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가는 길

by baekja

흥례문을 나오니 다시 세종로가 보입니다. 한참 해가 떠있어야 할 시간에 구름 때문에 해가 가려 어두운 것이 마치 저녁 같은 느낌을 줍니다. 커다란 빌딩들에서 눈을 돌려 동쪽으로 향합니다. 창덕궁까지는 걸어갈 생각입니다. 흥례문에서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敦化門)까지는 비 덕분에 더위가 한풀 꺾인 날이면 참 걷기 좋은 길입니다. 모래밭을 사각사각 밟고 동쪽으로 나가면 넓은 주차장과 흙 털이 기계가 있습니다. 가볍게 흙 털어주고 나니 표지판이 보입니다. ‘청와대 관람 만남의 장소’, 예전에도 청와대 관람이 불가능하지는 않았습니다. 제한된 구역 내에서 엄격한 통제 아래 인솔을 받아 적은 예약 인원이 청와대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이 표지판은 옛날 청와대 방문의 증거입니다. 가끔 경복궁을 보다가 이쪽으로 나오면 줄 선 인원이 청와대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줄을 서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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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관람 만남의 장소를 벗어나 북쪽으로 길을 틉니다. 길 건너에는 갤러리 현대, 금호미술관 등이 보입니다.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걷던 쪽에 건춘문(建春門)이 나타납니다. 경복궁의 동문입니다. 봄을 세운다는 뜻을 가진 이 문은 이전에 설명한 것처럼 동쪽에 있기 때문에 ‘봄’이 이름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경복궁을 슬슬 둘러볼 때에는 동쪽 끝까지 갈 일이 없어 볼일이 별로 없고, 삼청로에 줄지어 있는 미술관들을 갈 때 오히려 건춘문을 자주 보게 됩니다. 현대적인 느낌이 가득한 미술관과 옛 흥취가 짙게 풍기는 건춘문의 대조된 모습은 볼 때마다 신기한 느낌을 받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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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앞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넙니다. 전면부의 빨간 벽돌이 인상적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예전엔 국군기무사령부 건물이었다고 합니다. 이를 철거하지 않고, 건물에 새로운 건물을 지어 연결함으로써 재활용하였습니다. 서울관 건물 사이의 길을 통해 야트막한 언덕을 살짝 올라가면 종친부(宗親府) 경근당(敬近堂)과 옥첩당(玉牒堂)이 보입니다. 종친부는 역대 왕들의 어보(족보)와 어진을 보관하고, 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며, 종친의 인사문제 종친 간의 분규 등을 의논하고 감독하던 관청입니다. 지금은 미술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멋진 사진을 찍는 배경이 되어주고 있죠. 이곳 앞에서 바라보는 인왕산이 정말 멋있으니 한 번 가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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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친부 뒤쪽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핫한 북촌의 초입이 나옵니다. 예쁜 카페와 소품점들이 벌써 사람들의 눈길을 빼앗죠. 골목을 나오면 바로 앞에 ‘조선김밥’이 보입니다. 제가 김밥을 좋아하는 편이고 이곳을 되게 자주 와서 한 번 쯤 먹어보려고 했으나 먹으려고만 하면 일이 꼬여서 못 먹었습니다. ‘정말 올해 안엔 꼭 먹어봐야지.’라고 굳게 다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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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김밥이 보이는 이 길은 감고당길이라고 합니다. 길의 북쪽 끝에는 정독도서관이, 길의 중간에는 덕성여중·고교가, 길의 남쪽 끝에는 열린송현 녹지광장과 서울공예박물관이 있습니다. 이 길을 통해 안국역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오가기 때문에 무척 많이 오간 길입니다. 이 길의 이름이 이렇게 붙은 것은 원래 덕성여고 자리에 감고당(感古堂)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감고당은 안국동에 인현왕후 민씨가 친정에 특별히 내려준 저택인데 장희빈에게 인현왕후가 쫓겨난 이후 머물렀던 곳이기도 합니다. 원래 저택의 이름이 따로 없었으나 영조가 이곳을 방문한 후 옛날 일(인현왕후가 쫓겨난 일)이 생각난다며 감고당이라는 이름을 내려주고 어필로 편액(건물이나 중앙문루 윗부분에 거는 액자)을 내려주었다고 합니다.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가 감고당에서 인현왕후를 모셨던 적이 있어 아마 이런 행위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감고당은 다른 유명한 민씨 왕비와 인연을 얻게 됩니다. 명성황후가 한양에 올라와 고종 3년(1866)에 간택 책봉되어 왕비가 될 때까지 머무른 곳이 감고당이기도 하죠. 이 감고당은 덕성여고가 자리 잡으면서 도봉구 쌍문동 덕성여자대학교 학원장 공관으로 이전되었다가 2006년 여주에 이전되어 지금은 여주에 있습니다. 명성황후 생가 근처에 옮겨 놓았습니다.


두 왕비와 관련된 감고당길은 낮에는 학생들이 다닙니다. 제가 감고당길을 지나던 때는 아침이었지만, 시험이 막 끝났는지 삼삼오오 모여 학생들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시험을 생각하며 얼굴을 찌푸렸지만, 참 좋은 시간들이 가득했던 저의 10대를 떠올리며 이내 얼굴을 폈습니다. 낮에는 학생들의 공부 때문에 크게 뭐가 없지만, 저녁이면 이 거리에는 거의 늘 버스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위치가 위치다보니 대중음악보다는 전통음악이나 클래식과 같은 곡들의 버스킹이 대부분입니다. 저녁에 미술관을 방문할 때면 감성적인 노래와 함께 길을 걸을 수 있어 이 길을 더욱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서울공예박물관 부지와 열린송현 부지를 감싸고 있던 슬레이트 울타리가 사라지고 나서는 탁 트인 느낌까지 받을 수 있어 서울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감고당길을 지나 율곡로로 들어서면 걸스카우트 본부 건물이 보입니다. 이제 그 길만 따라 쭉 걸어가면 창덕궁이 나옵니다. 그리하여 그 길을 쭉 걷다보니 안국역 사거리가 나왔습니다. 잠시 왼쪽으로 고개를 트니 ‘배스킨 라빈스’라고 쓰인 상가 간판이 보였습니다. 'baskin robbins'가 아니라 한글로 쓰여 있는 간판.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이걸 처음 봤을 때는 무척 신기했습니다. 글자의 모양새가 정겹기도 했고요. 고개를 돌려 대각으로 건너편을 보면 운현궁이 보입니다. 고종과 흥선대원군이 살았던 곳이죠. 역사 속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의 대립을 생각하면 감고당과 운현궁이 이렇게 가까운 것이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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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배스킨라빈스 한글 간판, 오른쪽은 길건너 가로수 뒤의 운현궁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계속 걷고 있는데 갑자기 신발 밑에서 이질감이 느껴졌습니다. 오른발 뒤꿈치 밑창이 떨어졌더군요. 어이가 없어서 한 번 피식 웃었습니다. 밑창이 어째 좀 덜렁덜렁하더니. 어쩔 수 없죠. 갈아 신을 신발이 없어 그냥 계속 신고 여행을 계속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약간의 고난(?)이 있었지만, 여행은 무탈하게 이어졌습니다. 현대건설 사옥 앞에 도착하자 관천대가 보였습니다. 관천대는 관상감에서 하늘을 관찰하던 곳입니다. 관상감은 조선시대 천문·지리·역수(曆數, 천체의 운행과 기후의 변화가 철을 따라서 돌아가는 차례)·점산(占算, 점치기)·측후(測候, 천문·기상 관측)·각루(刻漏, 물시계) 등에 관한 일을 담당하기 위해 설치했던 관서지요. 지금은 밤이 너무나도 밝아 별을 볼 수 없는 서울이지만, 별을 볼 수 있었던 시절이 훨씬 길었다는 것을 관천대를 보면서 문득 생각했습니다. 그 시절 서울의 밤하늘은 무척 아름다웠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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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옥 옆에는 구 공간사옥, 현 서울 아라리오 갤러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우리나라 건축사에 길이 남을 저명한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이 건물은 김수근 건축가가 만든 공간그룹의 사옥이었습니다. 공간사옥은 단순히 건축 사무소를 넘어서 예술가들이 모이고 활동하는 장소의 역할도 했습니다. 김덕수의 사물놀이패가 첫 공연을 한 곳도 이곳 공간 사옥이었죠. 또한, 공간에서 발간하는 예술·건축 종합 월간지 공간(空間)은 현재도 계속 발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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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이제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이 보입니다. 원래는 기와집이 가득했을 한양의 중심부는 이제는 콘크리트 건물들이 가득한 서울의 중심부가 되었습니다. 기와집과 초가집이 가득했던 오밀조밀한 한양은 번화하고 복잡한 대도시 서울이 되었습니다. 늘 올려다보면 사람을 내려다보는 것을 하늘뿐이었지만, 이제는 건물들이 하늘을 가리고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만큼의 시간이 지났고, 그만큼의 이야기가 쌓였습니다. 경복궁에서 창덕궁으로 향하는 한양의 길은 서울의 길로 변모하여 그 옛 모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곳곳에 남은 이야기들이 이곳이 그저 길이 아니라 오랜 세월 ‘사람’이 다녔던 길임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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