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역, 히가시혼간지
사이호지를 보고 나왔을 때는 저와 친구들 모두 피로가 가득했습니다. 사이호지를 다보고 나온 것은 3시가 채 안되었지만, 피로로 인해 무엇을 더 보자는 이야기보다는 숙소에 가서 낮잠이라도 자자는 데에 모두 동의했습니다. 그렇게 사이호지에서 숙소로 가는 버스에 탄 후 숙소로 향하는데 문득 저는 무척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스가 한 전철역에 멈추어 서기 직전 친구들에게 다른 것을 보고 오겠다고 말한 뒤 급하게 내렸습니다.
눈과 비는 모두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흐렸습니다. 그 하늘 아래 처음 보았던 마쓰오타이샤역처럼 무척 작은 역이 그리 높지 않은 건물들 사이에 친근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 역의 개찰구를 지나 승강장에 서있는 동안 문득 교토 여행 중 혼자 있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 있는 것이 무섭고 두렵다기보다는 무척 설렌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습니다. 전광판에 적힌 전철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그 설렘은 더해갔습니다.
근데 생각해보니 어디로 갈지 목적지를 제대로 정해두지 않은 것이 기억이 났습니다. 그저 교토역 근처로 가면 될 거라고 생각했던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내리기는 했지만, 정확히 어디로 갈지 정해 두지는 않았었습니다. 교토역 주변을 둘러보니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가 있었습니다. 문득 고등학교 수학여행 자유일정 당시 여러모로 사건이 일어나서 계획에 있던 히가시혼간지를 못간 것이 생각나 방문해보기로 했습니다.
운이 좋았는지 환승 한 번 없이 교토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교토역을 헤치고 지나가며 고등학교 수학여행 당시 교토역 근처에 내려 자전거를 빌리려 했던 기억과 이틀전 교토역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친구들과 도시락을 먹었던 기억을 돌이켜보았습니다. 한 기억은 먼 과거이고 다른 기억은 가까운 과거이기는 하지만, 기억을 회상하면서 아련한 기분이 들면서도 행복해지는 것은 똑같았습니다.
길을 잃지 않고 교토역을 잘 빠져나와 히가시혼간지로 향했습니다. 다른 문화재들과 달리 히가시혼간지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문화재들과 달리 그 어떤 사전조사도 하지 않았던 절이고, 찾아간 이유도 그저 전에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 이상의 의미가 없었으므로 히가시혼간지의 방문에 그 내력을 더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히가시혼간지의 분위기는 무척 조용했습니다. 낮이기도 했지만, 겨울비가 온 직후고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더욱 없어보였습니다. 고에이도(御影堂)라는 무척 큰 목조건축물과 더불어 앞의 넓은 자갈밭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느낌보다도 그냥 ‘크고 넓다.’라는 느낌을 받은 것은 교토에서는 처음이었습니다. 조용히 마당을 거닐며 사진을 찍고 이모저모 살펴보았지만, 무언가를 더 알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가장 열심히 한 것은 사진 찍기였는데 핸드폰이 고장 나서 파일을 복구할 수 없게 되어 사진은 한 장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거대한 건물의 모습과 사람이 없는 적적함, 그리고 그 적적함을 유일하게 깨트리는 자갈 밟는 소리의 기억뿐입니다.
히가시혼간지를 보고나자 무척 피곤해졌습니다. 친구들 없이 조금의 자유시간을 즐겼으니 저도 숙소에 들어가 잠이나 조금 자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로를 따라 북쪽으로 직진하면 숙소 쪽으로 갈 수 있어 그저 대로를 따라 쭉 걸었습니다. 늘 색깔이 가득했던 고도 교토의 모습이 아니라 회색빛의 도시 교토 모습은 처음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그 대로를 걷는 순간만큼은 이곳도 하나의 평범한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숙소에 거의 도착할 즈음 길에서 한국어를 하는 관광객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잘 알려지지 않은 유적지를 다니다보니 한국인을 만날 일이 없었는데 갑자기 길가에서 한국어가 제 귀에 들리자 여행이라는 꿈에서 깬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언가 아쉬운 마음이 찾아왔지만, 아직 일본에서 있을 수 있는 몇 시간을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숙소에 도착해서까지 그 아쉬운 마음이 이어졌지만, 지칠 대로 지친 제 몸은 아쉬운 마음 따위는 중요한 것도 아니라는 듯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친구들 옆에 눕자마자 저를 바로 잠에 들게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