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陰陽)의 조화, 아름다운 화계(花階)

교태전(交泰殿), 함원전(含元殿), 흠경각(欽敬閣)

by baekja

양의문(兩儀門) 너머로 교태전이 드러납니다. 양의문과 교태전 모두 음양(陰陽)과 관련이 있습니다. 양의의 이름은 그냥 음과 양을 뜻하는 말이죠. 세상의 근본 원리가 태극(太極)이고 이를 나누면 음양, 음양을 나누면 사상(四象, 태양, 태음, 소양, 소음), 사상을 나누면 팔괘가 되며 팔괘가 좋고 나쁨을 정하고, 그 좋고 나쁨이 세상의 많은 일들을 자아낸다고 보면 됩니다. 즉, 양의문이라는 것은 ‘근본’문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의미로는 음이 여자, 양이 남자를 뜻하므로 ‘여자와 남자’라는 뜻을 지니기도 합니다.


근래에 음이 여자이고, 양이 남자라는 성리학의 원리가 그냥 이분법적으로 굳어져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고요. 하지만, 여기서 음과 양으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논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음과 양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이를 통해 태극이라는 세상의 근본 원리를 깨닫는데 있지요. 분단이 아닌 조화가 음과 양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먼저인 것입니다. 또한, 음이 여자의 전부고 양이 여자의 전부라는 단순한 사고방식도 전혀 좋지 않습니다. 근본은 하나에서 나왔으니 음이나 양의 속성을 가진 이가 있을 수 있고, 양이나 음의 속성을 가진 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를 잘못 이해하여 음과 양을 이분법적으로 나눈 뒤 하나를 안 좋게 생각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둘의 조화가 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그냥 음과 양을 이야기한 문 안에는 ‘천지, 음양이 잘 어울려 태평을 이루다.’라는 뜻을 가진 교태전이 있습니다. 순수한 음인 곤(坤, 땅)과 순수한 양인 건(乾, 하늘)의 사이에 태(泰)가 있으니 태는 둘의 사귐을 의미하고, 천지의 도(道)를 이루고 천지의 마땅함을 살펴 백성을 도와야 함이 교태전의 이름에 담겨 있습니다. 아, 참고로 교태전의 이름은 정도전이 짓지 않았습니다. 교태전은 세종 때 만들어진 건물이라 정도전이 이름을 짓지 않았죠.


이름에 담긴 뜻이 깊으나 전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정확한 해석은 아니나 저만의 해석을 이곳에 찾아온 이들에게 말해주곤 합니다. 왕의 침전인 강녕전에서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까지는 어도가 나있습니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는 후계자를 낳는 일이었습니다. 각각의 침전으로 길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요. 그리고 조선을 대표하는 양과 음은 왕과 왕비였습니다. 조선의 하늘은 왕이었고, 조선의 땅은 왕비였습니다. 그들의 사귐을 의미하는 곳이 왕비의 침전 이름? 어머(><). 그 이상은 말이 필요 없겠죠.


이제 교태전의 이름 말고 건물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아, 강녕전과 교태전은 창덕궁의 화재 이후 각각 희정당과 대조전 복원에 사용되어 사라지고 지금 보는 것은 각각 1995년과 1994년에 복원된 것입니다. 기록에 따라 잘 만들어두기는 했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지요. 강녕전과 교태전 건물에 눈길이 잘 안 가는 것은 그런 이유겠죠. 하지만, 두 건물의 가장 큰 공통점이 있습니다. 지붕 위를 가로지르는 용마루가 없다는 것입니다. 속설로 용이 왕을 상징하니 두 개의 용을 같이 둘 수 없어 용마루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중국의 예를 보면 고관대작의 집에도 용마루가 없는 경우가 더러 있어 그것은 아닌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냥 격이 높은 건물에 종종 용마루를 쓰지 않는다는 점 정도가 파악된 전부입니다.



분합문을 고이 접어 등자쇠에 걸어 놓은 덕에 보이는 교태전의 뒤편에는 살짝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굴뚝들과 싱그러운 잎을 가진 꽃과 나무들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교태전의 뒷동산 아미산(峨嵋山)이지요. 아미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은 여러 곳에서 등장하는데 도교에서는 신선이 사는 선경(仙境)을 의미합니다. 무척 아름다운 이상향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습니다. 교태전 너머 슬쩍 보이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빨리 그곳으로 가고 싶지만, 교태전 마루를 가로지를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돌아가야 합니다. 한때는 이 돌아가는 방법을 몰라서 한참을 헤매서야 간신히 아미산에 들어간 적도 많았습니다.



교태전의 왼쪽으로 나가 함원전, 흠경각 권역을 거쳐 가는 길이 아미산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함원전, 흠경각은 그 자체로는 크게 눈에 띄지 않는 건물이나 각자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이 꽤 재밌는 건물들입니다. 먼저 보다 남쪽에 있는 흠경각의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흠경(欽敬)의 의미는 단순히 보면 ‘흠모하고 공경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하늘을 공경하여 공손히 사람에게 필요한 시간을 알려 준다.’는 뜻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를 가지게 된 이유는 ≪세종실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대소 간의(大小簡儀)·혼의(渾儀)·혼상(渾象)·앙부일구(仰釜日晷)·일성정시(日星定時)·규표(圭表)·금루(禁漏) 같은 기구가 모두 지극히 정교하여 전일 제도보다 훨씬 뛰어나 오직 제도가 정밀하지 못하고, 또 모든 기구를 후원(後苑)에다 설치하였으므로 시간마다 점검하기가 어려울까 염려하여, 이에 천추전(千秋殿) 서쪽 뜰에다 한 간 집을 세웠도다.

…《서경》 요전(堯典)편에 ‘공경함을 하늘과 같이 하여, 백성에게 절후를 알려 준다[欽若昊天, 敬授人時](흠약호천, 경수인시)’는 데에서 따온 것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천문과 기후를 관측하는 기구들을 둘 곳이 없어 그 둘 곳을 만들고 천문과 기후를 관측하는 목적이 하늘을 공경하여 백성에게 이를 알려주는 데 있으니 흠경각이라 이름 붙였다는 것입니다. 이 기구들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이는 조선 과학사에서 불세출의 천재 중 한 명인 장영실이었습니다. 위의 ≪세종실록≫ 세종 20년(1438) 1월 7일 기사를 보면 장영실이 만들어낸 옥루(玉漏)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있습니다. 그 설명이 길어 이 글에는 옮기지 않으나 궁금하면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이 옥루는 자동 물시계 자격루에 천체 변화를 알려주는 천문시계를 결합한 자동종합 물시계입니다. 옥루도 이 흠경각에 보관되어 있었죠. 한 마디로 흠경각은 조선의 기상청이자 천문 관측대, 표준시각을 알려주는 과학의 메카였습니다. 이곳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조선의 하늘을 관측하고, 절기를 정확히 측정해 백성에게 널리 알리고자 했던 세종과 그 생각을 실현시킨 장영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흠경각이 과학의 메카라면 함원전은 불교의 메카였습니다. 함원(含元)은 ‘원기(元氣)를 간직한다는 의미로 그 뜻은 성리학과 관련 있으나 이름과 다르게 건물의 용도는 내불당(內佛堂)으로 쓰였습니다. 특히 세조 연간에는 함원전에서 불상의 점안식(點眼式)을 가졌다거나 법회를 열고 불사리를 봉안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였습니다. 조선 왕조에서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하는 정책을 펼친 것은 맞으나 불교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신하들이나 유생들은 극렬히 반대했을지언정 왕실 내에서는 불교를 믿는 이들이 더러 있기도 했습니다. 다만, 단순히 불교를 믿는 이들이 왕실에 있어서 불교를 완전히 배척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추상적이고, 통치 원리에 가까운 유교보다 불교가 백성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종교로써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또한, 1,000년 넘는 시간동안 이미 백성들 사이에 깊이 자리 잡은 불교를 뿌리 뽑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결국 어느 정도는 불교와의 조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적정선에서의 불교의 수용, 그것을 드러내는 곳이 바로 함원전입니다.



자 이제 함원전 동편에 난 작은 문을 통해 별천지로 들어설 차례입니다. 아미산은 경회루의 연못을 파고 남은 흙으로 쌓아올렸다는 설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교태전이 만들어진 것은 세종 연간이기에 이 사실이 확실한 것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대충 그 즈음이겠거니 할 수밖에요. 어떻게 만들어졌든 아미산이 아름답다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각종 나무들과 꽃을 섞어 심어 봄이면 늘 화려함을 뽐냅니다. 꽃이 피는 시기가 달라 여름에도 피는 꽃들이 더러 있으나 봄에 피는 꽃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아미산의 표정은 봄이 가장 화사하지요. 여름에는 푸르른 이파리들이 화계라 불리는 돌계단 정원을 메웁니다. 짙은 녹색의 푸름 덕분에 강력한 생명력을 느끼게 됩니다. 가을이면 단풍과 낙엽이 섞입니다. 단풍의 강렬한 색들과 낙엽의 푸석한 색들이 엮여 아름다움과 세월의 흐름을 동시에 맛보게 합니다. 겨울에는 쓸쓸함이 화계에 내려앉습니다. 눈이 내리는 날은 따뜻함이 가미되지만, 대체로 겨울에는 나무들이 벌거벗고, 꽃들이 땅속에 숨어 허전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처럼 사계마다 다른 표정을 보여주며 사람의 감정을 흔드는 아미산에서 세월이 지나도 그 자리에서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굴뚝입니다. 보물로 지정된 이 굴뚝은 나무들과 꽃들 사이에서 그 아름다움을 은은하게 발산하고 있습니다. 육각기둥 위에 기와지붕을 올린 것 하며, 연가(煙家, 굴뚝 기와지붕 위에 얹은 집모양의 연기 배출구)의 앉음새까지 그 어우러짐의 균형이 눈을 즐겁게 합니다. 집처럼 만든 섬세한 굴뚝의 형태도 눈을 끌지만, 역시 가장 눈을 끄는 것은 굴뚝의 면마다 그려진 십장생, 사군자와 장수, 부귀를 상징하는 무늬, 화마와 악귀를 막는 상서로운 짐승들입니다. 이 그림들을 통해 교태전에서 아미산을 바라보는 이들은 1년 365일 내내 꽃이 핀 채로 짐승들이 뛰노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여기에 ‘노을이 내려앉은 연못’이라는 뜻을 가진 ‘낙하담(落霞潭)’이 적힌 석조와 ‘달을 머금은 연못’이라는 뜻을 가진 ‘함월지(涵月池)’가 적힌 석조까지. 조금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이곳이 선경임은 누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늘 아미산을 보며 안타까운 것은 교태전에 올라 아미산을 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아미산을 옆에 두고 거니는 것이야 지금의 관람동선과 다르지 않았을 테지만, 정원을 보는 시선을 생각하면 원래 아미산을 제대로 관람하기 위해서는 교태전 마루에서 바라봐야 할 터입니다. 하지만, 교태전에 올라갈 수 없으니 아미산을 관망하는 느낌이 잘 와 닿지 않아 아쉽습니다. 언젠가는 교태전 마루에서 아미산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이제 아미산을 돌아 동편으로 빠져나갈 차례입니다. 그 동편으로 빠져나가는 담벼락에는 각종 그림들이 그려져 있죠. 꽃담입니다. 밋밋하게 벽돌이나 돌로 그저 담을 쌓아 놓는 것이 아니라 담에 다양한 무늬를 넣어 장식하는 방법입니다. 교태전 뒤편의 꽃담은 대부분 빙렬문 사이에 꽃과 나비를 그려 넣는 것으로 꾸몄습니다. 아미산을 거쳐 넘어온 자연의 향기가 꽃담까지 이어져 여운을 남기는 것이죠. 흡족한 마음으로 꽃담을 스윽 살펴보고 뒷짐 진 채로 걸음을 천천히 옮기면 조화와 미(美)가 가득한 교태전은 다 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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