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이 국제공항~인천 국제공항
해가 거의 다진 저녁 무렵에야 저와 친구들은 잠에서 깰 수 있었습니다. 그마저도 무척 비몽사몽해서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짐을 꾸리고 숙소를 빠져 나왔습니다. 매우 정신없이 숙소를 뛰쳐나왔는데도 빼먹은 것 하나 없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제 여행은 끝났지만, 친구들은 내일 늦은 오후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오기에 오사카 관광이 계획되어 있어 오사카에서 저녁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습니다.
전철을 타고 오사카의 어느 역에 내렸습니다. 퇴근 시간이 겹쳐서인지 사람이 무척 많았습니다. 전철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가려는데 갑자기 “어머, 어머.”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한 일본인 여성의 가방이 전철 문에 끼어 어쩔 줄 몰라 당황해하고 있었습니다. 다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그 때 역무원이 달려와 문을 강제로 열고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역무원이 직접 달려와 해결해주었다는 것만 빼면 사실 한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었지만, 가장 당황했던 것은 그 장면을 보고 들려온 대부분의 말들이 한국어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4일 내내 한국인은 거의 코빼기도 보지 못했는데 오사카의 중심부로 오자마자 이렇게 많은 한국어를 듣게 되다니. 당시 가끔 들을 수 있던 오사카 관광객의 절반은 한국인이라는 말이 거짓이 아닌 듯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순간적으로 벌써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심리적으로는 이미 한국에 가있는 기분이었지만, 아직 물리적으로는 일본이었습니다. 친구에게 부탁받은 야광 피규어를 사러 역 바로 옆의 아울렛으로 들어갔습니다. 한국에서 직구가 가능하기는 했지만, 직구하기 힘들다고 일본가는 김에 사달라고 하여 사주기로 했습니다. 친구가 사달라는 기념품은 사람 모양의 야광 피규어인 ‘스미스키’였습니다. 랜덤으로 나오는 피규어로 유명한데 제가 사는 걸 옆에서 보고 친구들도 귀엽다며 하나씩 사갔습니다.
스미스키까지 사고 나니 일본에서 할 일은 더 이상 없었습니다. 계획한 바를 모두 이룬 상태였습니다. 친구들과 저는 이대로 헤어지기는 아쉬우니 저녁을 먹고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저녁은 아울렛 지하에 있는 돈까스집이었습니다. 한국의 돈까스보다 조금 비쌌지만, 무척 맛있었습니다. 깨를 갈아 소스를 만드는 것도 신기했고, 돈까스에 육즙이 있는 것도 무척 신기했습니다. 당시에 육즙이 있는 돈까스를 처음 먹어봐서 그런지 무척 맛있었습니다. 문득 제가 이제까지 먹어온 돈까스는 돈까스가 아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친구는 녹차맛 아이스크림까지 디저트로 먹더군요. 팥이 들어가 있어서 무척 신기했습니다.
즐겁게 수다를 떨다보니 어느새 공항에 가야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보자고 말하고 작별의 포옹을 한 뒤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운 좋게도 급행을 탈 수 있었습니다. 공항으로 향하는 급행열차에 사람이 무척 적어서 전철의 한 칸에 거의 저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간사이 국제공항으로 가는 길에 다시 바다를 건너는데 3일전 낮에 반대 방향으로 바다를 건너던 기억이 무척 오래전처럼 느껴졌습니다. 푸른빛의 밝은 바다가 아닌 검은빛의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추억에 잠겨 있는 동안 전철은 저를 공항에 데려다주었습니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지갑을 챙기고 트렁크를 끌고 공항의 체크인하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공항 체크인하는 곳 앞의 의자에 앉았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습니다. 제 비행기는 이른 아침이었으니 간사이 국제공항 안에서 하루 버틸 생각이었습니다. 아마 인천공항에서처럼 밤을 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무척 피곤했는지 저는 그대로 의자에서 잠에 곯아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에 잠을 깬 저는 빠르게 체크인을 하고 면세점으로 향했습니다. 면세점에서 산 것은 일본에 갔다 오면 누구나 사온다는 도쿄바나나와 로이스 초콜릿이었습니다. 줄 사람들을 생각하며 개수를 맞추어 산 뒤 양손 가득 짐을 안고 비행기에 올라탔습니다.
한국으로 올 때 탄 비행기의 비행사는 그 악명 높은 Peach로 가격은 쌌지만, 좌석 간의 거리가 무척 좁았습니다. 여행의 끝이라는 감상에 잠기기는커녕 화장실갈 때 옆 사람에게 끼치는 민폐 때문에 연신 죄송함을 표해야 했습니다. 제 옆에 앉은 일본인 모녀가 다행히 웃으면서 받아주었지만, 속으로는 불평불만을 가득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덜컹거리며 비행기는 활주로에 내려앉았고, 저는 한국어로 적힌 몇몇 팻말들을 보고나서야 인천공항에 도착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교토와 한국 사이 그 어딘가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끝마치고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는 느낌이 확 들었습니다.
여행은 끝이 났습니다. 당장 히가시혼간지를 보고 숙소로 돌아올 때는 꽤 아쉬움이 컸지만, 오히려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한국에 올 때까지는 큰 아쉬움이 들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는 긴장감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냥 정말 끝났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여행이 완전히 끝났으니 다른 감정이 비집고 들어오기 보다는 당장 얼마 남지 입대가 더 제게 크게 와 닿았던 것이겠죠. 그렇게 일본 교토 여행은 제 마음속에서도 깔끔하게 갈무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