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하고 꽃담 맛 좀 보실래요?

자경전(慈慶殿)

by baekja

교태전 바깥으로 나오면 넓은 뜰이 펼쳐집니다. 원래는 정말 뻥 뚫린 뜰이었으나 방문 당시에는 자미당이 발굴 조사 중이어서 조금 답답한 탁 트인 시야를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근정전에서 교태전까지 이어지는 구중궁궐(九重宮闕)을 벗어나 이제 좀 시원함 좀 느껴보려 했더니 실패하여 무척 아쉬웠습니다. 봄이면 이 뜰에 위치한 커다란 살구나무와 사진 찍는 이들이 하하호호 웃고 있어 참 보기 좋은 풍경을 자아냅니다. 그 커다란 살구나무마저 발굴조사의 경계를 나눈 슬레이트 안에 위치해 제대로 볼 수 없음이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쉬운 점은 자미당 쪽의 자경전 꽃담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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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미당을 보고 있는 자경전 꽃담은 말 그대로 환상적입니다. 가장 화려하고 세련되었으며 가장 공을 많이 들인 것이 티가 나는 꽃담이지요. 빙렬문과 귀갑문(龜甲紋)을 비롯한 각종 문양을 새겨 넣은 것을 넘어 아예 회화를 그려놓았습니다. 삼화토 배경에 각종 벽돌과 돌을 깎아 그림을 그려낸 솜씨가 단순하지만 세련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합니다. 좋은 의미를 가졌거나 매우 예쁜 대나무, 국화, 석류, 영산홍, 모란, 복숭아 등을 그려 놓아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요. 특히 월매도는 한 점의 한국화 같은 느낌을 주어 오래도록 보고 있게 만듭니다. 이 꽃담을 무척 기대하며 왔는데 볼 수 없다니, 아쉬움을 삼키며 자경전 담 안 쪽으로 향했습니다.


자경전 앞 쪽에는 궁궐의 주방인 소주방(燒廚房)이 있습니다. 복원된 지 얼마 안 된 곳이라 제 발길은 잘 닿지 않는 곳이기도 합니다. 소주방 권역에는 생과방도 있는데 왕실의 별식을 만들던 전각이었습니다. 지금은 이곳에서 다과를 먹는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주어 무척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합니다. 예약이 힘들어서 전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예약하여 경복궁 내에서 전통 다과를 맛볼 수 있다면 아주 특별한 추억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주방에서 눈길을 돌려 자경전 앞에 섭니다. 자경전의 정문인 ‘만세문(萬歲門)’이 보입니다. ‘만세’는 아주 긴, 영원의 시간을 말하죠. 자경전의 주인이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그럼 자경전의 주인은 누구였을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자경전의 이름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자경(慈慶)’은 ‘자친(慈親)’, 즉 왕의 어머니가 경사 혹은 복을 누린다는 뜻입니다. 즉, 자경전의 주인은 왕의 어머니인 대비인 것이죠. 다만, 이 자경전의 주인은 딱 한 명의 대비였습니다. 신정왕후 조씨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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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경전이 지어진 것은 앞에서 쭉 말해왔던 전각들과는 달리 조선 초기가 아닙니다. 고종 4년(1867)에 경복궁 중건을 할 때 지어진 건물이죠. 이후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의 어머니인 명성황후는 을미사변으로 인해 고종과 순종보다 먼저 죽었으니 신정왕후 조씨가 조선의 마지막 대비였습니다. 신정왕후 조씨는 중전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지만, 대비에 오른 특이한 경우입니다. 남편인 효명세자가 21살의 나이로 요절한 후 세자빈으로만 남을 뻔했던 신정왕후 조씨는 이후 아들(헌종)이 왕위에 오른 후 효명세자를 익종으로 추존하며 대비가 되었습니다. 아들인 헌종마저 요절하고 나서 조대비는 권력을 거의 잃었고, 순원왕후 김씨를 위시한 안동 김씨에 의해 강화도령 이원복(철종)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신정왕후는 순원왕후와 철종의 죽음 후 재빨리 이하응(흥선대원군)과 정치적 결탁을 맺고 그의 둘째 아들 이명복(고종)을 왕위에 올립니다. 조대비는 수렴청정을 하기는 했으나 격변하는 세태에 밀려 큰 권력을 휘두르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늘 고종을 왕위에 올려주었고, 그의 양어머니가 되었기에 고종 27년(1890) 죽는 그 날까지 고종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자경전의 크기만 보아도 고종이 얼마나 조대비를 신경 쓰고 있었는지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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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경전 건물은 여러 차례의 화재 이후 고종 25년(1888)에 재건된 건물입니다. 경복궁의 많은 건물이 현대에 복원되었음을 생각하면 오랜 세월을 버틴 건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보물로 지정되어 있죠. 하지만, 제 발길은 자경전에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그 뒤편으로 향하지요. 길상문(吉祥文) 한자가 아름답게 새겨진 꽃담을 따라 서편의 샛길로 자경전의 뒤편에 가면 보호 지붕 아래에 있는 커다란 굴뚝이 보일 겁니다. 일정한 벽 사이에 불쑥 튀어 나온 굴뚝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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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경전 십장생 굴뚝을 알게 된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EBS방학생활에서 보았었는지, 아니면 국보, 보물을 한참 찾다가 인터넷에서 발견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잘 모르는 초등학생의 시선에서는 정말 대단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음, 뭔가 반짝반짝 빛나는? 그런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현장체험학습으로 경복궁을 처음 방문한 날, 학교 체험활동지의 마지막에 적혀 있던 것이 바로 이 자경전 굴뚝이었습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5급을 막 따고 한국사에 대한 자신감이 뿜뿜하던 그 즈음에 경복궁을 방문한 것이었죠. 근데 사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5급 땄다고 경복궁의 구조에 대해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니었는데 당시에는 뭔가 되게 잘 아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다행히 길치는 아니라 어렵지 않게 찾았지만, 엄청 헤맬까 속으로는 꽤 당황하고 있었던 생각이 납니다. 그렇게 처음 만난 십장생 굴뚝은 아름답기보다는 신기했습니다. 굴뚝이 이렇게 생겼다는 게 신기했고, 온갖 동물들과 식물들을 보며 신기해했습니다. 그리고는 재빨리 체험활동지에 이것저것 옮겨 적느라 바빴죠. 그런 추억이 이 굴뚝에 남아 있습니다.


머나먼 과거에서 돌아와 20대 중반의 시선에서 굴뚝을 말하자면 역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연히 한국의 굴뚝 중에는 으뜸이고, 세계의 굴뚝들 중에서도 아름다움으로 말하자면 꽤 순위권 안에 들지 않을까하는 그런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붓으로 그린 것이 아님에도 동물과 식물, 자연물들을 섬세하게 그려낸 것이나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않도록 구도를 잘 잡아 안정감이 느껴지는 것은 굴뚝의 벽화라고는 생각하기 힘듭니다. 화면이 꽉 차있지만 답답하지 않은, 풍족하지만 넘치지 않는 느낌을 주는 십장생도의 위아래로도 몇 가지가 그려져 있습니다.


위의 가운데에는 용이, 좌우로는 학이 그려져 있으며 아래에는 전설의 동물 불가사리가 굴뚝의 곳곳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용은 왕이 위치한 궁궐에 있으니 문양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나 용이 물을 다루므로 온돌에서 화재가 일어나지 않게 하려 새겨 넣었다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학은 십장생과 마찬가지로 장수의 의미이며, 불가사리는 불을 삼키는 화재 예방의 의미나 악한 것을 정화시킨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굴뚝의 옆에는 박쥐가 그려져 있는데 박쥐 또한 복을 기원하는 동물(박쥐의 한자식 발음인 편복蝙蝠이 복福의 발음과 같기에 생긴 상징적 의미)이기에 그려 넣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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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의 하나하나 살펴본 후 이제 고개를 돌립니다. 커다란 살구나무 하나가 보입니다. 나무를 잘 몰라서 매화인지, 벚꽃인지 몰랐는데 이번에 찾아보니 살구나무였더군요. 희고 아름다운 꽃을 봄이면 가득 피워서 제 시선을 잡곤 했던 나무의 종류를 이제나마 알게 되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살구나무를 쳐다보고 있을 때는 푸른색이었지만, 문득 예전에 어느 봄에 보았을 때가 기억이 났습니다. 한 아이가 엄마 아빠 손에 이끌려 살구나무의 줄기 사이에 앉아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살구나무 꽃의 화사함, 적당히 따스한 햇빛, 화목한 가족이 내뱉는 웃음소리.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그 순간이, 이 자경전 뒤편의 공간이 봄임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살구나무와 마주한 순간은 여름, 흐린 날이라 사람은 없고 저만이 푸른 잎이 무성한 나무와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눈으로 다음 해 봄에 또 보자고 인사한 뒤 조용히 자경전의 동편으로 빠져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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