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저리 얽힌 전각들

희정당(熙政堂), 대조전(大造殿)

by baekja

선정문으로 다시 나와 앞을 보면 카페 겸 아트샵 건물이 보입니다. 궁궐에서 관람객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죠. 원래 이곳에 있던 것은 대신들이 임금을 만나기 전에 잠시 머무르며 국정을 논하거나, 외국 사신이 국왕을 접견하기 전에 대기하던 빈청(賓廳)입니다. 순종이 1907년 창덕궁으로 넘어와 1926년 죽을 때까지 머무르며 창덕궁에는 많은 근대적 변화가 생겼는데 이때 빈청 또한 왕의 자동차를 보관하는 어차고(御車庫)로 변했습니다. 순종황제와 순종황후의 차는 무척 아름답습니다. 앤티크 자동차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국립고궁박물관에 찾아가 한 번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자동차가 궁궐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부터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돈화문의 월대가 흙속에 묻히고 문턱을 없앴습니다. 그리고 선정전 동편에 위치한 희정당에는 차를 세울 수 있는 돌출 건물이 세워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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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눈을 돌려 희정당 앞에 섭니다. ‘희정(熙政)’이란 ‘화평하고 즐거운 정치’라는 뜻으로 이곳이 또 하나의 편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 창건되었을 때는 왕의 학문소로 쓰였다가 점차 편전으로도 쓰인 것으로 보입니다. 희정당은 인조반정 때 불타고 인조 때 다시 지어진 후 순조 33년(1833)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이듬해 복구되었습니다. 1917년에 또 다시 대조전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연소되어 소실되었고, 1920년에 복구되었습니다. 이때 희정당은 경복궁 강녕전 건물을 옮겨와 복원하여 강녕전과 똑같은 모습이 되었고, 주변에는 서양식의 내부 시설이 가미된 행랑이 ‘ㄷ’자 형태로 희정당 앞마당을 감싸는 형태로 지어졌습니다. 이 행랑은 ‘희정당 신관’으로 불리며 사람들이 보통 보게 되는 희정당의 정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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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희정당 신관의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위에서 말한 돌출 건물입니다. 곡선형으로 돌을 깎아 만든 자동차 현관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기둥과 창방에 달린 예쁜 낙양각(落陽刻) 또한 눈을 즐겁게 하는 요소지요. 자동차를 몰아 이곳에 세워보고 싶은 충동마저 일으키게 합니다. 하지만, 이곳에 자동차를 댈 기회는 주어지지 않고, 희정당 신관 넘어서서 희정당 남쪽 정면에 설 기회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희정당을 정면에서 볼 방법은 내부 특별관람을 신청하거나 희정당 돌출 건물의 돌계단을 올라가 분합문 너머를 유심히 살피는 방법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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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서 희정당을 보았으면 이제 희정당 서편의 좁은 길로 들어가 희정당 뒤편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건물들이 희정당과 대조전 권역은 건물들이 ‘ㅁ’자로 둘러싸인 채로 이리저리 얽혀 있는 경우가 많아 길을 헤매기 십상입니다. 경복궁의 전각들이 일자로 늘어서 있어 그 위치를 가늠하기 쉬운 것과는 확실히 다른 점입니다. 그렇게 무엇인지 모를 궁궐 전각들의 모습을 구경하며 이리저리 길을 거닐면 갑자기 빈 공터가 하나 나옵니다. 위치상으로는 선정전 바로 뒤의 공터인 이곳은 이전에는 보경당(寶慶堂) 등의 전각들이 있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조선 전기에는 보경당이 편전으로 사용되기도 했었고, 17세기에는 후궁들의 처소로 많이 사용되어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가 살았다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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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푸른 잔디 때문인지 왠지 모를 어색함을 주는 보경당에서 눈을 돌리면 희정당과 대조전 사이의 공간이 보입니다.희정당과 대조전을 잇는 두 채의 회랑이 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왕이 업무를 보는 희정당에서 왕과 왕비의 침실로 사용된 대조전까지는 회랑으로 이어졌습니다. 근대식 생활에 익숙해진 순종 황제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복도의 아래를 지나면 대조전의 정문인 선평문(宣平門) 앞에 서게 됩니다. 거기서 잠시 뒤를 돌면 희정당 내부를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창덕궁을 잘 알게 되기 전까지 이곳이 희정당인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아는 희정당은 분명 앞 건물인데 왜 뒤에 있는 이 건물도 희정당이지?’ 하면서요. 그래서 궁궐의 전각 속에서 늘 길을 잃은 기분이 들고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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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희정당 내부 이야기로 돌아와서 희정당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궁궐의 편전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풍스러운 근대 건물의 내부라는 생각이 들죠. 마루에는 카펫이 깔려있고, 탁자나 의자와 같은 입식 생활을 위한 서양식 가구들이 놓여 있으며 건물 천장에는 전구 또한 보입니다. 희정당이 복원된 1920년대의 시대 분위기를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제 점점 근대 문물이 상류층의 생활 속 깊이 자리 잡았다는 것이 보이는 부분이죠. 이런 서양식 인테리어 말고도 대청에 설치된 김규진의 <금강산만물초승경도>와 <총석정절경도>를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입니다. 다만, 이 그림들의 진품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있고 희정당에 걸린 것은 정밀 모사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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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총석정절경도>, 오른쪽 <금강산만물초승경도>


이제 희정당에서 눈을 떼어 대조전으로 향할 차례입니다. 화평(和平)을 세상에 펼친다는 뜻의 선평문을 지나면 건물에 의해 ‘ㅁ’자로 둘러싸인 대조전의 앞마당이 드러납니다. ‘대조(大造)’는 큰 공업을 이룬다는 의미이나 흔히 지혜롭고 현명한 왕자의 생산을 의미한다고도 하는데 이는 대조전이 왕비의 침실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대조전이 왕비의 침실 역할만 한 것은 아니며 중전이 내명부(內命婦, 궁중의 여성 가운데 품계를 받은 자-후궁과 궁녀)와 외명부(外命婦, 내명부를 제외한 왕의 유모, 왕비의 모(母), 왕녀·왕세자녀를 지칭하며, 일반 사대부 여인은 종친의 처와 문무백관의 처 등을 통칭하는 말)의 사람들을 모아 조하를 받거나 연회를 여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대조전의 기본은 왕비의 공간이지만, 왕비의 공간만은 아니기도 하여 동온돌에서는 왕이 거처하고, 서온돌에는 왕비가 머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동·서의 구분이 완벽하게 이뤄지지는 아니하여 서온돌에도 왕이 머물렀다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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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전의 용도를 떠나 대조전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대조전도 교태전처럼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 건물입니다. 교태전 건물을 옮겨지었으니 당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월대 위에 서양 전구가 있는 가로등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대조전의 내부 또한 서양풍으로 되어 있는 것을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이게도 됩니다. 대조전 대청에도 희정당 대청처럼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백학도>는 김은호가 <봉황도>는 오일영과 이용우가 그렸으며 희정당 벽화처럼 진품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있고, 정밀 모사본을 대조전 대청에 걸어 놓았습니다.


대조전 마당을 둘러싼 전각들을 전부 대조전이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각각의 이름이 따로 있죠. 대조전 양 옆에 궁중 안 정당 좌우편에 딸려 있는 전각인 익각들도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익각은 흥복헌(興福軒)이라 하고 서익각은 융경헌(隆慶軒)라고 합니다. ‘흥복(興福)’은 복을 불러일으킨다는 의미이고 ‘융경(隆慶)’은 성대히 경축하다란 뜻입니다. 이중 흥복헌은 임금이 친왕(親王, 황제의 아들 중 황태자 이외의 왕족들의 칭호)과 조정 대신들을 접견하던 장소로 쓰였습니다. 경술국치(庚戌國恥)가 만들어진 어전회의가 열렸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복을 불러온다는 곳에서 조선이라는 나라가 없어지는 최고의 치욕을 겪었으니 이곳에 서서 역사의 역설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융경헌 쪽에 난 작은 통로로 빠져 나가면 대조전 부속 전각들을 더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곳이 어딘지 전혀 알 수 없는 전각들 사이를 요리조리 다니면 유리창이 설치된 건물이 보입니다. 임금이 먹는 음식을 만드는 주방, 수라간입니다. 흔히 생각하는 수라간은 드라마 <대장금>이나 <철인왕후>에서 볼 수 있는 아궁이가 있는 옛 주방이지만, 유리창으로 보이는 수라간 내부는 완전히 딴 판입니다. 개수대가 있고, 오븐이 있으며 타일이 깔려 있는 현대식 주방이죠. 조선 궁궐의 주방이 이렇게 생긴 것이 신기하면서도 창덕궁의 근대기 변화를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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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간을 보고 또 한 꺼풀 궁궐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화계와 함께 대조전과 회랑으로 연결된 경훈각(景薰閣)이 보입니다. ‘경훈(景薰)’은 경치가 훈훈하다는 뜻입니다. 경치가 훈훈? 사방이 전각과 화계로 막힌 이곳에서 경치가 훈훈하다고 하긴 애매합니다. 이 이름이 붙은 걸 알기 위해서는 원래 경훈각이 1층 건물이 아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경훈각 2층의 이름은 징광루(澄光樓)였다고 합니다. 징광루의 이름이 세조 때도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건물 자체는 조선 초기에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희정당과 대조전과 마찬 가지로 순조 33년(1833)에 불타고 이듬해 똑같이 2층 누각으로 복원하였으나 1917년의 화재로 불탔습니다. 경훈각은 경복궁 만경전(萬慶殿)을 가져다가 1921년에 복구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2층 누각이었던 경훈각·징광루는 경훈각이 되었습니다. 징광(澄光)이 맑은 풍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당시에 2층 누각이 흔치 않아 징광루 남쪽으로 탁 트인 풍광이 보였을 것을 생각하면 경훈각의 이름은 쉽게 이해가 됩니다.


20220629_112724.jpg 경훈각의 서편


이제 대조전과 경훈각 뒤편을 둘러싼 화계를 천천히 관람할 차례입니다. 아름다운 굴뚝과 널리 퍼진 유명세 덕에 화계하면 대부분 교태전 뒤의 아미산을 떠올릴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조전 뒤의 화계가 더 규모가 크고 아름다움도 뒤처지지 않습니다. 특히 후원과 화계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꽃담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회색과 주홍빛의 전돌이 각기 다른 무늬를 만들어내며 조화롭게 얽혀있는 모습을 보면 그 아름다움에 입을 다물 수 없게 됩니다. 여름이라 꽃은 원추리밖에 보지 못했지만, 봄이면 무척 많은 꽃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아미산과 달리 꽃들에 귀여운 이름표들을 앞에 심어 둔 것도 하나의 특징입니다. 꽃을 몰라도 하나하나 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아미산보다 이 대조전 뒤의 화계를 선호합니다. 규모가 큰 것도 있지만, 교태전 뒤의 아미산은 빈 공간이 별로 없지만, 대조전 뒤의 화계는 빈 공간이 많아 답답함이 덜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편히 쉬면서 본다는 느낌이 확 들지요. 또한, 구중궁궐의 가장 깊은 곳에 있다 보니 사람들의 발길이 이곳까지 잘 닿지 않아 대체로 아미산보다 조용하다는 점도 제가 대조전 뒤의 화계를 더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이곳에서 망국의 왕이었던 순종이 구중궁궐의 품 안에서 마음을 터놓고 쉴 수 있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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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이제 복잡하디 복잡한 희정당과 대조전에서 빠져나올 차례입니다. 서편으로 들어와서 동편으로 빠져나가는 것이죠. 대조전의 동편을 지나 희정당 동편에 서면 큰 빈공간이 나옵니다. 이 동편에는 하월지(荷月池)라는 연못이 있었다고 합니다. 1920년 희정당을 복구할 때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이 하월지 쪽으로 들어오는 문은 여춘문(麗春門)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봄(麗春)’으로 들어오는 이 문을 따라 연꽃과 달이 비추는 연못을 지나 꽃들이 만개한 화계를 둘러보는 그 운치가 대단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상상 속의 멋을 마음 속 깊이 담은 채 희정당을 벗어납니다.


20220130_111108.jpg 하월지가 있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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