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여행이 끝난 당시에는 ‘좋았다.’라는 느낌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추억으로 깔끔하게 갈무리될 줄 알았던 여행에 대한 그리움이 살짝 고개를 내민 것은 2020년도 가을이었습니다. 일본사 관련 두 개의 강의를 들으면서 일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자연히 2018년도에 다녀온 일본여행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되짚어가는 과정에서 전에 보았던 교토의 문화재들과 자연히 연결되게 되었고, 생각보다 제가 놓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척 아쉬웠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전세계에 퍼진 이후 관광 목적으로 일본에 가기는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일본에 간다는 것은 꿈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일본에 다시 가는 것은 무리이니 최소한 전에 다녀온 일본을 기록하고 다녀온 곳들을 재조사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글을 쓰려고 했으나 저의 게으름과 더불어 당장 쓰고 있던 글들이 있어 바로 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12월 말부터 다녀온 교토의 문화재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일본어를 못하는 제가 일본어 원서를 빠르게 읽을 만한 능력은 안 되고, 만약 꾸역꾸역 번역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시간이 너무 부족할 것 같아 이런저런 번역서나 한국 학자나 여행가가 쓴 일본 관련 책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에서 얻은 좁은 인문학 지식과 4년 전의 교토에 대한 기억, 몇 장 없는 사진만으로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하려니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힘이 들다보니 2월말에는 끝내려 했던 교토 여행 회상기를 지금에야 끝내게 되었습니다.
힘들기는 했어도 글을 다 쓴 지금 되돌아보니 일본에 대해 공부하고, 여행했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무척 재밌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앞의 글들을 통해서 2018년 20대 초반 친구들과 함께한 여행은 제 기억에 평생 남을 것이라 생각하니 무척 기분이 좋습니다. 다만, 한 가지 문제점이 생겼습니다. 교토에 더욱 가고 싶어졌다는 것이죠. 교토의 문화재 하나하나를 다시 한 번 보고 조금이지만, 공부한 것들을 확인하며 당시에 느꼈던 감정들을 맛보고 싶어졌습니다. 또한, 짧은 시간동안 이것저것들을 보느라 느껴보지 못했던 현대와 역사가 어우러진 도시 교토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어졌습니다. 교토의 문화재들을 보기 바빴지 교토의 거리들을 걸으며 교토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지는 못했으니까요. 언젠가 다시 한 번 교토에 간다면 오랜 시간 머물면서 전에 보지 못했던 더 많은 풍경과 경험들을 담아오고 싶습니다.
이처럼 글을 쓰면서 즐거움과 행복, 아쉬움과 그리움이라는 감정들을 간만에 꺼내어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답은 없다하지만, 매순간 답을 요구하는 시대에서 감정은 꽤 불필요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합니다. 내 감정을 중요시하지 못하고 숨기며 사회가 원하는 대답을 내놓는 과정에서 드는 감정들은 대부분 우울함, 짜증, 분노로 귀결되죠. 저 또한 그렇습니다. 학교 과제로 무척이나 바쁜 요즘 계속 늘어나는 과제를 볼 때마다 짜증밖에 나지 않습니다. 그 짜증조차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고 과제를 할 때는 감정을 억누른 채 무척 이성적인 답변들을 써내려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마음 깊은 곳에 가지고 있는 감정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제 기억을 담은 글속에 일상에서 잊고 사는 감정들이 드러나고는 합니다. 글을 쓰고 다시 읽으면서 여러 가지 감정들이 들었지만, 제가 제 글 쓰고 읽었던 그 모든 순간들을 돌이켜보면 이번 일본 여행의 가장 주된 감정은 그리움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4년 전의 저와 친구들의 모습과 교토에서 만난 아름다운 풍경들이 무척 그리웠고, 지금도 그립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무척 맘에 들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그리운 것은 아닙니다. 그저 이미 지나간 행복했던 한 때를 다시 한 번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씩 몰려와 제 마음을 그리움으로 채웁니다. 이 마음을 담아 한 하이쿠로 교토 회상을 끝맺고자 합니다.
二人見し雪は今年も降りけるか
둘이서 본 눈
올해에도 그렇게
내렸을까
-마쓰오 바쇼(松尾芭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