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3가역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종로3가역 주변의 이미지는 고리타분함입니다. 이제는 하나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탑골공원이 근처에 있으며, 그 주변에 어르신들이 모이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죠. 또한, 무척 싸나 위생은 조금 떨어지는 어르신 분들이 많이 찾는 밥집과 술집이 즐비한 탓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인지 3개의 노선이 모이는 종로3가역의 환승통로나 승강장 곳곳을 보면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어르신들을 다수 볼 수 있습니다. 종로3가역을 여행하러 방문한 평일 오후3시 30분, 그 날도 역 주변에는 다양한 어르신들이 곳곳에 계셨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 종로3가역을 방문했을 때는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런 이미지가 크게 잡혀있을 때도 아니기는 합니다. 그때 종로3가를 방문한 이유는 종묘 정전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추운 겨울 아침, 사람이 별로 찾지 않는 종묘는 무척 조용했습니다. 문을 넘어 종묘 정전으로 들어서자 그 조용함은 무거움이 되었고, 무거움은 전율이 되었습니다. 침묵의 권위와 강렬한 단순함에 압도되어버린 저는 그날 바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축물은 이것이라고 정해버렸습니다. 그렇게 제가 종로3가역에 대해 처음 가지게 된 이미지는 가장 좋아하는 건축물인 종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10대의 저와 종로3가와의 인연은 거기서 끝이었습니다.
20대 때 방문한 종로3가역의 주변은 좀 더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0살, 막 동아리에서 상모를 돌리기로 했을 때 상모에 필요한 재료들을 사러 종로3가역을 방문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에 종로3가역 7번출구에서 창덕궁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국악사들이 즐비했습니다. 어느 국악사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선배가 이끄는 대로 들어가 이것저것 골라 샀던 기억이 있습니다. 가격은 꽤 비쌌어서 당시 가격으로 125,000원 정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엔 혼자 가기도 하고, 제가 선배가 되고 나서는 후배를 끌고 간 적도 있습니다. 그냥 이런저런 국악 악기들을 구경하는게 즐거워서 일부러 그쪽 거리로 돌아간 적도 더러 있습니다.
군 전역 이후에 종로3가역을 방문했을 때는 친구와 창덕궁의 봄꽃을 구경하고 국밥을 먹으러 갔을 때였습니다. 창덕궁을 갈 때는 안국역에서 내렸지만, 점심을 국밥으로 정하고 나니 안국역 쪽엔 국밥 파는 집이 없어보여서 종로3가 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저와 그 친구의 첫 ‘이경문순대곱창’방문이었습니다. 맛집인지도 모르고 그냥 있길래 들어갔습니다. 오후 3시가 지난 시간이라 사람도 별로 없어서 그냥 평범한 순대국집인가 하고 먹는데 이상하더군요. 싼 가격 말도 안 되는 양, 괜찮은 맛. 익선동의 유명한 레스토랑들과 카페들 바로 옆이라 유명하지 않을리도 없었습니다. 인터넷을 확인해보니 맛집으로 이미 많이 포스팅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후 그곳은 저와 친구의 가장 좋아하는 맛집 중 하나가 되었고, 순대국이나 곱창전골이 땡길 때 많이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경문순대곱창은 익선동 옆쪽이지만, 약간 누린내가 풍기고 가성비라는 점에서 깔끔하고 세련되며 가격이 좀 센 익선동의 다른 상점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오히려 송해길의 상점들과 비슷합니다. 저는 세련되고 예쁜 익선동보다는 사람사는 구수한 냄새가 나는 송해길 쪽을 선호합니다. 그 근처에서 친구들과 먹은 육회 또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안겼습니다. 가성비 육회 맛집이었는데 자리가 넓지 않아 야외에 앉아야 했습니다. 담배 냄새가 살짝 풍기는 건 별로였지만, 싼 육회와 탕에 소주를 먹는 여름밤의 낭만에 취해 즐겁게 떠들었습니다. 그곳에서 군대를 전역하고 처음 맞는 방학이라 뭐든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친구 생일날 친구를 납치하자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진짜 군산으로 납치하는데 성공했었죠. 즐거운 한 때였습니다. 담배 냄새나는 싼 술집에서 되는대로 내뱉은 말들을 실현시키는 즐거움. 종로3가역은 그런 낭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울의 중심에 위치하며 1호선, 3호선, 5호선 등 3개 노선이 지나는 종로3가역은 사람들이 참 많은 역입니다. 하지만, 이 역은 사람 많은 강남역이 답답한 것과는 달리 답답하지는 않습니다. 도시의 일상이 보여주는 무채색의 차가움들이 아니라 갈색빛 황토 느낌이 주는 구수함이 이 역이 주로 주는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있을 때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어색했던 다른 역들과는 달리 이 역에서는 편히 앉아 있을 수 있던 것은 그런 느낌 덕분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축물 종묘 정전이 있는 역, 20대 초반 그렇게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했던 상모를 사고 구경할 수 있던 역, 가장 좋아하는 맛집이 있는 역, 친구들과 함께 했던 가장 낭만 넘치는 추억이 있는 역. 저는 이 역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에겐 고리타분함과 오래됨의 상징인 역일지 모르지만, 제게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한, 세련됨과 새로움이 잃어버린 걸쭉한 아름다움과 인간다운 정을 간직한 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