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공간들

장고(醬庫), 태원전(泰元殿), 흥복전(興福殿)

by baekja

신무문에서 발걸음을 돌려 남쪽으로 향하면 함화당(咸和堂)과 집경당(緝敬堂)이 보입니다. 이 두 건물은 후궁과 궁녀가 기거하던 건물이었고, 고종 대에는 외국 사신을 접견하는 공간으로도 사용하곤 했습니다. ‘함화(咸和)’는 ‘모두가 화합한다.’는 의미를, ‘집경(緝敬)’은 ‘계속하여 공경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동안 헐린 것이 많은 경복궁의 전각들 중 몇 안 되는 헐리지 않은 전각이지만, 사람들의 눈길을 그리 끌지 않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도 답사할 때나 종종 찾곤 하지 경복궁을 별 생각 없이 거닐 때면 그냥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제 눈은 함화당과 집경당 서쪽의 장고에 멈춥니다. 장을 보관하는 장고는 원래는 함화당과 집경당 서쪽에 하나, 동쪽에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복원된 것은 서쪽 장고뿐으로 2005년에 복원된 것입니다. 장고는 보통은 문을 잠가두어 볼 수 없지만, 현재 2023년 5월 24일부터 6월 6일까지 장고 개방을 하고, 장과 궁중 식생활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고 하니 찾아가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장고 안에는 장을 담그는 기물들과 전국에서 모아온 독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저도 오래 전에 장고가 열려있어 이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문이 열린 장고를 못 본 지 무척 오래되었습니다. 북쪽의 언덕에 올라 그 안쪽만 살짝 보고 올 뿐입니다. 계단형으로 독들이 주르륵 늘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늘 누군가와 함께 오면 이곳을 소개시켜주고 이곳이 어디일까 문제를 내는데 반응이 무척 좋습니다. 잘 모르겠는, 다 똑같아 보이는 전각들보다 조금 더 실생활에 가까운 곳인지라 장독들을 모아 놓았다고 하면 눈이 갑자기 반짝반짝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 또한, 답사를 하다 머리를 환기시키는 의미에서 꼭 들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20220629_100600.jpg
20220629_100729.jpg
왼쪽은 잠겨 있는 장고의 문, 오른쪽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장고의 모습


경복궁을 거닐던 그 날도 장고의 문이 잠겨 있어 슬쩍 보고 서편으로 향했습니다. 서편으로 가던 길은 살짝 언덕이 있어 그 언덕을 넘어가는데 까치들이 보였습니다. 까치 날개나 몸통을 보면 신비로운 푸른빛이 도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기름이라는 것을 친구한테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저 아름다운 광택이 까치 몸에서 나오는 기름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환상이 깨지곤 하죠. 저도 친구한테 들은 뒤로 많은 이들에게 전파하며 환상적인 빛깔의 현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가자 태원전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찾지 않는 서북쪽 귀퉁이에는 태원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경복궁을 사람들이 아무리 많이 찾아도 이곳만큼은 늘 조용합니다. 주변까지 이어지는 건물이 없고 혼자 동 떨어져 있으며, 경회루나 향원정 같은 누가 보기에도 아름다운 정원의 느낌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경복궁을 구석구석 살펴보다 방문하게 된 몇몇 사람들이나 답사객들 뿐입니다.


‘태원(泰元)’의 의미는 ‘하늘’입니다. 태원전이 역대 왕조들의 어진을 모시던 제례공간임을 생각하면 하늘이 조선 왕실을 뜻함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태원전이 세워진 것은 고종 5년(1868)입니다. 익종(효명세자)의 양자로 들어와 정통성이 약했던 고종이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태원전은 어진 말고도 신정왕후나 명성황후의 관을 모신 빈전(殯殿)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태원전 권역의 나머지 건물들은 제례를 돕는 공간이었죠. 이를 생각해보면 태원전의 고요함과 무게감이 당연해 보입니다.


태원전의 특징이라 하면 천랑(穿廊)입니다. 태원전의 정문인 건숙문(建肅門, 엄숙함을 세우다)을 지나 경안문(景安門, 크게 평안하다)에 이르면 태원전에서 경안문까지 이어지는 캐노피가 쓰인 회랑이 보입니다. 이를 천랑이라고 합니다. 이 천랑은 관을 모시는 혼전이나 신위를 모시는 혼전(魂殿)에 설치하던 것으로 건축물의 위엄을 더하는 역할을 합니다. 평범한 전각들의 모임으로 보일 수 있는 태원전 권역이 엄숙함과 제례공간만의 권위를 갖출 수 있는 것은 이 천랑 덕분이죠. 저는 이 천랑이 맘에 들어서 천랑을 보고자 답사가 아니더라도 이 태원전을 찾곤 합니다. 햇빛이 내리쬐는 날, 사람들이 거의 없는 이곳의 천랑을 가만히 걸으면서 고요함과 적막함을 맛보는 것이 제가 좋아하는 경복궁의 모습 중 하나입니다.


20220629_101200.jpg 경안문과 그 뒤로 보이는 천랑


태원전을 빠져 나와 남쪽으로 걸었습니다. 현재는 태원전 주변에 아무런 전각도 없지만, 예전에는 많은 전각들이 있었습니다. 전각이 사라진 자리에는 무성한 잔디와 몇몇 나무들, 그리고 오랜 세월을 버텨온 주춧돌들만이 보입니다. 유의깊게 보지 않으면 여름의 푸름에 놓쳐버릴지 모르는 터들을 알려주는 것은 땅에 심은 나무막대기들입니다. 사각형으로 경계를 만들어 예전의 이곳은 궁궐의 한 전각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북쪽 끝에 있는 텅 비어버린 이 공간 또한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기도 합니다. 늘 사람이 많은 경복궁에서 여기만큼 조용히 산책하기 좋은 곳도 없죠. 그래서 여기만큼은 복원을 하지 않고 세월의 흔적을 거스르지 않은 채 터로 계속 남겨두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20220629_101702.jpg


터를 돌아 남쪽으로 와서 동쪽으로 꺾어 가면 흥복전이 나타납니다. 흥복전은 아직까지 단청이 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습니다. 2019년부터 일반인에게 개방은 하고 있으나 2024년쯤에 단청을 할 것으로 예정하고 있습니다. 흥복전은 고종 때 만들어져 왕의 후궁들이 살던 빈궁(嬪宮)으로 사용했으며, 외국사신을 만나는 곳으로 사용했습니다. 함화당, 집경당과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그 용도가 거의 비슷했습니다. 1917년 화재로 소실된 창덕궁을 복원하기 위해 헐렸으며 이곳에는 일본식 정원이 만들어졌습니다. 복원한 흥복전은 화장실과 빔프로젝터를 갖춘, 회의 교육을 위한 장소로 탈바꿈했습니다. 복원한 궁궐 전각을 버리지 않고 사용하려 한다하여 좋은 평을 얻고 있습니다. ‘복을 일으킨다.’는 의미를 가진 흥복전의 미래 모습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2020년 2월 군대를 막 전역하고 흥복전을 처음 봤습니다. 전에는 볼 수 없던 건물이 단청도 되지 않은 채 들어서 있어 당황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보자마자 되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겨울, 눈이 오는 아침, 사람들이 없는 조용한 공간, 단청이 없는 나무 그대로의 백골(白骨)집. 궁궐에서 흔히 느껴지는 엄숙함과 화려함이 아닌 따스함과 소박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고요. 흥복전을 봤을 때 느껴진 인상입니다. 무슨 용도의 건물인지, 어떤 역사를 가진지 전혀 모른 채로 마주한 전각은 쓸쓸하지만 따뜻한 적막을 제게 선물해주었습니다.


20200217_112009.jpg


그때 그 감각을 생각하며 잠시 서 있다가 흥복전을 둘러보다가 서까래 아래 구석에 오지창(五枝槍)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뾰족뾰족한 오지창을 사람들이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다 설치한 이유는 새 때문입니다. 새들이 서까래 밑에 지붕을 틀거나 앉아서 내뿜는 배설물들이 한옥의 단청과 나무를 상하게 하기 때문이죠. 예전엔 저걸 보면서 침입자들이 담을 타고 넘는 것을 막는 용도라고 생각했었는데. 풉하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20220629_101932.jpg


오지창까지 구경하고 흥복전을 나오기 전 다시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처음 보았던 순백색의 깨끗한 고요함은 없지만, 흐린 하늘 아래 여전히 사람이 없는 흥복전은 조용했습니다. 태원전과 빈 터, 그리고 흥복전까지 조용한 공간들만을 거쳐오다 보니 제 마음까지 다 차분해졌습니다. 흐린 날이 주는 무거움과 조금의 우울함, 거기에 더해진 구중궁궐의 엄숙함과 적막함은 제게 바쁜 일상의 소란을 벗어날 수 있는 차분함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힌 상태로 경복궁의 하이라이트, 경회루로 향했습니다.


20220629_101856.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