리나 몇 개 더 사오자는 핑계를 대면서요. 밤 9시였는데도 모든 상점가는 불을 껐고, 빛이 나오는 곳은 도게츠교에서 차선을 나타내기 위한 표시등과 저 멀리 편의점에서 나오는 불빛뿐이었습니다. 하늘의 달은 휘영청 밝기는 했지만, 가쓰라강에 반사되는 환상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달을 건넌다는 도게츠교에서 물에 비친 달을 건너는 상상을 하며 나왔는데 그러지 못해 무척 아쉬웠습니다. 제가 얻을 수 없는 것을 바란다고 당장 제 손에 바라는 것이 얹어지지는 않겠죠. 당장 친구와 교토의 밤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편의점에서 여러 먹거리를 손에 가득 쥐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혼자 나갔으면 그저 실망하여 돌아왔을 테지만, 친구와 같이 나가 밤에 도게츠교를 걸으며 달까지 본 추억까지 남겼으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무척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친구와 함께하는 여행의 장점이 그런 것이겠죠. 친구와 함께 한 달구경의 행복함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겠죠. 아직도 잊지 못하는 그날의 밤을 미즈타 마사히데(水田正秀)의 사세구(辭世句, 사람이 세상을 떠나려 할 때에 남기는 단형시)를 빌려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行く時は月にならびて水の友

떠나갈 때는

달이 옆에 나란히

물속의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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