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아직 따뜻해

사찰기행-다산초당~강진읍내

by baekja

다산초당을 내려오는 길에 한 번의 소동이 있었습니다. 중학생 쯤 되어 보이는 키 큰 남자아이가 부모님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여기 오기 싫었다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짜증을 내는데 여기 잠시 쉬러 온 다산의 혼이 화들짝 놀라 들여다보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분명 부모님은 괜찮은 풍경이 있어서 이를 보여주고 경험시켜주고 싶은 마음에 데려오셨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날씨는 좋지 않았고 그 친구의 기억엔 아마 매우 가파르고 힘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만 남겠죠. 억지로 끌려온 그 친구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저런 고민을 하시고 아이를 데려왔을 부모님의 마음도 생각되어 안타까웠습니다.


습기가 가득 찬 어두운 숲길을 조심조심 내려오다가 마지막이 되니 긴장이 풀렸던 모양입니다. 마지막 발을 내딛는 순간 발목이 크게 꺾여 순간 철렁했습니다. 다행이도 살짝 욱신거릴 뿐 큰 부상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천천히 왔던 길을 내려오다 시간이 좀 남아 올라오는 길에 보았던 다산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다산박물관 앞에는 여러 돌들이 다산의 명언과 함께 그 명언을 선택한 사회 각계각층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다산을 기억하기 좋은 설치 예술이다 싶었습니다. 바로 지나쳐 박물관 안으로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커서 버스 시간까지 여유롭게 둘러보지 못할 것 같아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은 포기하고 박물관 앞의 명언들이 새겨진 돌들을 차분히 살펴보기로 하였습니다.


판사, 검사, 학생, 농부, 선생님, 목사, 스님, 군인, 장관 등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선택한 명언이 눈에 띄었습니다. 여기서 명언 몇 구절만 잠깐 소개하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옛 기술에 안주하지 말고 항상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자.’ 흔히 인문학자로 기억하기 쉬운 정약용의 기술자적인 면을 보여주어 그가 흔히 말하는 요즘의 융합형 인재에 얼마나 적합한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구절이라 생각합니다. ‘전쟁이 없더라도 군대를 양성하고, 반드시 무기를 비축하라.’ 그가 얼마나 현실적인 사람이었는지 보여주는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적인 평화로운 세상은 전쟁과 다툼이 없는 세상이겠지만, 사람들의 욕망이 부딪히는 현실에서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모두 허물이 있으니, 서둘러 힘써야 할 일은 오직 허물을 고치는 것이다.’ 요즘 시대에 자신의 허물은 생각하지 않고 남을 헐뜯는 일이 매우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남의 허물보다는 자신의 허물에 집중하여 자아성찰과 반성에 중점을 두라는 다산의 말이 여전히 유효한 것은 슬픈 일입니다.


잠시 다산이 한 말의 정원을 거닐다 시간을 보니 정류장으로 갈 시간이 되었더군요. 천천히 발걸음을 돌려 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전의 글에서도 말했지만, 강진의 버스는 시간을 알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상되는 시간의 30분전에 가 서있어야 했죠. 그래서 예상되는 시간은 4시였지만, 3시 30분부터 정류장에 서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잘생긴 흰색 차 한 대가 제 앞에 멈추어 섰습니다. 차종은 BMW. 제 평생에도 타 본 기억이 별로 없는 외제차가 앞에 서자 무슨 일이 있나 싶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창문이 열리고 젊은 남자분이 저보고 차에 타라하더군요. 순간 당황했지만, 이미 아침의 경험이 있었던지라 감사함을 안고 바로 차에 탔습니다.


차는 무척 편안했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많이 긴장했던 첫 번째 히치하이킹과는 달리 조금 여유가 있었지요. 배낭을 들고 여행 다니는 대학생인 것 같아 태워주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사는 곳은 귤동마을의 우물 근처의 집이라고 하시더군요. 우물을 인상 깊게 보았던 터라 매우 놀랐습니다. 우물이 이어준 인연인가 싶었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하는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여행객들에게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인 사는 곳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나왔습니다. 경기도 오산이라고 말하자 의외의 답변이 나왔습니다. 자신의 친구가 오산에 살고 있다 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진전되어 이것저것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주 쪽에서 대학교를 나와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다는 그 분은 현재는 방학이라 잠시 집에 내려와 있다고 했습니다. 나이는 스물일곱이었고 초등학교는 순천에 있다고 했습니다. 코로나라 힘들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할 일이 많지 않아 또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는 이야기도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에 대한 이야기도 했습니다. 사학과 학생이며 유적지를 돌아다니며 남도의 이곳저곳을 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지요.


얼마간 담소를 나누다보니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차를 태워주신 분의 아버지셨는데 빨리 데리러 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차를 태워주신 분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터미널 앞까지는 데려다드릴 수 없고 그 근처에 내려주겠다고 하더군요. 저는 감사함을 표하며 흔쾌히 응하고 터미널 근처에서 내렸습니다. 한 번이면 우연일지도 모르지만, 두 번씩이나 히치하이킹을 당(?)하다 보니 괜스레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일면식 없는 타지의 배낭 여행객을 굳이 목적지까지 돌아가면서 자신의 차에 태워주는 사람의 정이 느껴졌습니다. 도시에서 자주 마주할 수 없었던 그런 낯선 이의 정은 이런 시골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차에서 내리고 지도로 확인해보니 800m 정도 떨어져 있더군요. 어렵지 않게 길을 찾아 강진터미널로 향했습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강진의 읍내로 들어섰고 터미널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거의 4시가 다되어 다음 행선지를 가기에 앞서 숙소에 짐을 두고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숙소는 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싼 모텔을 예약했었는데 밑에 유흥주점이 있어 순간 괜찮은 곳인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배낭 여행객이 뭘 가릴 수 있나요? 그냥 자야지.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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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서 주인장에게 키를 받는데 옆에 계신 아주머니가 혀를 차시면서 고생 많이 한다고 푹 쉬라는 따뜻한 말을 해주셔서 세상의 따스함을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래서 ‘남도의 정, 남도의 정’하는 것일까요? 그런 따스함 덕분인지 제가 자게 될 모텔에 대한 거부감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모텔의 방은 냄새는 조금 퀴퀴했지만, 보이는 모습은 매우 깨끗하고 만족하며 짐을 풀고 바로 다음 행선지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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