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과 권위 그 사이

인정전(仁政殿), 선정전(宣政殿)

by baekja

진선문으로 들어서면 회랑과 담으로 둘러싸인 큰 공간이 하나 나타납니다. 원래 사람들과 건물들로 차있었을 이 공간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려주는 것은 오른쪽 회랑에 걸린 현판 두 개입니다. 현판에는 각각 호위청(扈衛廳)과 상서원(尙瑞院)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습니다. 원래는 행각이었으나 회랑으로 변모해 이제는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두 관청은 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호위청은 임금을 뒤따르며 호위하는 경호실입니다. 상서원은 옥새(玉璽), 외교문서, 과거 합격자 사령장 등을 관리하는 곳입니다. 임금을 가까운 곳에서 보좌하는 주요한 일을 이곳에서 했던 것이죠. 텅 비어 버린 공간은 이곳이 이제 그러한 일을 했던 것이 거짓말이었다는 듯 제게 그저 침묵으로 답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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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제 발자국 소리였습니다. 자박자박 물기를 머금은 모래를 밟고, 인정문(仁政門) 앞에 서서 인정문을 바라봤습니다. 창덕궁의 정전으로 향하는 문. 그 앞에서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을 지긋이 바라보다 발길을 옮깁니다. 창덕궁의 조정에 서서 인정전을 잠시 본 후 경복궁 근정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오른쪽 구석으로 갑니다. 근정전을 막 보고 온 지라 인정전 앞 조정은 좁은 느낌이 듭니다. 느낌뿐만 아니라 실제로 좁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정전 앞에서는 편안한 느낌이 들지요. 근정전 앞보다 대체로 사람이 적은 것도 제게 편안함을 주는 요소지만, 가장 제게 편안함을 주는 요소는 뒤에 산이 있다는 것입니다. 근정전은 북악산과 인왕산을 병풍처럼 끌어들여 한 폭의 그림 같은 광경을 선사했다면 인정전은 응봉을 바로 뒤에 끼고 앉아 보는 이가 느끼는 아름다움이나 권위를 조금 줄이는 대신 사용하는 이의 편안함을 추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근정전 구석에 가면 셔터를 누르고 있지만, 인정전 구석에 가면 셔터는 잠시 내려두고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궁궐을 돌아다니느라 피곤한 다리에 휴식을 줄 수 있는 시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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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전이 마냥 편안함만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임금의 ‘어진 정치를 펼치는 곳’이자 엄연히 한 궁궐의 정전인 인정전은 그만한 권위를 갖추고 있습니다. 2층의 월대 위에 중층식 다포 건물은 근정전을 제외하면 그 어떤 건물을 데려다 놔도 조선시대 왕궁의 가장 중요한 건물이라는 분위기를 줍니다. 임진왜란 이후에 경복궁이 중건되기 전까지 조선의 정전이 이 인정전이었음을 생각하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원래 창덕궁은 이렇게 크지는 않았습니다. 태종 5년(1405)만 해도 정면 세 칸의 작은 규모였으나 13년 후인 태종 18년(1418)에 정면 다섯 칸의 크기로 늘렸습니다. 임진왜란 때 불타고 창덕궁 인정전이 다시 지어진 것은 광해군 1년(1609)이나 순조 3년(1803)에 발생한 화재 때문에 전소되었고, 1년 후에 전부 복구하였습니다. 그것을 철종 8년(1857)에 수리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인정전을 멀리서 바라보고 조정의 박석을 하나씩 밟으며 인정전으로 나아갑니다. 인정전은 인정전의 조정에는 품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조선의 궁궐 중에 품계석이 가장 먼저 세워진 것은 경복궁이 아니라 창덕궁이었습니다.


“인정전(仁政殿) 뜰에 품계석(品階石)을 세웠다. 조하(朝賀) 때의 반차(班次)가 매양 문란졌으므로 품계에 따라 돌을 세워 반열(班列)의 줄을 정하도록 명한 것이다.”


≪정조실록≫에 적힌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사극 등을 통해 알고 있는 품계석이 정조 이전에는 없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정조 이후에 인정전에 세워진 품계석이 처음인 것이죠. 임금이 보는 아래 품계석을 따라 문무백관이 늘어선 모습을 상상해 보고 나서 월대 오른쪽 구석으로 향합니다. ‘드므’가 있습니다. 물을 담아 두는 곳으로 화마가 이 물을 담아 놓은 드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 도망가기를 바라며 만들었다고 합니다. 실용적으로는 화재를 막을 수 있는 물을 보관해 놓은 화재 예방 설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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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므까지 보고나서 이제 인정전의 앞에 섭니다. 이제 인정전과 근정전의 차이가 하나씩 눈에 보이기 시작합

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문살의 단청입니다. 근정전은 초록색이나 인정전은 황색이죠. 원래 황색은 황제의 색이라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으나 창덕궁은 조선이 대한제국이 된 후 순종의 궁궐로 쓰인 적이 있어 이러한 색을 칠해 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근대 문물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오던 1907년 이후에 순종의 집무실로 쓰인 곳이다 보니 근대적인 개조 또한 많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대한제국 자신의 손이 아닌 일본의 손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점입니다. 전돌 바닥을 서양식 마루라 바꾼 점이라든가 실내 창문에는 황색의 서양식 커튼을 달고, 창문 안쪽에 상하로 열리는 유리창을 달았다든가 하는 점이 가장 눈에 띄는 점이죠. 다른 궁궐들의 정전에서 볼 수 없는 전구들 또한 근대의 흔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인정전의 용마루에 새겨진 오얏꽃(조선 왕실을 상징하는 꽃)도 이때 생긴 장식물입니다. 지금은 복원되어 있는 조정의 박석과 품계석도 이 시대에 잔디밭으로 바뀌었으나 1990년대에 다시 복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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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를 택하자면 당연히 인정문을 나와 숙장문으로 나와야 하나 그저 궁궐을 거닐러 왔으니 저는 동회랑 쪽에 나있는 광범문(光範門)으로 나왔습니다. 원래 이곳으로 나오면 임금의 비서실이라 할 수 있는 승정원(承政院)이나 내시들의 집무실인 내반원(內班院)으로 통하나 지금은 각종 풀과 나무가 어우러져 있는 너른 빈 공간이 나옵니다. 시대를 거듭하며 창덕궁이 얼마나 훼철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곳이죠. 별 생각 없이 보자면 답답한 궁궐의 공간 속에서 편안함을 주는 휴식 공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여름마다 이곳에서 보는 선명한 주홍색의 원추리는 늘 제 눈길을 유혹하고는 합니다. 궁궐을 돌아다니던 그 날도 광범문을 나와 원추리를 보고 셔터를 눌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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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추리에서 눈을 떼고 북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창덕궁의 편전인 선정전으로 향하는 선정문과 마주합니다. 선정문 사이로 보이는 선정전은 그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태원전에서 봤던 천랑이 사람들의 시야를 가리기 때문입니다. 편전인데 천랑이 있다니, 조금 특이합니다. 이는 빈전은 정전 다음으로 격식이 높은 전각을 선택하는 전통이 있어 선정전이 빈전으로 자주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빈전 말고도 혼전으로도 사용되어 편전의 기능(상참, 경연 등)을 희정당이 수행하여 아예 헌종 때부터는 선정전을 옛 편전, 희정당(熙政堂)을 지금 편전이라고 하였습니다. 선정전의 천랑도 최근에 복원된 것으로 이전에는 인정전처럼 잔디밭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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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함이 넘치는 천랑에서 벗어나 왼쪽으로 빠지면 선정전의 본 모습이 드러납니다. 선정전을 볼 때 확 눈에 띄는 한 가지 점이 이때 드러나는데 바로 청기와입니다. 고려시대처럼 청자로 기와를 만드는 수준은 아니지만, 기와에 청색 염료를 섞어 만드는 만큼 청기와는 보통 기와보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움을 자랑합니다. 소박함을 지양하는 조선에서 보기 힘든 것이기도 하지만, 선정전에만 쓰인 것이 이상합니다. 이를 알려면 선정전이 재건된 역사를 봐야 합니다.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 때 재건된 선정전은 인조반정 때 다시 불에 탔고, 인조 25년(1647)에 광해군이 인왕산 아래에 지은 매우 화려한 궁전인 인경궁(仁慶宮)의 편전인 광정전(光政殿)을 헐어 선정전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때 인경궁의 전각들을 헐어 창덕궁이 여러 전각들로 만들었으나 원형이 보존된 것이 선정전뿐이라 선정전만 궁궐 전각들 중 유일하게 청기와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검회색에 푸른빛만 살짝 감도는 일반 기와들만 보다가 청기와를 처음 봤을 때의 놀라움을 잊지 못합니다. 이렇게 예쁘고 아름다운 기와가 있었다니. 중학생 즈음 선정전을 봤을 때 눈을 떼지 못하고 가만히 쳐다보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박물관에 있던 청자기와가 더 사치스럽고 화려하지만, 선정전 지붕에 쓰인 안료를 섞어 만든 청기와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은 기와가 제 자리에서 그 쓰임새를 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유물이라고 해도 제자리에서 그 쓰임새를 다하는 것만큼 아름다울 수 없다는 것을 이 선정전의 청기와를 통해 다시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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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의 인정전과 선정전은 분명 권위가 넘치는 전각들이지만, 경복궁의 근정전이나 사정전과는 다른 느낌이 듭니다. 경복궁의 그것들이 사람을 압도하고 엄정한 권위를 내세운다면 창덕궁을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부드러운 권위를 보여줍니다. 산을 끼고 건물을 지은 공간의 운영과 법궁이 아닌 이궁이라는 창덕궁의 초기 조성 목적, 그리고 역사 속의 여러 이야기들이 섞여 만들어낸 공간의 분위기 차이입니다. 같은 조선의 궁궐이라도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 것. 그리고 그 차이에서 보이는 시간의 이야기들이 우리가 ‘조선’이라는 나라를 다채롭게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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