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의 끝

집옥재(集玉齋), 신무문(神武門)

by baekja

건청궁을 나와 서쪽으로 걸어가면 오른편에 길고 큰 경복궁의 북쪽 담장이 보입니다. 흥례문 앞에서 시작된 제 발걸음은 이제 경복궁의 북쪽 끝까지 왔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돌아갈 끝에 왔다는 것이죠. 번화한 세종로를 향해 열린 광화문과 그 뒤로 넓은 마당이 펼쳐진 흥례문 앞이 경복궁의 시작을 의미한다면 사람들도 별로 모이지 않고, 모일 장소도 협소한 집옥재와 신무문 근처는 경복궁의 끝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이곳은 끝이 아니나 늘 이곳에서 돌아가야 했던 저는 이곳이 경복궁의 끝이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세 채의 건물이 있습니다.(제목의 사진 참고) 정확히 말하면 세 채의 건물이 전부 집옥재라고 불리는 것은 아닙니다. 왼편부터 순서대로 팔우정(八隅亭), 집옥재(集玉齋), 협길당(協吉堂)입니다. 집옥재는 고종 18년(1881)에 창덕궁 함녕전(咸寧殿)의 북별당으로 지었으며, 고종 28년(1891)에 경복궁 보현당(普賢堂, 건청궁 서쪽에 있었던 전각) 뒤쪽으로 이건하였습니다. 팔우정과 협길당도 그 비슷한 시기에 지었을 거라 추측되고 있습니다.


‘집옥(集玉)’의 뜻은 ‘옥같이 귀한 보배를 모은다.’로, 집옥재가 고종의 서재 기능을 하였으므로 옥같이 귀한 서적들을 모은다는 의미가 집옥재에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협길(協吉)’은 함께 복을 누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고, ‘팔우(八隅)’는 구석구석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왕이 머무는 곳에 구석구석은 온 나라이니 온 나라가 함께 복을 누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이곳은 고종이 경복궁에 머무는 동안 고종의 서재 역할 뿐 아니라 외국 사신을 접견하는 접견실 역할도 했습니다. 을미사변 이후 고종과 왕세자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俄館播遷) 이전까지 고종이 업무를 보는 곳이었다고 생각하면 편할 듯합니다.


집옥재 건물을 보고 있으면 시대의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중국풍의 화려한 단청이나 좀 더 섬세하고 사실적인 용두 장식 묘사, 복잡한 문양의 문살 등 다른 궁궐 건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중국풍의 양식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여러 문물들이 오가고 다양한 나라들과의 교류가 많아지면서 새로운 양식을 궁궐의 건물에도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죠. 이 건물들이 지어진 때를 생각하면 서양 나라들의 강한 압박을 중국에 기대어 해결하고자 했던 당시 고종의 생각이 보이기도 합니다.


집옥재에서 벗어나 서편으로 발길을 돌리면 ‘청와대 가는 길’이라고 적힌 이정표와 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곳으로 나가 오른쪽으로 돌아보면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이 있습니다. ‘신무(神武)’는 ‘신령스러운 현무(玄武)’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방신(四方神) 중 북쪽을 지키는 신수(神獸)가 현무이니 이렇게 이름을 붙인 듯합니다. 신무문은 정문이 아니니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던 문은 아니나 왕과 신하들이 회맹제(會盟祭, 공신을 책록한 다음 왕과 신하들이 서로 충성과 의리를 맹세하는 의식)를 할 때 드나들 때 쓰였습니다.


현재 신무문 뒤쪽에는 청와대가 있지만, 원래는 창덕궁의 후원(後苑)처럼 북원(北苑)이 있었습니다. 경복궁 중건 때에 다양한 건물들과 정자들을 만들고, 왕이 친경(왕이 직접 농사를 짓는 의식)을 하던 경농재(慶農齋)와 왕이 군사훈련을 점검하고 연회도 베풀던 경무대(景武臺) 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청사를 경복궁 안에 지으면서 총독 관저를 신무문 밖 북원에 짓고, 이것이 경무대로 바뀌어 이승만 대통령 관저로 쓰인 후 청와대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제는 경복궁의 후원인 북원의 자취는 찾기 힘들고, 대통령이 사는 청와대만이 우리 인상에 깊게 박혀 있습니다.


원래 저는 신무문 밖으로 나가는 것을 되게 꺼렸습니다. 청와대로 가는 길목이다 보니 경찰들이 잔뜩 서있었고, 이런저런 바리케이드도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마음이 불편하니 발길도 그쪽으로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2022년 5월 10일부터 경복궁이 개방되어 더 이상 신무문에서 많은 수의 경찰은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경찰이 서있지 않은 신무문을 보니 새롭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습니다. 청와대라는 공간을 완전히 개방함으로써 청와대라는 공간에 한해서는 권위를 내리고 많은 이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오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으며, 경복궁의 원래 구역까지 깔끔하게 답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강력한 권력을 누리는 대통령이 일반 국민들에게 친근해졌냐는 다른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뭐가 되었든 저는 경복궁을 답사하러 간 것이 아니었고, 과거를 톺아보기 위해 간 것 이었기에 신무문을 보는 것에서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늘 제게 있어 신무문은 경복궁의 끝이었기 때문입니다. 청와대가 과거에 가졌던 중요성과 권위 때문에 일반인인 저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것만으로도 압박감을 느꼈습니다. 경찰이나 군인이 다수 서있는 공간만큼 불편한 공간이 없죠. 그 불편함의 경계를 향해 저는 발걸음을 내딛기가 무척 꺼려졌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를 것입니다. 아직 청와대를 가본 적은 없지만, 개방된 덕에 압박감 없이 경복궁의 뒤편을 마음껏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맘에서 여전히 경복궁의 끝은 신무문이지만, 점차 그 기억은 옅어지고 새로운 경복궁의 권역이 제 기억으로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이런 마음과 생각 덕분인지 그 날은 신무문 앞에서 처음으로 가볍게 발걸음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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