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강에서 졸업으로

by baekja

꿈을 꿨습니다. 제출 기한 한 시간을 남기고 급박하게 보고서를 쓰고 있던 저는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잠시 멈췄습니다. 그리고 문득 이 과목의 보고서를 다 썼음을 깨닫자마자 잠에서 깼습니다. 유일하게 성적이 나오지 않았던 과목이란 점이 문득 맘에 걸려서 핸드폰을 켜서 성적을 확인했습니다. A+. A0까지는 잘 주시는 교수님이지만, A+는 꽤 기준이 높아보여서 A0 쯤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보고서가 교수님 맘에 들었는지 A+를 받았습니다. 기분이 좋았지만, 이제는 정말 끝났다는 생각이 들어 아침인데도 잠시 감상에 젖었습니다.


대학에서의 마지막 수업은 6월 14일이었습니다. 수업은 영국사개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부터 시작해서 현재의 영국까지 75년이 넘는 역사를 75분 동안 배운 후 수업이 끝이 났습니다. 수업이 끝났다는 종이 울리고 학생들이 자리에서 한 명씩 일어나는 동안 저는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떠나보내기 아쉬운 강의실의 풍경,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 나무인지 플라스틱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책상, 교실 천장에 달린 빔 프로젝터, 빔 프로젝터 사용을 편하게 하는 교탁까지. 이 정든 학교를 떠나면 보지 못할 다양한 물건들을 눈에 담았습니다.


서서히 일어나자 다른 학생과의 대화를 막 끝마친 교수님이 저를 쳐다보며 말을 거셨습니다. 수업이 어땠냐는 질문에 처음 배우는 영국사라 재밌었다는 말과 영어 강의라 어려웠다는 말을 섞어 답을 했습니다. 교수님도 그 점이 아쉬웠다고 말하며, 한국어 강의로 해보고 싶다는 말도 덧붙이셨습니다. 교수님과의 짤막한 대화를 끝으로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강의실을 나와 정문으로 향했습니다.


정문으로 가는 길에 우습게도 교수님을 다시 마주쳤습니다. 어차피 가는 방향이 같았던 교수님과 대화를 하며 길을 갔습니다. 영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오자마자 이번 수업을 맡게 되었다는 교수님은 영국 17세기가 주전공이라고 했습니다. 어쩐지 올리버 크롬웰과 찰스 1세의 갈등이 자세하더라니. 그러면서 원래는 미술사 대학원을 꿈꿨다는 얘기를 했더니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봤던 미술 작품들을 이야기하며 영국 미술과 관련된 역사이야기들을 한가득 풀어주셨습니다. 즐겁게 듣다보니 어느새 역에 도착해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데 시험 잘 보라는 격려를 해주시더군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하교길이었습니다.


지하철 승강장에 서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아쉬운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핸드폰을 켜 카톡을 확인하는데 대학 생활을 가장 많이 같이 보낸 친구가 술먹을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바로 지하철 승강장을 빠져나와 다시 학교로 향했습니다. 친구와 향한 술집은 제 첫 개강파티를 한 술집이었고, 제 동아리 가장 큰 행사의 마지막 뒤풀이를 한 술집이었으며, 닭볶음탕이 무척 맛있는 집이었습니다.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닭볶음탕을 시켜 소주를 한 잔 했습니다. 최근에는 천천히 먹던 소주도 1학년 때 느낌으로 빠른 속도로 비웠습니다. 주량이 대단하지는 않은 저와 친구는 금세 취했습니다. 그러면서 1학년 때부터 하나씩 추억들을 풀어놓았습니다. 술, 여행, 도서관, 전시회 등 무척 다양한 추억들이 술상 앞에 한 상 가득 차려졌습니다. 추억 가득한 술상 앞에서 사장님과의 추억을 담아낼 사진도 하나 찍었습니다. 그 이후로 다른 친구 두 명이 찾아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취한 채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길고 긴 하교길. 많은 생각들을 정리하는 그 길은 오랜만에 핸드폰을 키지 않고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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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 이후에는 마지막 시험이 있었고, 마지막 시험 대체 보고서 제출이 있었습니다. 마냥 좋지는 않고 꽤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자 시원섭섭함이 느껴졌습니다. 제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시간과 경험들을 붙잡고 싶지만,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종강은 또 다른 학기의 시작이지만, 졸업은 계속 이어진 학기의 끝을 의미합니다. 대학이라는 삶의 방식이 끝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이 기다리고 있는 미래는 두렵지만, 이제 대학 생활은 과거에 두고 현재를 살며 나아가야겠죠. 하지만, 그 과거는 불현 듯 찾아와 제게 아련함과 행복함을 전해주며 현재를 살아가는 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과거가 과거로 사라진다는 아쉬움은 이제 묻어두고 잠시 멈춰있던 발걸음을 다시 앞으로 내딛을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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