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옥에 갇혀 써 내려간 민족의 독립운동사, ≪아리랑≫

김제, 조정래

by baekja

김제 아리랑 문학관은 다른 문학관들과는 조금 다른 곳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문학관은 산속에 있거나 도심 근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제 아리랑 문학관은 다릅니다. 넓은 평야에 홀로 서 있습니다. 산지가 참 많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평야인 호남평야 위에 김제 아리랑 문학관이 있습니다.


벽골제 바로 건너편에 있는 아리랑 문학관에 방문한 사람은 저 혼자였습니다. 비도 좀 오는지라 문학관 내의 분위기는 무겁고 고요했습니다. 그 분위기를 따라 1전시실로 향했습니다. 1전시실에서는 ≪아리랑≫의 줄거리를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태백산맥≫이 6.25전쟁 전후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아리랑≫은 을사늑약 전후부터 해방까지에 이르는 독립운동사를 보여줍니다. ≪태백산맥≫과 마찬가지로 ≪아리랑≫에서도 수탈받는 농민을 그려내며 이는 한반도에서 가장 큰 곡창지대였던 호남평야가 위치한 김제를 중심으로 표현됩니다. 아리랑 문학관이 김제에 있는 이유죠. 수탈받는 이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거나 국내에 남고 누군가는 친일파의 앞잡이를 하고 누군가는 독립운동을 합니다. 이러는 과정에서 소설의 무대는 블라디보스토크, 만주, 하와이 등지까지 넓어집니다. 농민의 수탈과 저항, 민족의 독립운동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여기서도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지는 않습니다. 그저 독립운동가로 표현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태백산맥≫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태백산맥≫과 다른 점이라면 ≪아리랑≫은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내용인지라 작가가 민족을 중시하는 관점이 좀 더 뚜렷이 드러난다는 겁니다.


2전시실에서는 ≪아리랑≫을 어떻게 썼는지에 관한 전시가 있었습니다. ≪태백산맥≫에서 지리산과 벌교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던 작가는 이제 세계 곳곳을 다니며 취재를 했습니다. 중국 2번, 미국 3번, 러시아 2번, 일본 3번. 일제강점기 민족의 흔적이 있는 곳곳을 누볐습니다. 취재하며 돌아다닌 거리를 전부 이으면 지구 3바퀴 이상은 돌 수 있을 것이라는 작가의 말을 보고서는 혀를 내둘렀습니다. 이런 철저한 준비와 취재가 있었기에 좋은 대하소설을 쓸 수 있었던 것이겠죠.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곳에서는 주위의 풍경을 직접 그려 노트에 담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인물들을 하나하나 설정하고 줄거리를 구상해놓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게으름을 경계해 매일매일 작업량을 정해두고, 하루 작업을 마치고는 계획표에 적어두었습니다. 사실 일이 이 정도 양쯤 되면 끈기만 가지고 해내기엔 정말 힘듭니다. 그의 집필 계획표에 쓰여있는 말은 그가 어떤 마음으로 집필을 했는지 드러납니다.


“36년간 죽어간 민족의 수가 400만. 2백 자 원고지 18,000매를 쓴다 해도 내가 쓸 수 있는 글자 수는 고작 300여만 자!”


민족의 독립운동사를 써 내려간다는 투철한 사명감이 느껴지는 말입니다. 그는 이렇게 마음을 굳게 먹고 ≪아리랑≫을 써나갔습니다. 하지만, 마음만으로는 모든 것을 할 수 없습니다. 건강한 육체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는 늘 규칙적인 삶을 살았고, 아침저녁으로 맨손체조와 산책을 병행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일정은 보고만 있어도 질릴 정도입니다. 밥 먹고, 글 쓰고, 운동하고. 이게 전부인 삶을 ≪태백산맥≫을 기획하던 때부터 ≪아리랑≫을 다 쓸 때까지, 총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살았습니다. 이걸 작가는 글감옥에 갇혀있었다고 표현했습니다. 그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그의 작업실을 재현해 놓은 것을 보며 저 감옥에서 15년 동안 매일 자신의 할 일을 해낸 것에 한 인간으로서 진심으로 감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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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작가의 물품, 오른쪽: 작가의 작업실


3전시실은 조정래 작가의 삶을 정리해서 전시해놓았습니다. 여느 문학관과 다른 바가 없는 연표가 관람객을 먼저 맞이합니다. 다만, 연표에 쓰인 말은 딱딱한 것들이 아니고 마치 작가가 관람객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해주듯 적혀 있어 한 번 읽어볼 만합니다. 군대에서 썩었다는 말이나 아내에게 소설의 단점을 지적받고 화를 내지만, 이내 고쳤다는 사람 사는 냄새 물씬 나는 이야기를 볼 때면 웃음이 절로 지어지죠.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문학관을 나와 비를 맞으며 벽골제와 그 너머 호남평야를 바라봅니다. 작가는 민족의 역사를 써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이 넓은 평야를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상상하고 채집했을 것입니다. 그 작업은 필사적이었고, 규칙적이었으며 절절했습니다. 그렇게 나온 소설은 우리에게 이념을 넘어 민족의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작가는 민족의 역사에 자신의 삶을 담았고, 그 삶에서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역사를 재구성하여 우리에게 제시했습니다. 넓디넓은 김제의 평야에서 작가는 민족의 아픔을 느꼈고 그 아픔을 글감옥에 갇혀서라도 어떻게든 써서 독자들에게 전달했습니다. 그의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의견과 메시지에 동의하든 안 하든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글을 써 내려간 그의 삶은 대단하다고 말할 만합니다. 평야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속에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아픈 이야기가 들리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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