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로 이야기를 쓰다, 최명희

전주

by baekja



시골을 계속 돌아다니다 간만에 도시를 방문하니 어질어질했습니다. 전주역에서 내리자마자 만나는 높은 건물들이 전주가 대도시임을 말하는 듯했습니다. 전주역에서 최명희 문학관이 있는 전주 한옥마을까지는 버스로 채 30분이 안 되었습니다. 버스는 저를 한옥마을 근처에서 내려주었고, 저는 한옥마을로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골목골목마다 관광객들이 가득했습니다. 인파를 헤치며 나아간 끝에 한 골목에 자리하고 있는 최명희 문학관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중심부에서 좀 떨어져서인지 문학관이 인기가 없어서인지 문학관은 무척 조용했습니다.


사실 저는 최명희 작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 왔습니다. 정말로 제가 아는 건 작가가 ≪혼불≫이라는 대하소설을 썼다는 것뿐입니다. 아, 남원 산골에 혼불 문학관이 따로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최명희 작가에 대해 아는 것은 이것 뿐이기에 이번 글에서는 ≪혼불≫보다는 문학관에서 만난 작가의 삶을 위주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전주에 있는 문학관의 이름도 혼불 문학관이 아니라 최명희 문학관이니까요.


최명희 문학관은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이 드는 기와집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사람이 살 것만 같은 친숙한 느낌의 기와집이었습니다. 전주 한옥마을의 이름과 잘 어울린다고 해야 하나? 기와집의 곳곳에는 작가가 한 말들을 전시물처럼 전시해놓았는데 기와집의 가운데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었습니다. “꽃심을 지닌 땅, 전주” 꽃은 전북 사투리로 ‘꽃의 가운데 부분. 또는 ‘꽃과 같이 귀품이 있는 힘이나 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라고 합니다. 이 말을 보는 순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최명희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예쁜 우리말을 찾아 쓰는 작가라는 것을요. 꽃심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담아두고 문학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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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장한 기와집 안에도 역시 연표는 있었습니다. 사실 보기 좀 지루해서 그렇지 작가의 삶을 단편적으로나마 빠르게 아는 데에는 연표만 한 것이 없기는 합니다. 작가는 1947년 화원동(現 풍남동)에서 태어났습니다. 1963년 기전여고에 입학하였고, 고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의 사망으로 2년을 공백기로 둔 후 영생대학 야간부에 입학 후 수료하고 전북대에 입학합니다. 전북대학교를 졸업하고는 기전여고 국어교사로 근무하다 2년 후 서울로 올라가 보성여중고로 옮겨 7년 동안 국어교사로 근무합니다. 그렇게 총 9년을 국어교사로 근무했습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다음 해에는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2천만 원 고료 장편 소설 공모’에 ≪혼불≫이 당선되었습니다. 1988년부터는 월간 ≪신동아≫에 ≪혼불≫ 제2부 연재를 시작했고, 1995년에 연재를 끝마쳤으며 1996년에는 ≪혼불≫이 전 10권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그는 ‘아름다운 세상, 잘 살고 간다’는 유언을 남기고 영면했습니다.


위의 말들이 주저리주저리 적혀 있는 연표에서 저는 그의 유언에 꽂혔습니다. 아름다운 세상, 잘 살고 간다니 뭔가 뭉클했습니다. ≪혼불≫은 완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더 길게 ≪혼불≫을 쓸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지병인 난소암으로 인해 그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마 아쉬웠을 겁니다. 하지만, 더 오랜 세월의 혼을 깊숙이 바라보던 그녀는 한 번의 아쉬움보다 자기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보았던 듯합니다. 자신이 바라본 세상. 그 아름다운 세상의 이야기들을 기억 속에서 돌아보고는 잘 살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죠. ‘꽃심’이라는 아름다운 말로 전주를 표현한 작가의 마지막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말들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천부적인 재능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늘 국어사전을 끼고 살았고, 그 사전 속에서 아름다운 말들을 찾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혼불≫을 통해 순결한 모국어를 재생해보고 싶었다. 전아하고 흐드러지면서 아름답고 정확한 모국어의 뼈와 살. 그리고 미묘한 우리말 우리혼의 무늬를 어떻게 하면 복원할 수 있을까. 그것은 늘 나를 사로잡는 명제였다.”


이러한 생각을 늘 하고 있었기에 아름다운 말들을 찾아 쓸 수 있던 것이겠죠. 저는 여기서 전아(典雅)하다는 말을 처음 들어봤습니다. 법도에 맞고 아담하다는 뜻을 가진 이 단어가 주는 느낌에서 이미 저는 작가가 무척 많은 단어를 사용했음을 추측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런 언어가 단순히 아름답고 예쁜 말일뿐만 아니라 정신과 혼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고 모국어는 모국의 혼이기 때문에 저는 제가 오랜 세월 써오고 있는 소설 ≪혼불≫에다가 시대의 물살에 떠내려가는 쭉정이가 아니라 진정한 불빛 같은 알맹이를 담고 있는 말의 씨를 심고 싶었습니다.”

제8회 호암상 수상소감 中


그는 말의 힘을 정확히 이해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로 깊이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쓰는 언어는 달라지기 마련이고 그 언어들은 다른 언어들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시대와 지역만의 감성을 담고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말은 대한민국 혹은 한반도에 있었던 그 이전의 나라들만이 가지고 있는 감성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 감성은 같은 시대 같은 지역의 여러 사람이 사용했을 것이고, 더 많이 사용됨에 따라 그 감성과 의미가 깊어져 하나의 혼을 담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말 안에 담고 있는 알맹이일 것이고, 이런 사라져 가는 알맹이들을 작가는 ≪혼불≫에 심어 다시 살리고자 했던 것이겠죠. 이런 언어들이 사용된 ≪혼불≫은 말 그대로 언어의 잔치일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의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에 글을 쓸 때 더욱 신중했습니다.


“많이 쓰고 빨리 쓸 수 있고 정보를 입력할 수 있으며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하다고 사람들은 나한테 컴퓨터 쓰기를 권한다. 그러나 문득 한 번만 돌이켜보면 그렇게 ‘많이’ 쓰고 ‘빨리’ 써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 사뭇 의아해진다.”


그가 원했던 것은 진정한 혼을 담은 이야기였고, 그렇기에 빨리 쓰고 많이 쓴다고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덜어내어 한 자 한 자 눌러 담은 그의 글은 천천히 적은 글을 썼지만, 빨리 많이 써진 이야기들보다 훨씬 많은 진심을 담고 있었습니다. 문학관의 가운데 마당에는 이런 진심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혼불≫ 속 우리말을 적어 둔 종이들이 꽂혀 있었습니다. ‘감시르르, 곰살갑다, 꼰지발, 나훌나훌, 다보록하다, 몽글다, 발싸심, 사운거리다, 소담하다, 아리잠직’ 등의 말들은 평온한 문학관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보기만 하고 있어도 저를 웃음 짓게 하였습니다. 참으로 예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다음 날, 혼불문학공원을 찾았습니다. 나무들이 우거져 어두운 그늘이 가득했던 공원에서 유일하게 햇빛이 비치는 곳이 있었습니다. 최명희의 묘소였습니다. 묘소 양옆은 배롱나무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분홍빛의 꽃은 거의 져서 얼마 남지 않아 가을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케 했습니다. 공원은 조용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아름다운 세상을 살았던 만큼, 저곳에서도 아름다운 세상을 살고 있겠죠. 아름다운 세상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한 그의 마지막 흔적만 남아 그가 떠나버리고 조금은 쓸쓸해진 세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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